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철강, 석유화학, 해운 등 기간산업들이 세계적인 공급과잉과 국제경쟁력 약화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미 조선과 해운산업은 구조조정의 회오리에 휩싸여 있고, 철강과 석유화학산업 역시 구조조정을 통한 각고의 노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석유화학산업은 아직 시급한 상황은 아니지만 자칫 경쟁력 강화 조치를 실기하게 되면 더 큰 대가를 치러야한다는 점에서 선제적 구조조정의 당위성이 강조되고 있다. 국가미래연구원은 지난 3일 석유화학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분석해 보고 무엇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등에 대한 산업경쟁력포럼 세미나를 열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남장근 박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세계 석유화학산업은 공급 면에서 중동·북미·중국이 주도하고 있으며, 수요 면에서는 압도적으로 중국 등 아시아지역이 견인하고 있다. 각국이 경쟁적으로 플랜트를 신증설하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설비·공급 과잉은 적어도 2025년까지는 계속 확대 추세를 보일 것이다. 국내외 현안으로는 세계최대 시장 중국의 수입수요 증가폭 축소 및 자급률 상승세 지속, 중국시장 내에서 중동·동남아 등과의 경쟁 격화 및 중국의 수입규제 강화, 중동은 에탄 기반(ECC)뿐만 아니라 나프타 기반 플랜트(NCC) 신증설을 통해 BTX(방향족) 등 생산품목 다양화 추구, 2018년부터 북미의 셰일가스 기반 화학제품의 아시아시장 대량유입 가능성 등이 있다.
한국 석유화학산업은 에틸렌 생산능력 기준으로 세계4위에 오르는 등, 국내외에서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은 선진국 수준의 뛰어난 조업기술과 엔지니어들을 보유한 가운데 세계최대 시장인 중국 및 동남아에 지리적으로 근접하여 물류비 우위와 현지의 다양한 수요에 민첩한 대응 등의 강점을 무기로 중국시장에서 점유율 1위(14%)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값비싼 나프타를 원료로 사용하고 있어 원가경쟁력 면에서 크게 불리하고, 가격경쟁력 위주인 범용제품 비중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성장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또 내수시장 규모에 비해 과다한 업체가 참여하여 과당경쟁과 공급과잉이 체질화되어 있다. 세계상위 50대 화학기업 중 한국기업은 4개가 포함(‘15)되었으나, 이들 4개의 매출액을 합쳐도 3위의 중국 Sinopec보다 작다. 1개 기업당 에틸렌 생산능력은 세계 10대 에틸렌 기업의 평균의 1/6 수준에 불과하여 규모의 경제 실현에 불리하다. 총생산 중 수출비중이 55% 내외로 해외경기에 늘 민감하며, 특히 총수출에서 중국의 비중이 매년 50% 가까이 되어, 최근 본격화하고 있는 차이나 리스크에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국내 석유화학기업 실적의 호조는 저유가 기조 등 외생변수에 의한 일시적 효과일 뿐 지속성이 없는바, 중장기적 관점에서 본원적 경쟁력 강화를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후적, 재무적 차원이 아니라 산업경쟁력 관점 및 중장기 관점에서 사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과감·신속한 구조조정이 필요한데, 자발적 M&A를 통한 설비 통합 및 대형화로 규모의 경제 극대화, 업체 수 감축으로 과당경쟁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한·중 FTA를 활용하여 SAP 수지 등 중국보다 한 발 앞선 유망제품의 개발·출시로 경쟁우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가야 한다. 또 동남아, 터키, 북아프리카 등, 수출시장을 다변화하고 과도한 중국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 더욱이, 기존 노후 산업단지의 리모델링, 원료 다변화·공동구매, 인프라·유틸리티 공동투자 등도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범용부문의 해외 원료산지 또는 거대시장에서 생산을 확대하는 한편, 국내에서는 고부가가치 특화제품 및 모체공장, 기획·헤드쿼터 기능을 남겨두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화제품에 대해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R&D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하여 다운스트림 부문에서 고부가 신소재(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전자기기용 소재, 자동차용 소재, 촉매, 기능성 첨가제, 친환경 등)를 개발하여 글로벌 시장 진입을 서둘러야 한다. 한편으로 원천기술 보유 해외 기업·연구소의 M&A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정준환 박사(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에서 범용제품에 대한 비효율적 초과설비를 축소해야 한다는 것과 기술개발을 통해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의 생산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구조개선을 진행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산업구조개선이 민간부문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공공부문 주도로 진행돼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일본의 석유화학산업이나 정유산업과 같이 공공부문 주도로 산업구조 개선을 진행하는 것은 우리나라 공공부문의 비효율성 크기에 따라 효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작년부터 국내 석유화학기업의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이와 같은 수익성 개선이 장기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단기적인 현상일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수익성이 높아지는 경우 해당 산업의 구조개선 움직임은 둔화될 수밖에 없고, 적절한 시기를 놓친다면 산업경쟁력 유지를 위하여 더 큰 비용이 지불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 구조개선에서 정부가 담당해야 할 역할은 주도적인 역할보다는 기업들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석유화학산업 제품별 시장전망과 기업의 수익성 전망 등을 지속적으로 분석 및 제공하여 기업들의 미래 전략방향 설정에 도움을 주는 역할이나 기업간 M&A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 등을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임지수 연구위원(LG경제연구원)
석유화학산업은 상당히 분화된 산업으로 보유한 제품에 따라 기업별 현황 차이가 크다. 이러한 특성으로 특히 근래 석유화학산업 내에서는 낙관적 편향이, 외부에서는 과도한 비관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우선 외부의 과도한 비관은 석유화학을 타 장치산업과 동일시하면서 원칙적인 논리로 위기론을 말한다고 보여진다. 석유화학 산업은 타 장치산업보다 ① 제품구조가 훨씬 다양하고 복잡해서 산업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경우가 드물고 ② 에너지 연계 산업으로 중국도 대부분 제품에서 과도한 과잉설비 구조를 만들지 않으며 ③ 수요가 소비재, 생활용품 기반으로 꾸준한 성장이 지속되고 있다는 특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항상 위기는 상존하고 있고 기업 구조조정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지만, 외부 시각처럼 산업이 일시에 망가질 가능성도 낮다.
그러나 현재 정유 및 석유화학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석유화학사업에 대한 낙관적 편향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지난2014년 하반기부터 나타난 글로벌 투자위축에 따른 수급밸런스 회복, 저유가 수혜 등으로 다수의 기업들이 기존 설비의 추가 확장을 검토하고 있다. 사업의 고부가화, 기술경쟁력 확보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어려운 일이고, 기존 사업의 확장이 규모 성장에 훨씬 용이하기 때문이다.
경기가 좋을 때 보다 적극적으로 기술차별화가 가능한 고부가 신사업을 발굴하고, 육성하고, 과감하게 투자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매출성장’이 아니라, ‘가치(Value)와 지속가능성’ 중심으로 전략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 화학기업들은 물론이고 중국의 후발기업들도, 고부가 화학사업으로 성장 방향성을 잡고 정부 지원하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다. 한국 석유화학기업이 성장방식, 사업 운영방식에 대해 보다 많은 변화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김평중 연구조사본부장(한국석유화학협회)
석유화학산업은 세계 경기회복 지연과 중국 경제 성장 둔화 불구, 저유가에 따른 원료가격 하락과 세계 신증설 둔화에 따른 수급 개선으로 다른 주력업종과는 달리 양호한 업황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호황은 시기와 산업 환경적인 문제일 뿐 중장기적으로는 고유가 기조 전환 속에 중국 석탄화학과 北美 셰일가스 등 저가원료 기반 설비 확대, 주수출대상국인 중국의 자급률 증가로 범용제품은 주요 수출시장에서 경쟁이 심화될 전망이다.
따라서 범용제품의 원가경쟁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고, 적극적인 기술개발을 통한 차별화 제품 개발과 함께 첨단 정밀화학제품 등 고부가 스페셜티제품을 적극 육성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저유가 상황을 중동 산유국과 원가격차 축소 등을 기회요인으로 활용하여 단기간의 여력을 바탕으로 사업 다각화 및 기능성 화학소재 등 산업구조의 질적 개선을 통한 산업경쟁력 강화를 꾸준히 추진해 가야 한다. 국내에서는 신성장 동력인 고부가가치 특화제품 부문에 대한 R&D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하여, 조기에 선진기업을 따라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선진기술을 보유한 해외기업에 대한 M&A를 적극 활용하여 차별화가 가능한 성장기반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또한 우리나라가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고 있고 향후 성장 전망이 높은 자동차 및 전자 등 경쟁력 있는 수요산업과의 자발적인 연계성 강화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일본 사례에서 보듯이, 혁신형 소재부문에서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양자 간의 연계·협력체제 구축이 필수적이다. 또한, 중소·중견 기업에 소재와 기술 제공을 통해 상생·동반 성장을 견인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사업모델을 적극 발굴·육성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정부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R&D 투자를 장기에 걸쳐 일관성 있게 수행할 수 있도록 세제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사업모델의 발굴·육성을 통해 신시장을 창출하고 혁신제품의 사업화 리스크를 경감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9월 13일 울산 국가산업단지내 석유화학업체인 SK종합화학을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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