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박근혜 정권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완전정복
2017-01-19 22:17:56 2017-01-19 22:17:56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천하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박근혜 복심’ 조윤선 문화체육부장관에 대한 구속여부가 내일(20일) 밤늦게 결정됩니다. 두 사람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문화예술가들을 ‘관리’한 혐의(직권남용)를 받고 있습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검찰 특별수사본부 수사단계에서는 수사가 안 됐습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 작품이데, 이 정부가 '블랙리스트'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우려스러울 정도로 관대합니다. 이명박 정권 때 민간인 사찰도 '블랙리스트'가 뿌리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정부를 비판하거나 야당 인사를 지지하는 문화예술인들만 모아 불이익을 준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법조인들 중에도 "그게 뭐 어때서"라는 의식을 갖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특검팀 관계자는 "문화계 지원배제 명단을 작성해 시행한 행위가 국민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판단해 엄중한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도종환 의원 폭로
 
본론으로 돌아가서, 우선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자체가 처음 수면위로 나오게 된 경위부터 짚어보겠습니다. 그 시작은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의 폭로성 발언입니다. 시인이기도 한 도 의원은 지난해 7월19일 일부 문예지 편집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문예지 지원제도의 현황과 제언'이라는 심포지엄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작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우수문예지 지원사업과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특정 작가들을 심사위원들에게 제외해 달라고 요구하는 등 많은 문제들을 야기시켰다." 
 
이 때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처음 공개적으로 언급됐습니다. 2015년, 정확히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라고 봐야겠지만 이때부터 문화예술계에서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정부를 비판하는 작품활동을 하는 문화예술인들의 블랙리스트를 정부가 만들어 관리하면서 불이익을 주고 있다. 이런 풍문이 돌았습니다. 별도로 다뤄야 하겠습니다만, 이런 풍문은 이미 이명박 정권 때부터 있었습니다. 
 
어쨌든,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야당 간사인 도 의원은 국정감사 기간이죠, 작년 10월10일 보도자료를 내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회의록 자료를 분석한 결과 청와대와 문화부가 예술위원회 심사 및 심사위원 선정에 개입하고 있는 것,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다”고 폭로했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5월29일 회의록을 보면 위원 중 한 명이 “결국 그 분도 청와대에서 배제한다는 얘기로 해서 심사에 빠졌습니다”라고 발언한 것이 나옵니다. 도 의원은 이 발언이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관리하는 데 청와대가 개입한 증거라 주장했습니다. 
 
리스트 배후는 청와대
 
그 다음날 <한국일보>가 문화예술계 한 인사를 인용해 “지난해 5월 흔히 말하는 블랙리스트가 청와대로부터 내려왔다”고 단독보도하면서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졌습니다. 이 인사는 “실제 이 문건을 직접 보기도 했고,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사진으로 찍어뒀다”면서 “(해당 문건의) 표지 뒤에는 9473명에 달하는 명단이 리스트로 붙어 있었고, 이 때문에 이 문건은 A4용지로 100장이 넘는 두꺼운 분량이었다”고 폭로했습니다. 
 
해당 문건에 등장하는 명단 리스트는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를 촉구한 문화예술인 594인을 비롯해 ‘세월호 시국 선언’을 한 문학인 754인,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한 6517인, 박원순 후보 지지를 선언한 1608인 등 총 9473인의 이름이 소속과 리스트에 오른 사유 등이 정리돼있습니다. 사실상 성향분석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청와대에서 문화예술인들을 불법사찰한 것 아니냐. 이런 문제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인사 들 중에는 박찬욱 영화감독을 비롯해 김지운·김기덕·이창동, 배우 송강호·김혜수·문소리·박해일 등이 포함됐습니다. 이들은 지난해 5월 시행된 ‘세월호 정부 시행령’에 대한 폐기 촉구 선언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블랙리스트’에 대한 파장이 번지자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블랙리스트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를 받았다”고 일축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도 의원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회의록 자료 중 3분의 1 분량이 삭제된 것을 발견했고, 이것을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위원들을 상대로 추적을 합니다. 그 결과 위원들이 심사를 해야 하는데 리스트 때문에 너무 힘들다 이런 고충을 털어놨고, 이런 내용이 담긴 육성녹음파일을 국감장에서 틀면서 반박을 합니다. 
 
주무부서는 정무수석실
 
여기서 며칠 뒤인 11월8일 <한겨레>가 블랙리스트 작성과 전달은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맡아 진행했다고 보도합니다. 한겨레는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지원하지 말아야 할 문화·예술계 인사와 단체들의 명단을 작성했고, 이 명단을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문체부와 문화예술위원회로 보내 지원사업 선정에 반영하도록 했다고 보도합니다. 
 
이때 정무수석이 바로 조 장관입니다. 조 장관은 2014년 6월부터 2015년 5월까지 정무수석으로 있었고 정관주 전 문체부 제1차관(2016.02 ~ 2016.12)은 2014년 10월부터 2016년 2월까지 국민소통비서관으로 근무했습니다. 두 사람이 결국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것이라는 것이 한겨레 보도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발생하죠.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사람은 조 장관과 정 차관이다. 그렇다면 누가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라고 지시했는가. 당시 정무수석에게 이런 것을 지시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두명 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김 전 실장은 2013년08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지시를 했는가 하는 물증이 없었지요. 
 
그런데, 이게 한겨레 보도 이틀 후인 지난해 11월10일 실마리가 잡힙니다. TV조선이 고 김영한 전 수석(2014.06 ~ 2015.01)이 작성한 업무수첩, 즉 비망록 내용을 공개합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지요. 김 전 수석의 비망록은 안종범 전 청와대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의 휴대폰 녹음파일과 함께 이번 사건의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사이비 예술가 발 못붙이게 하라"
 
TV조선은 김 전 수석의 비망록을 인용해 김 전 실장이 "사이비 예술가가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김 전 수석의 비망록에는 ‘세월오월' 작가인 홍성담 씨를 배제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지난해 2월 물러난 박민권 문체부 1차관의 경질 배경도 해당 업무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이 내용 말고도 비망록에는 당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추정되는 ‘장(長)’의 지시사항 등이 꼼꼼히 기록돼있는데 2014년 8월 6일자 기록에는 ‘광주비엔날레특별전. 광주시장(윤장현)’, 7일엔 ‘우병우팀, 허수아비 그림(광주) 애국단체 명예훼손 고발’, 8일 ‘광주비엔날레-개막식에 걸지 않기로’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해당 메모의 내용은 홍성담 화백의 작품 ‘세월오월’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 작품은 박 대통령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조종을 받는 허수아비로 묘사했습니다. 김 전 수석의 비망록 내용, 다시 말해 김 전 비서실장의 지시대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작성됐고, 리스트에 언급된 문화예술인들을 탄압했다는 것이 후에 사실로 드러납니다. 실제 홍 화백의 ‘세월오월’은 2014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인 ‘광주 정신展’에 출품될 계획이었지만 ‘대통령을 희화화한다’는 이유로 광주시로부터 수정 압박을 받게 되고 결국 홍 화백인 전시를 포기합니다. 
 
'애국단체 명예훼손 고발' 지침
 
메모에 적힌 ‘애국단체 명예훼손 고발’이 부분은 8월8일 보수단체들이 ‘세월오월’을 고발하면서 현실화 됩니다. 이것은 대표적으로 알려진 것이고 그 외에 여러 문화예술인들이 김영한 수석의 비망록에 적힌 대로, 다시 말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지시한대로 탄압을 받은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물론 문체부는 블랙리스트 존재 자체를 부인하면 법적 대응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언론보도를 통해 잇따라 블랙리스트의 존재와 관련자들이 나오는데 조윤선 문체부 장관은 오리발을 내밀죠. 조 장관은 지난해 11월 30일 1차 기관보고와 지난달 15일 4차 청문회 등에서 “저는 전혀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바도 없고 그런 사실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실명 밝히고 나와서 저하고 사실을 가렸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발뺌합니다. 
 
여기까지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의 큰 줄기입니다. 그리고 이후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와 특검 수사를 통해서 주변인물들이 더 늘어납니다. 문화연대 등 12개 문화단체가 지난 12월12일 제출한 고발장이 신호탄이 됩니다. 문화연대 등은 고발장에서 김 전 실장과 조 장관, 송광용(63) 전 교육문화수석, 서병수(64) 부산광역시장, 모철민(58) 전 교육문화수석 등 9명을 직권남용·강요·업무방해 등 혐의, 즉 블랙리스트 작성과 문화예술인 불법 관리 혐의로 특검에 고발했습니다. 
 
이후 특검이 지난 달 26일 김 전 비서실장과 조 장관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수사가 본격 시작됩니다. 당일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CBS 라디오에 출연해 “리스트 (형식) 이전에 구두로, 수시로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라고 하면서 모철민 수석이나 김소영 비서관을 통해 문체부로 전달됐다”고 말합니다.
  
유진룡 "김기춘 비서실장 지시"
 
이튿날인 12월27일부터는 관련자들이 줄소환 됩니다 정관주(52)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에 이어서 28일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과 신동철(55) 전 정무비서관, 29일 모철민(58) 주프랑스 대사(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 30일 김종덕(59)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31일 김희범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참고인)이 출석했습니다. 31일 특검은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종덕 전 장관, 정관주 전 1차관을 국회 청문회 위증혐의로 고발해줄 것을 국회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요청했습니다. 
 
병신년을 보낸 정유년 벽두에도 관련자들의 소환은 이어집니다. 2일 송광용(64)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소환과 이병기(70) 전 대통령 비서실장자택 압수수색, 3일 유동훈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전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장)이 소환되고 같은 날 국회 국조특위는 문화체육관광부 조윤선 장관과 김종덕 전 장관, 정관주 전 1차관 등 3명을 위증 혐의로 특검에 고발합니다. 5일에는 송수근(56)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전 문체부 기획조정실장 시절 '건전콘텐츠 TF' 팀장, 이후 문체부 차관으로 승진)이 소환됩니다. 
 
이날 특검은 블랙리스트 관련자를 공식 발표하면서 “김상률 전 청와대 수석, 김종덕 전 장관, 김종 전 차관 등과 관련한 인사조치 부당성을 조사하던 중 조직적으로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관리에 관련된 사람이 발견됐고 지금 언급되고 있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체부장관이 관련 된 것이 드러났다”고 공식화 합니다. 또 “박 대통령이 명단 작성을 지시한 정황이 있는지를 수사하고 있다”고 말해 박 대통령도 조사 대상임을 밝힙니다. 
 
이튿날인 6일 모철민 대사가 재소환됐으며, 7일에는 정무수석실 전직 비서관 2명이 피의자 신분으로, 정관주 전 문체부 차관과 신동철 전 청와대 비서관이 역시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받습니다. 8일에는 김종덕 전 문체부장관,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이 피의자로 신분이 변경돼 특검에 출석합니다. 
 
당시 정관주, 신동철, 김종덕, 김상률 등 네명이 어제 피의자로 신분이 전환됐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었습니다. 일단 이들은 조윤선 장관이 정무수석으로 근무할 당시 직간접적으로 같이 일했기 때문입니다. 
 
특검, 김기춘·조윤선 구속영장 청구
 
특검은 지난 9일 김종덕(60)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상률(57)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정관주(53) 전 국민소통비서관, 신동철(56) 전 정무비서관에 대해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이 가운데 김 전 수석을 제외하고 나머지 3명은 12일 모두 구속됐습니다.
 
결국 특검은 지난 17일 '몸통'격인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한 뒤 이튿날인 18일 두 사람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이 두 사람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20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중앙지법에서 성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열릴 예정입니다. 구속여부는 이날 밤 늦게 또는 21일 새벽에 결정됩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작성과 관리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기춘(왼쪽)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별검사 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