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고은 기자]100원짜리 하나 없이 밖에 나가도 불편하지 않은 세상이 됐다. 카드 한 장만 있으면 그야말로 다 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버스에서는 '티머니'를 찍고, 카페에 가서는 휴대전화에 등록된 신용카드 화면을 단말기에 대기만 하면 된다. 잔돈 거슬러 받을 일이 점점 없어지는 '현금 없는 사회'는 화폐를 생산해내는 한국조폐공사의 존재 이유를 위협하고 있다.
화폐 사용량이 매년 줄어들면서 앞날이 어둡기만 했던 조폐공사는 올해 창립 이래 최고 매출액 기록 달성을 앞두고 있다. 2014년 방만경영 정상화 대상 신세를 면치 못했던 조폐공사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A등급을 2년 연속 받으며 공기업계의 모범생으로 환골탈태했다. 변화의 중심에는 1951년 공사 창립 이후 꾸준히 쌓아왔던 화폐 제조 기술 노하우가 있었다. 2014년 4월 부임 이후 조폐공사의 체질개선을 진두지휘해왔던 김화동 한국조폐공사 사장을 대전 본사에서 만나 조폐공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현금 없는 사회', 어떻게 바라보나.
올해 조폐공사의 역할 정립을 위한 고민의 결과로 미래 보고서 'KOMSCO 2040'을 발표했다. 자체적인 연구결과를 통해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가 온다기보다는 '현금이 덜 쓰이는 사회(The less cash society)'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어느 경우라도 공사의 근간이 되는 화폐 사업량이 줄어드는 시대적 변화를 막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본다.
공사의 존재 이유가 흔들리는 와중에 2014년 방만경영 정상화 대상으로 지목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2014년 4월 조폐공사 사장으로 임명받았을 때 공사가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었다. 신용카드 결제 확산과 2009년 5만원권 발행 영향으로 화폐 제조량이 10년째 감소하고 있었고, 2009년에 면펄프 생산기지 확보를 위해 3000만달러를 투자해 우즈베키스탄에 설립한 해외 자회사 GKD도 5년 연속 적자를 내고 있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문제 있는 사업이라는 지적이 많았고, 감사원 감사 결과도 좋지 않았다. 1년 정도의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자회사를 청산하면 우리가 떠안아야 할 손실이 300억원 정도였는데 공사의 연간 영업이익이 30~40억원 정도였다. 7~8년 영업해서 빚 갚는데 허덕거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공무원 출신이지만 경영 위기에 대처하는 기본적인 처방이 있다. 첫 번째는 비용절감이다. 비용절감을 위해서 220명 정도이던 현지인력을 15% 정도 줄였다. 두 번째로 본사에서 '면펄프 사업단'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공사 안에서도 '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가 이렇게 일하고 있구나'하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다. TF 안에 생산팀과 판매팀을 만들어 면펄프 전문 인력을 계속 파견해 품질 안정화 노력을 기울였고, 마케팅에도 전력을 다했다. 유럽, 동남아, 국내 기업 등 5개 정도의 큰 판매처를 확보하게 됐고 2014년 상반기 결산 기준 자본잠식 상태였던 자회사가 그해 연말 자본잠식 정도를 조금 면하게 됐다. 2015년에는 당기순익 80만 달러를 실현하며 흑자경영으로 전환됐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안정되고 실적도 좋게 나오고 있다. 이런 경영 성과를 인정받아 2014·2015년 정부 경영평가에서 연속 A등급을 받았다.
사업 다각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제조업에서 소프트웨어(SW) 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공사의 사업 비중에서 약 60%를 차지하던 화폐 관련 사업이 지금은 40% 정도로 내려왔다. 앞으로 30%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공사의 위기요인이었고, 기술 쪽으로 눈을 돌렸다.
1967년부터 기술연구원을 운영하면서 현재 600건 정도의 지식재산권을 보유하고 있고, 그중 특허가 400건 정도다. 화폐는 한번 만들어지면 (제조 기준이) 10년씩 가기 때문에 이 기술들을 화폐 제조에 다 사용하기는 어렵다. 이 아까운 기술을 민간에 개방해서 사업화해보자는 착상에서 출발해 2014년 9월 처음으로 위·변조 방지 신기술 설명회를 개최했다.
우리 기술은 제품 내용에 변화를 주기보다는 만들어진 제품이 정품인지 아닌지를 쉽게 판별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 대부분인데 마침 K-브랜드, K-뷰티 상품이 해외에 많이 진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외에 진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 제품을 모방한 짝퉁 화장품이 유통되면서 모처럼 해외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이 망할 지경이 됐다. 이런 업체들에서 위·변조 방지 기술에 관심을 가졌고, 손톱깎이로 유명한 '777', 정관장 제품 등에도 우리 기술이 쓰이게 됐다. 업체들 모두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또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담배 밀수 등 불법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담뱃갑에 고유식별 표시장치 및 추적 시스템 구축을 권고했다. 이와 관련해 국회에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돼있는데 여기서도 우리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보통 제품을 1억원 어치 팔면 이익은 100~200만원인데 반해 기술 로열티 10~20억원은 굉장히 크다. 제품 판매기준으로는 몇백억원 어치를 파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술 관련 수입이 아직 금액적으로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아주 알토란같은 돈이라고 할 수 있다.
보안기술 역량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연구개발(R&D) 인력들의 역할이 중요했을 것 같다. 현재 조폐공사의 보안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1967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기술연구원 인력과 조직을 확충하고 관련 예산 투입도 공기업 중 상위 수준인 4.5~4.6% 정도로 유지하도록 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제조업이라 연구개발이 중요하다. 5%가 목표인데 민간기업과 비교해봐도 낮은 숫자는 아니다. 어려운 시절에도 연구개발 예산을 함부로 삭감하지 않고, 연구의 자율성을 담보하는 등 CEO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
위조방지센터, 정보기술연구센터 등 기술연구원 인력규모는 70명 정도인데 연구역량 척도로 볼 수 있는 석·박사 비율이 85% 정도에 이르고 있다.
'자국 화폐를 자체적으로 제조하고 있느냐'가 선진국의 척도로 평가되기도 하는데 우리는 모든 화폐를 자체 제조하고, 5만원권에 적용되는 22가지 보안요소 중 20가지 요소를 공사 자체 기술로 활용할 정도로 기술 자립도가 높은 편이다.
사명 변경 추진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우리 공사가 전자여권 같은 ID(신분증), 보안용지·잉크 제품도 생산한다고 하면 '그걸 조폐공사에 만드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조폐공사가 그동안 많이 바뀌었다는 걸 국민들에게 쉽게 전달하고, 보안기술 전문 공사라는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임직원들의 공감을 모아내기 위해서는 사명을 바꾸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
최근에 대한지적공사가 한국국토정보공사로 바뀐 사례가 있고, 전기통신 분야 발전 추세에 맞춰 체신부가 정보통신부로 이름을 바꾼 것도 사명 변경의 성공적인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공사의 존재 이유인 조폐는 그대로 두되 나아갈 방향성을 강조하는 '조폐·보안기술' 등으로 명칭을 검토하고 있는데 법을 바꿔야 하는 문제라서 쉽지는 않다. 지금은 많은 의견들을 들으며 여론의 관심을 높이는 단계다.
올해 매출액 5000억원, 영업이익 100억원 달성을 목표로 내세웠다.
작년 매출액이 4600억원 정도였다. 기업이 성장을 한다고 하면 최소한 물가상승률 정도의 매출은 늘어야 한다. 물가상승률을 3%로 잡아도 5000억원이 안 되는데 창립 65주년을 맞아 올해를 재도약의 원년으로 삼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도전적인 목표를 세웠다.
지난 10월 기준 올해 예상 매출액은 4700억원 정도였다. 이 정도만 하더라도 공사 창립 이래 가장 높은 매출액 기록이다. 하지만 올해가 우리 공사에 갖는 의미를 강조하며 직원들에게 조금 버겁더라도 목표 달성을 위해 더 노력해줄 것을 독려하고 있다.
김화동 한국조폐공사 사장이 15일 대전 본사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를 갖고 공사의 현황과 미래비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한국조폐공사
대전=한고은·김하늬 기자 atninedec@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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