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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서 의혹' 부장판사, 대법원 묵살로 변호사 등록
검찰 비위사실 통보 받고도 징계 없이 '경고'만
비공식 통보한 검찰도, 비리 수사 미온적 비판
2017-06-15 19:47:38 2017-06-15 19:47:38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검찰이 조현오 전 경찰청장에게 뇌물을 준 건설업자로부터 골프와 룸살롱 접대를 받은 부장판사를 확인한 뒤 알렸지만 대법원이 징계 없이 경고조치로 사건을 덮은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해당 판사는 사건이 불거지자 퇴직했고, 아무런 제재 없이 부산의 유력 로펌 변호사로 개업했다.
 
15일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부산지검은 2015년 조 전 청장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건설업자 정 모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당시 부산고법 부장판사로 근무하던 문 모 판사가 정씨의 뒤를 봐주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조사 결과 문 판사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정씨로부터 15차례에 걸쳐 골프 접대를 받았으며, 2015년 5월 정씨가 뇌물혐의로 체포되기 직전에는 정씨가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를 수집하는 것에 개입했다. 이 과정에서 문 판사는 정씨와 수십차례에 걸쳐 통화했고, 체포되기 전날 밤에는 정씨의 변호를 맡은 고 모 변호사와 함께 룸살롱에서 정씨로부터 접대를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은 정씨를 체포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계속 기각되자 정씨와 조 전 청장을 함께 불구속 기소한 뒤 문 판사의 비위사실을 ‘수사 관련 참고사항’이라는 문건으로 법원행정처에 비공식 통보했다. 혐의자로 직접 조사하지는 않았지만 법관징계법 위반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과 박병대 법원행정처장이 문 판사의 소속 법원장인 부산고법원장이 경고조치하는 선에서 마무리 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날 “검찰이 법원행정처에 문 판사에 대한 비위사실 문건을 전달한 것과 이 문건이 윤리감사관실로 전달된 것은 확인됐지만 대법원장에게 보고되지 않고 법원행정처장 선에서 처리됐다”고 말했다. 또 “경고 조치는 법적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통상적으로 징계까지 갈 사안은 아니더라도 여기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점을 공적으로 확인하고 전달하는 절차“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문서에 따르면, 품위유지 의무 등에 대해 여러 문제가 있기 때문에 경고조치를 한 것으로보이고, 직무관련성에 대한 특별한 사실관계가 드러나지 않아 (징계 없이) 사직처리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이어 “(관할지역 피고인과 접촉했다는 사실) 그것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징계까지 가야 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이날 해명은 다소 궁색하다는 평가가 법조계 중론이다. 관련법규상 법원행정처가 비위사실을 통보받을 경우 일반적으로 징계청구권자를 통하거나 징계청구권자의 의뢰에 따라 윤리감사관실 차원에서 해당 비위사실의 존부와 정도 등을 확인·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불문, 구두 또는 서면경고, 징계청구 등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
 
법관징계법상 징계심의는 대법원장, 대법관, 해당 법관에 대해 법원조직법에 따라 사법행정사무에 관한 감독권을 가지는 법원행정처장, 사법연수원장, 각급 법원장, 법원도서관장이 징계청구를 한다.
 
그러나 당시 법원행정처는 문 판사의 비위 사실이 검찰 조사로 상당부분 확인됐는데도 정상적인 징계준비 절차를 이행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최종 결정권자인 양승태 대법원장에게는 보고조차 되지 않았다. 더욱이 정씨는 문 판사에게 지속적으로 향응을 대접해왔고. 문 판사는 정씨의 형사사건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전례를 보면 이 경우 징계가 아니라 수사에 착수한 예가 적지 않다.
 
문 판사의 비위사실을 절차에 따르지 않고 비공식으로 전달한 것도 문제로 지적한다. 공무원범죄수사개시통보 등 정식공문은 검찰이 대법원 또는 법원행정처를 수신인으로 한 뒤 우편물로 발송하게 돼 있다. 이번 사건이 허술하게 처리된 첫 번째 요인이다. 여기에 검찰이 법관의 비리에 대한 수사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면서 지역 검찰과 법관 사이에 감싸주기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법원과 검찰이 허술한 처리로 비리의혹이 있는 법관에 대한 변호사단체의 견제기능도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법관이나 검찰이 퇴직한 뒤 변호사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소속지방변호사회와 대한변호사협회 등록심사를 거쳐야 한다. 문 판사의 경우 재직 중의 일로 경고조치를 받았으니 당연히 심사대상이 된다. 그러나 문 판사는 지난 1월 법원을 퇴직한 뒤 아무런 제재 없이 변호사 등록을 마치고 정씨의 변호를 맡았던 고 변호사가 있는 로펌으로 들어갔다.
 
대법원 청사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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