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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노동조합도 사회책임을 제대로 인식하고 실천해야
2017-05-29 08:00:00 2017-05-29 08:55:43
국내 굴지의 대기업 기아자동차 노조가 사내 비정규직들을 조합에서 축출한 사건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기아차 노조는 대선캠페인이 한창이던 지난 4월27~28일에 전체 조합원 총투표에서 비정규직 노조를 분리하는 내용의 노조 규약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그러자 기아차 노조의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와 민주노총까지도 기아차노조가 비정규직을 축출한 데 대한 비판과 함께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였으며,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언론들이 기아차노조의 이기적인 행태를 비판하는 사설과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노조의 배타적인 행태는 비단 기아차노조만 아니라 그동안 현대자동차와 한국GM 등 다른 완성차 업계나 대기업노조에서도 종종 문제가 되었다. 이들 회사의 정규직들로 구성된 노조는 같은 회사내 비정규직 근로자나 비정규직만으로 구성된 노조 조직을 정규직노조에 가입시키거나 통합시키기 위하여 노조규약 개정을 몇 차례 시도하였지만 규약개정 권한을 가진 노조 대의원들이 규약개정안을 번번이 부결시킴으로써 노동계 안팎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우리나라 노조 특히 대기업 노조들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비정규직이나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외면한 채 상대적으로 임금수준도 높고 고용도 안정적인 자신들의 처우개선에만 몰두하는 이기적인 집단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노조간부가 종업원 채용과정에 개입하여 뇌물을 챙겼다거나, 조합원들의 피땀 어린 조합비를 횡령하는 등 노조간부들의 부패와 비리 행위도 심심찮게 접하게 되다보니 노조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과 불신은 갈수록 심화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 노조운동의 이러한 단면은 노동운동의 출발점이자 요체라 할 수 있는 ‘단결’과 ‘연대’의 가치를 훼손함으로써 노동운동의 존립근거를 스스로 부정하는 퇴행적인 모습일 뿐 아니라, 최근 들어 세계적이고 시대적인 흐름이 되고 있는 ‘사회책임(Social Responsibility)’의 개념과 원칙에도 정면으로 위배되는 반사회적 행태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 ‘사회책임’은 주로 기업들이 주체이자 대상이 되면서 ‘기업의 사회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의미하는 CSR이 기본 개념으로서 노조는 기업들이 그러한 CSR을 잘 이행하도록 감시하고 촉구하는 역할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우리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종류의 조직들에게 사회책임이 요구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경향은 2010년에 사회책임에 관한 국제표준인 ISO26000이 제정, 시행되면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추세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CSR의 중요성과 함께 노동조합의 사회책임(Union Social Responsibility, USR)의 개념과 필요성에 대한 인식도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이 기존의 사주나 주주의 이익만을 위한 기업활동이 아니라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CSR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노조의 사회책임(USR)도 노조의 주주라 할 수 있는 조합원 중심주의에서 노조의 영향을 받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요구와 기대를 함께 고려하는 활동이나 운동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별 노조체계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나라 노조들에게는 회사내 비정규직이나 비조합원 노동자뿐 아니라 하청업체 노동자와 협력업체 사업주, 기업이 소재한 지역의 주민이나 주변의 영세상인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로 둘러싸여 있다.
 
이처럼 USR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과 사회적인 요구가 고조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서는 아직 ‘노조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공감대나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LG전자 노조를 비롯하여 USR을 실천하고 있는 몇몇 선구적인 노조들조차도 사회책임의 개념과 실천과제를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봉사활동이나 사회공헌에만 한정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노조의 사회책임(USR)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행하기 위해서는 ISO26000에서 제시하고 있는 지배구조, 인권, 노동관행, 환경, 소비자보호, 공정운영, 지역사회 참여 등 7가지 범주에 대해서 관련 이해관계자들의 기대와 요구를 반영하는 사업목표를 수립,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노조 집행부의 민주적 선출’, ‘노조 운영의 투명성과 윤리적 행동’, ‘지역사회 참여 및 발전에 공헌’, ‘비정규직과 협력사 노동자 처우개선’, ‘환경보전’, ‘소비자와 지역주민 권익 보호’, ‘기업의 사회책임 이행감시 및 촉구’ 등 구체적인 활동들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노조가 자신들에게 부과된 사회적 책임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제대로 실천하는 것은 그동안 기업수익의 분배에만 집중해 온 우리나라 노동조합들의 활동영역을 다양한 사회적 의제로 확장시킴으로써 ‘연대’의 가치를 회복하고 노조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신뢰를 구축하여 노동조합운동의 수준을 높이는 유력한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강충호 한국사회책임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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