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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낮춘 대법원장 "무거운 책임 통감"(종합)
판사들 릴레이 항의에 '전국법관대표회의' 요구 수용
2017-05-17 17:19:39 2017-05-17 17:20:31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법원행정처가 법원 내 진보성향의 판사들의 사법개혁 움직임을 부당하게 견제하려 한 사실과 관련해 일선 법관들이 집단적인 항의가 이어지자 양승태 대법원장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양 대법원장은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들의 의결을 받아들여 이르면 이달 내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열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09년 신영철 전 대법관의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촛불재판 개입사건’ 이후 두 번째로 전국단위의 법관회의가 열리게 됐다.
 
양 대법원장은 17일 법원 내부 게시판에 ‘전국의 법관 여러분’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최근 법원 내부의 현안으로 인해 모든 법원 가족들이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며 “사법행정의 최종적인 책임을 맡고 있는 저의 부덕과 불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또 “대법원장 취임 이후 줄곧 국민의 신뢰를 쌓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왔고 내부적인 소통과 공감대 형성 또한 절실히 필요함을 강조하던 가운데 이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법관 여러분께 크나큰 충격과 걱정을 끼쳐드리고 자존감에 상처를 남기게 되어 참으로 가슴 아프고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과 같은 사건은 사법부 내에서 처음 일어난 일이고 그 처리 문제를 대법원장이 혼자 결정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해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이를 부의했다”며 “향후 그 심의 결과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 대법원장은 특히 “이번 사태를 맞아 향후 사법행정의 방식을 환골탈태하려고 계획함에 앞서 광범위하고 심도 깊은 논의를 통해 법관들의 다양한 시각과 의견을 취합하는 과정이 빠져서는 안 되리라 생각한다”며 “전국 법관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각급 법원에서 선정된 법관들이 함께 모여 현안과 관련해 제기된 문제점과 개선책을 진솔하고 심도 있게 토론하고 의견을 모을 수 있는 논의의 장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법원행정처도 필요한 범위에서 이를 최대한 지원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창보 법원행정처 차장도 이날 전국 법관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전국 법관이 모여 현안과 개선방안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조속히 마련하겠다”며 “최대한 신속히 준비해 늦어도 다음 주 까지는 구체적인 방안을 여러분께 알려 드리겠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3월 법원행정처가 진보성향의 국제인권법연구회가 계획한 학술회의를 축소하고 소속 판사들을 중심으로 한 블랙리스트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혹 등이 제기됐다. 이에 양 대법원장은 이인복 사법연수원 석좌교수(전 대법관)를 진상조사위원장으로 지명하고 조사에 대한 전권을 위임했다.
 
이 교수는 지난달 19일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일부 의혹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서는 블랙리스트가 존재할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컴퓨터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가 법원행정처장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논란이 계속돼왔다.
 
이후 전국 일선 법관들은 법원단위별로 판사회회를 열고 이번 사태에 대한 양 대법원장의 직접적인 책임인정과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재조사를 요구했다. 지난달 25일 서울동부지법에 이어 대전지법, 서울남부지법, 인천지법, 대구지법, 창원지법, 수원지법, 제주지법, 춘천지법 등에서 판사회의가 열렸으며, 지난 15일에는 전국 최대 규모인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들이 회의를 열고 전국법관대표회의 개최를 제안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 3월1일 오전 제98주년 3·1절 기념식이 열린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기념사를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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