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우리 정부가 한미 간 법적 효력을 지닌 어떤 합의도 없이 사드 배치를 강행한다는 주장이 나온 가운데, 우리나라보다 앞서 미사일방어체계(MD)를 도입한 루마니아, 폴란드 사례와 비교할 경우 사드 배치가 더욱 졸속으로 강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두드러진다는 지적이다. 루마니아, 폴란드는 각각 미국과 MD 도입에 따른 제반 사항을 정리한 협정문을 만들고 정식으로 조약을 체결했다는 점에서, 실무자 간 임의 합의만으로 사드를 도입하기로 한 우리 정부와 차원이 다르다.
16일 '평화통일연구소'가 발굴하고 취재팀이 입수한 '루마니아와 미국 간 MD 협정문(2011년 9월13일)'과 '폴란드와 미국 간 MD 협정문(2008년 8월20일)', '폴란드와 미국 간 MD 협정 수정의정서(2010년 7월3일)' 등을 보면, 폴란드와 루마니아는 각각 지난 2010년과 2011년 미국과 '이지스 어쇼(Aegis ashore)' 무기 체계 도입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루마니아는 2016년 5월 이지스 어쇼를 배치했으며, 폴란드는 오는 2018년 도입 예정이다.
이지스 어쇼는 해군 이지스함에 장착하는 요격 미사일을 지상에 배치한 것이다. 사드가 중거리 미사일을 고고도에서 요격하는 용도라면, 이지스 어쇼는 사드보다 더 높은 고도에서 미사일을 요격한다. 이것도 미국 MD체계의 일환이다. 2010년 미국 워싱턴포스트 등은 "이란 등에서 발사되는 미사일에 방어하려고 이지스 어쇼를 동유럽에 배치한다"는 미국 정부의 입장을 전하면서도 딱히 중동에서 동유럽으로 미사일을 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들어 사실상 러시아 견제용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의 사드와 루마니아·폴란드의 이지스 어쇼 모두 자국의 국익은 물론 인접국과의 관계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장비다. 하지만 MD 도입에 대처하는 세 나라의 태도는 천지 차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14일 본지는 우리나라와 미국은 양국 국방부 실무자들이 작성한 운용보고서를 바탕으로 국방부 임의 합의로 사드 배치를 결정했다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의 주장을 보도했다. 이들은 한미 양국은 법적 구속력을 갖춘 합의문도 작성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루마니아와 폴란드는 각각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나토 소파 보충협정'을 체결한 상태에서 MD를 도입했으면서도 각국 국가원수의 위임을 받은 외교부 장관이 미국 국무장관과 정식으로 협정문을 작성하고 이를 공개했다. 우선 루마니아는 지난 2011년 티투스 콜라틴 외교부 장관이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국 국무장관과 총 14개 조항으로 이뤄진 협정문을 만들었다. 문서에는 기지 관할권과 시설, 지휘통제권, 청구권, 환경과 보건·안전, 비용 부담 등에 관해 각각 3~4개의 세부 조항을 명시할 정도로 상세히 규정됐다.
지난 2011년 9월13일 티투스 콜라틴 루마니아 외교부 장관과 힐리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루마니아에 '이지스 어쇼'를 도입하기로 하고 협정문을 작성한 후 일반에 공개했다. 사진/뉴스토마토
협정문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기지 관할권과 관련해 루마니아는 자국 영토 내 미국 MD 기지에 관한 사법적 관할권을 루마니아가 행사하도록 명시했다. 비용 부담에서도 기지 내 시설구축 비용은 미국이 부담하되 기지 밖의 전기와 가스, 수도, 통신 등 각종 기반시설 건설과 관련 비용 등은 양국이 분담한다는고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또 이 협정을 이행하기 위한 약정만 해도 14개에 달한다.
폴란드도 루마니아와 마찬가지로 2010년 이지스 어쇼·폴란드 미사일방어시스템 배치에 관한 협정문을 작성했다. 특히 폴란드는 미사일 시험 발사에 관한 사항까지 포함, 폴란드가 동의하지 않으면 시험 발사를 하지 못하게 했다.
지난 2008년 8월20일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교부 장관과 콘톨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폴란드에 '이지스 어쇼'를 도입하기로 하고 협정문을 작성한 후 일반에 공개했다. 사진/뉴스토마토
루마니아와 폴란드는 자국 내 MD 도입을 조약으로 인식하고 외교부가 나서 미국과 정식으로 협정문을 작성했다. 루마니아와 폴란드는 나토 조약에 의거해 군사 장비를 배치하고 실무 협의는 국방부가 맡았지만 최종 협정은 외교부가 맡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발표만 했을 뿐 법적 구속력을 갖춘 합의문이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며, 제반 사항에 대한 협정문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조약을 맺고 협정문을 만들 외교부는 스스로 "국방부로부터 사드 배치에 관한 한미 간 합의에 관해 의뢰받지 못했고, 합의에 관한 주무 부서는 국방부"라고 털어놓을 정도로 이번 일에서 배제됐다. 오히려 정부 스스로 사드 배치는 조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국회 비준동의도 거치지 않고 있다.
국제법 전문가인 김영석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는 "사드 협정을 조약이라고 한다면 외교부 장관이 협정문에 정식으로 서명해야 하며, 기관 간 약정이라면 국방부 자체적으로 체결할 수 있다"며 "그러나 기관 간 약정은 해당 기관의 업무에 국한된 단순 사무, 교류 등에만 한정된다"고 말했다.
고영대 평화통일연소 연구위원은 "정부는 법적으로 효력을 가진 합의문도 없는 상태로 사드를 들여오기로 했으며, 이와 관련된 협정문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공개하지도 않고 있다"며 "협정문이 없어도 문제고, 만약 우리나라에 불리한 내용이 있을까봐 공개하지 않거나 이면합의를 했다면 그 역시도 불법이며 졸속 추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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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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