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 세상읽기)위험한 놀이터
입력 : 2016-10-19 15:21:39 수정 : 2016-10-19 15:29:14
아파트 단지마다 어린이 놀이터가 있다. 그런데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양지 바른 곳이 아니라 대개는 그늘진 구석에 세워져 있다 보니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시설이라는 뜻이다. 놀이터에서 아이를 놀리고 싶어 하는 부모들은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놀이터는 한산하다.
 
놀이터가 부모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학원에 가서 공부해야 하는데 시간을 빼앗길까봐서는 아니다. 아무리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닦달하는 부모라도 아이들이 잠깐 노는 것마저 막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안전 때문에 놀이터를 피한다. 구석진 놀이터에서 놀다가 혹시 나쁜 사람들에게 해코지나 당하지 않을지 걱정이다. 또 쇠로 만들어진 놀이기구에 다칠까봐 근심한다. 그리고 개와 고양이의 배설물로 오염된 모래에서 병균에 감염될 것 같아 께름칙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이가 창의력의 원천이라는 연구 결과가 쏟아져 나오면서 놀이터에 대한 관심을 갖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CCTV를 달아서 경비실과 집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놀이터에서 아예 모래를 없애버렸다.
 
모임을 구성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나오는 부모들도 늘어났다. 이제 부모들은 놀이터에 대한 민원을 쏟아낸다. “어린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놀이터. 그러나 놀이터 곳곳에 있는 위험 요소들은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를 놀이터에서 놀리고 싶은데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위험한 놀이터 때문에 아이들 안전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말한다. 부모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방향을 잘못 짚었다.
 
생각해 보자. 놀이터는 왜 한산한가? 아이들이 학원을 많이 다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놀 시간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부모들이 놀이터에 가지 말라고 말리기 때문도 아니다. 부모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는 게 아이들의 본성이다. 가지 말라는 곳에는 가고 싶고, 먹지 말라는 것은 먹고 싶고, 오르지 말라는 곳에는 오르고 싶은 게 아이들의 마음이다. 그렇게 보면 아이들은 놀이터를 열심히 찾을 것 같은데도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없다. 왜 그럴까?
 
간단하다.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어른 말씀 잘 듣는 착한 아이들에게 놀이터는 재미없는 곳이다. 구석에 처박혀 있는 놀이터에도 온갖 지침이 붙어 있다. ‘큰 소리로 떠들지 마세요.’ 재밌으면 소리를 내게 되어 있고 큰 소리로 떠들어야 재미가 더해지는 법인데 떠들지 말라고 한다. 그러니 놀이터에 안 간다. ‘그네를 흔들지 마세요.’ 무슨 이도령 기다리는 춘향이도 아니고 어떻게 다소곳하게 그네를 타란 말인가. ‘미끄럼을 거꾸로 올라가지 마세요.’ 좋다. 미끄럼은 계단으로 올라가서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내려오는 게 정석이다. 정석은 재미가 없다. 시험 보는 것도 아닌데 좀 변형해서 놀면 안 되는가?
 
아이들 가운데 모범생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대개의 아이들은 이런 지침 따위는 무시하기 일쑤다. 그래도 재미가 없다. 도전할 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놀이공원의 롤로코스터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도전할 것이 있어야 신날 텐데, 그게 없다. 너무나 안전하다. 바닥에는 우레탄이 깔려 있고, 놀이기구는 깔끔한 플라스틱 제품이다. 놀이는 살짝 위험해야 재밌다.
 
술래가 ‘오징어’를 외치고 정글짐을 세 바퀴 돈다. 그 사이에 다른 아이들은 정글짐 맨 꼭대기 칸에 올라가 오금을 걸고서 말린 오징어처럼 매달려 있어야 한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하던 놀이다. 정글짐을 한 칸씩 차분히 오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속도를 내야 한다. 느려서 제대로 오르지 못하거나 오르다가 떨어지는 아이들이 속출한다. 그러니 매번 술래가 바뀐다.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위험한 놀이다. 그런데 이 놀이를 하다가 죽은 친구는 한 명도 없다. 팔다리가 부러진 친구도 없다.
 
우리도 한때는 어린이였기 때문에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고 착각하지는 말자. 우리들은 아이였을 때 탐험가였다. 매일 위험을 감수하는 인디아나 존스였다. 쉬운 일을 싫어했다. 높은 곳에서 자주 떨어졌다. 그래도 건강하게 자랐다. 어른들이 보기에 위험의 경계에 접근했지만 항상 자신들만의 규칙과 질서를 만들었다. 놀이터는 신나는 곳이었고 놀이터는 항상 아이들로 북적댔다.
 
연구자들은 놀이는 호모사피엔스가 살아남게 만든 원동력이었다고 말한다. 놀이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창의력을 심어주는 원천이다. 아이들을 놀게 하려면 아이들에게 위험을 허해야 한다. 놀이터는 조금 위험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험한 놀이터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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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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