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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시대) 가난한 실향민 아들, 유치장서 사시 합격…인권변호사로 '노무현'과 정치적 동행
노 전 대통령 서거 '운명의 시작'…총선승리·탄핵정국으로 '대세론' 굳혀
2017-05-10 06:00:00 2017-05-10 06:00:00
[뉴스토마토 한고은 기자] 문재인 후보는 1953년 1월 경상남도 거제에서 태어났다. 경남 거제는 한국전쟁 당시 함경남도 흥남에서 피난 온 문 후보의 가족이 정착한 곳이었다. 가난을 피할 수 없었던 문 후보의 가족은 아버지의 장사와 어머니의 연탄배달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갔다. 명문 경남고등학교에 입학한 문 후보는 좋은 성적을 유지하면서도 모범생으로만 살지는 않았다. 술과 담배를 했고, 싸움에 말려 정학을 당하기도 했다. 이때 '문제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대학 시절에는 독재정권의 탄압에 반대하며 학내시위를 주도했다. 1975년 4월 인혁당 사건에 항의하는 학내시위로 구속된 문 후보는 석방 후 강제징집 된다. 특전사령부 제1공수 특전여단에 배치돼 폭파과정 최우수 표창을 받는 등 특급사병으로 군생활을 마쳤다.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대응작전에 투입됐던 이력은 선거 과정에서 '안보관 불안' 비판에 대적하는 실증 자료로 쓰이기도 했다.
 
1978년 군 제대 후 사법고시의 길을 택했다. 1980년 확대 계엄 조치로 또다시 구속된 문 후보는 유치장에서 사법고시 2차 시험 합격증을 받았다. 연수원 차석 성적에도 시위 전력으로 판사 임용에서 탈락했다. 부산으로 내려가 지역의 인권, 시국, 노동사건을 전담해서 맡았고 노무현 변호사와 함께 인권변호사로서의 면모를 갖춰갔다. 2002년 대선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 곁에서 민정수석 등을 역임하며 국정운영 경험을 쌓았다.
 
2009년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정치에 입문하지 않겠다던 문 후보의 결심이 흔들렸다.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2012년 총선에서 승리하며 초선의원이 됐지만, 그해 대선에서는 야권 단일화 끝에 만들어진 박근혜 후보와의 양자 대결에서 석패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정중동 행보를 보였던 문 후보는 NLL 논란과 정상회담 대화록 불법 공개 국면에서 전면에 나섰고,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 단식에 동참하며 박근혜 정부와 대척점에 섰다. 당내에서는 '패권주의'로 공격받았으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영입하는 등 총선 승리로 존재감을 키워나갔다. 지난 대선 당시 권력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문 후보는 "정권교체의 삽이 되고, 적폐청산의 벽을 깨는 망치가 되고, 정의로운 반석을 다지는 곡괭이가 되겠다"며 자신을 새로운 대한민국의 도구로 써달라고 호소했고,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특전사 군복무 시절 모습. 사진/더불어민주당
 
한고은 기자 atninedec@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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