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모델로 이른바 '중규직'이 떠오르고 있다. 상시적인 고용불안을 겪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실제 사용자가 자회사 또는 공익법인을 설립해 고용하는 형태로, 직접고용의 부담은 덜면서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까지 노릴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평가다.
22일 민주노총 희망연대노조 등 노동계는 성명을 통해 "SK브로드밴드의 직접고용 방침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수년 동안 노사 갈등의 쟁점으로 작용한 만큼 노동계는 SK브로드밴드가 제안한 중규직 모델을 일단 반기는 모양새다. 앞서 SK브로드밴드는 21일 고객관리 등을 수행하는 103개 홈센터 직원 약 5200명을 새로 설립하는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간접고용 문제가 알려진 건 2012년 이후다. 서울시 다산콜센터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근무하는 사업장에 노조가 설립되면서 열악한 근무환경이 드러났다. 간접고용은 원청업체로부터 특정 업무를 위탁받은 협력업체가 노동자를 고용하는 형태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원청업체의 필수업무를 수행하지만 처우는 낮고 고용은 불안하다. 원청은 1~2년 단위로 협력업체와 위탁계약을 갱신하는데, 이때마다 고용문제가 불거진다. 반면 중규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중간으로, 고용은 안정되지만 처우는 정규직에 못 미치는 고용 형태를 일컫는다. 공공부문의 무기계약직 노동자를 나타내는 말에서 최근에는 민간까지 의미가 확장돼 쓰이고 있다.
공공부문의 간접고용 문제를 해결한 선례를 만든 건 서울시다. 2015년부터 서울시는 재단을 설립해 상담사를 직접고용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직접고용의 부담을 피하면서도 410명에 달하는 상담사의 고용안정을 보장하고, 상담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게 재단 설립의 취지였다. 지난 1일 출범된 120다산콜재단에 고용된 상담사들의 처우는 이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고용불안에서는 완전히 벗어났다.
자회사를 설립해 원청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채용하는 사례는 새 정부에서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없애겠다고 밝히면서 7000명에 달하는 인천공항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연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공사는 ‘좋은일자리창출TF(태스크포스)’를 구성했고, 노조와 정규직 전환 논의에 착수했다. 노동계에 따르면 인천공항에서도 자회사를 설립해 비정규직을 직접고용하는 방안이 논의될 전망이다.
중규직의 장점과 단점은 분명하다는 게 노동계의 중론이다. 자회사에 직접고용되면서 노조는 자신들의 근로조건을 결정할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있게 됐다. 그간 원청은 협력업체 노사 교섭 불참을 원칙으로 해 교섭 타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고, 파업 등 갈등으로 비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용자가 1개 기업 단위로 단일화되는 것도 장점이다.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조의 경우 43곳에 달하는 협력업체 사용자를 상대해야 했다. 협력업체별로 근로조건 등 처우도 달라 어려움을 겪었다. 직접고용될 경우 이 같은 문제가 해소된다. 또 원청이 노동자의 산업안전도 직접 챙기면서 안전사고의 위험성도 줄어든다.
우려도 적지 않다. 자회사로 직접고용되면서 처우 개선에 대한 조합원들의 요구가 상당하다. 노조의 중요한 결정은 조합원 총회를 통해 결정하는데, 고용만 안정되고 처우 개선이 이뤄지지 못할 경우 조합원들이 거세게 반발할 수도 있다. 희망연대노조는 "노동조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고용만 보장된 중규직 소리를 들을 것"이라며 또 다른 투쟁을 예고했다. 노조의 직접고용 투쟁 명분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노동계는 수년간 실제 사용자인 원청이 직접고용하라고 투쟁해왔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미국처럼 공동사용자성 개념을 도입해 자회사의 노사문제에 대한 책임을 원청도 함께 지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조합원이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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