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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인의 아해(兒孩)가 도로를 질주하오
2016-11-16 18:36:38 2016-11-16 18:36:38
지난 12일. 백만 명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와 하나의 시로 함축되던 날.
 
100만인의 아해(兒孩)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저마다의 억울함과 분노를 안은 채 모두 광화문과 서울광장의 도로를 메웠다. 경복궁을 둘러싼 벽을 마주하기까지 앞 사람의 신발을 연거푸 밟으며 도로를 질주하던 세 명의 대학생들은 집회에 나오게 된 각자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엄마가 어제 나를 보며 그랬어. ‘여태 내가 가방끈이 짧아서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거겠지’ 하며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자격지심을 느끼며 새벽부터 열두 시간이 넘게 일해도 희망 없이 살아야했던 건 가진 사람들이 더 가지려고 했기 때문이었다고. 그것도 모르고 스스로를 탓하며 하루하루를 견뎠던 게 너무 억울하고 억울해서…. 엄마가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털어놓듯 그렇게 나한테 말했어. 열심히 살아도 희망 없는 미래가 무서워.”
 
제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우리집은 밤 9시 반이면 불이 꺼져. 아빠는 새벽 4시, 엄마는 새벽 5시에 출근해야 해. 부모님은 일주일에 겨우 하루를 맞춰서 쉬시는데 몸이 채 회복되기도 전에 내일 출근을 준비해. 오늘도 너무 함께하고 싶어 하셨는데 출근 준비 때문에 오시지 못했어. 누군가는 재능 없이도 말을 타고 생일파티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생활을 반복해서 하고 있다는 게 끔찍해.”
 
제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부모님도 그렇고 사실 우리들도 마찬가지야. 어렵게 인턴 합격해서 일을 해도 최저시급이다, 수습기간이다 해서 조금씩 덜 받고 밥값, 교통비 제외하고 학비에 좀 보태고 나면 끝이야. ‘나중엔 지금보다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겠지’ 하면서도 막막하고 답답해.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일수록 더 사람을 쥐어 짜낸다고 표현하잖아? 지금보다 힘든 미래라니. 부모님은 그래도 내가 희망이라고 바라보시는데 나한테 희망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
 
 
새벽에 출근을 위해 버스를 타는 사람들. 사진/바람아시아
 
 
6030원. 새벽부터 일하는 사람의 하루와 출퇴근 시간의 멍한 눈동자에 담긴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의 고운 손에 의해 최저시급이 결정되었다. 담뱃값과 버스 비용은 숨이 막힐 정도로 급격히 증가하지만 최저임금은 내년에 고작 7.3%(440원) 올라 6470원이 된다. 안현정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사용자 측 위원들이 와서 ‘진짜 최저임금만 받고 살아요?’라고 물었고, ‘그 돈으로 대체 어떻게 살아요?’라 묻는 것 같아 참담했다”고 말했다. 결국 마치 짜인 각본처럼 정부 입맛에 맞게 행동하는 공익위원들에 의해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되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고졸 이하 여성의 비정규직이 크게 증가했다. 2011년까지 40% 초반을 기록하던 여성 비정규직 비율은 2013년 54.8%, 2015년 55.1%로 뛰었다. 정부가 지원하는 정책이 대부분 비정규직을 채워 숫자만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22.8%에 불과했던 시간제 비중은 지난해 46.3%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취업이 어려워진 청년들이 아르바이트 등을 선택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비정규직의 월급은 세금 공제하면 월 120만 원. 새벽부터 일하고 몸을 충분히 회복할 시간조차 없이 일을 해서 번 돈은 카드를 돌려막고, 생활비, 학비 등을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메마른 표정으로 이른 아침부터 출근하고, ‘다들 이렇게 사니까’라고 자위하며, 변변한 취미 생활도 없이 그저 스마트폰에서 위로를 찾아야 하는 이유는 결코 ‘가방끈이 짧아서도’, ‘열심히 살지 않았기 때문’이어서도 안 된다.
 
제4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00만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100만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00만의아해가도로를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이상의 「오감도」에 등장하는 “13인의 아해”를 넘어 100만의 사람들이 청와대로 질주했다. “길은 막다른 골목이어도”, “뚫린 골목이어도” 100만 촛불들에겐 상관없었다. 지난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한 종교계 원로를 만나 “잠이 보약이다”라고 말했다는 보도에 청와대는 “잠이 최고인 것 같다”고 말한 것이라며 해명했다. 잠이 보약이든 최고든, 좀처럼 잠들기 힘든 이른 시간에 잠에 들어야만 겨우 새벽에 단잠을 깨울 수 있는 국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대는 아는가.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구예원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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