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김도연'·'김하늘'·'서희영'·'이명화'의 홈인을 바라는 빨간 풍선
우리가 사는 세상 / 가능 사회
2016-10-11 09:31:09 2016-10-11 09:31:09
17:15. 인천지하철 1호선 문학경기장역 2번 출구에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는 흰색 유니폼, 붉은색 유니폼의 행렬이 이어진다. 치킨, 쥐포, 오징어를 파는 포장마차 행렬이 허기를 부추긴다. 부지런히 움직여 예매한 자리로 가는 길에 빨간 풍선이 손에 쥐어진다. 홈인. 야구에서 득점을 의미하는 단어가 누군가에게는 가족의 품으로 안기는 희망으로 읽힌다.
 
 
사진/동지훈
 
 
‘플레이볼’직전의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의 파란 하늘에는 구름만 가득하다. 반면  27,600석의 관중석은 어느덧 붉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세계 최대 크기를 자랑하는 전광판 ‘빅보드’도 위용을 자랑하듯 불을 밝힌다. 누군가의 가슴 저린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들려준다. 선수들에게 제대로 미치라고 소리치던 거대한 전광판이 오늘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17:30. 선수들이 하나둘 몸을 풀기 시작한다. 익숙한 붉은 색 유니폼에 전에 없던 이름이 보인다. ‘One Team One Spirit’을 강조하면서 선수들 이름이 사라진 SK 와이번스 홈 유니폼에 적힌 이름들. ‘이동훈’, ‘김도연’, ‘김하늘’, ‘서희영’, ‘이명화’. 모두 실종 아동의 이름이다. 
 
올해 SK 와이번스는 장기 실종으로 힘들어하는 가족들을 후원하기 위해 ‘희망더하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이날 치러진‘희망더하기 실종 아동 찾기 캠페인 경기’에서 선수들은 실종 아동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는다. 모든 코칭스태프의 등에도 실종 아동의 이름이 새겨졌다. 이번 시즌 마지막 ‘희망더하기 캠페인’경기를 기념해 풍선을 하늘에 날리면서 장기 실종아동들의 귀환을 기원하는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18:30. 애국가 제창이 끝나고 경기가 시작되기 전 양 팀 선수들을 포함한 야구장 안의 모든 사람들은 하늘로 풍선을 날리면서 모든 장기실종자가 안전하게 돌아오길 바랐다. 어느새 회색빛을 띄고 있는 하늘을 빨간 점들이 수놓았다. 목을 치켜들어  시야에서 사라지는 점들을 바라본다. 마치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수천 개의 풍선이 그리는 궤도는 경쾌하기까지 하다. 시선을 옮겨 실종 아동 부모들이 자리한 곳을 찾는다. 풍선을 좇는 눈길이 촉촉이 젖어든다. 
 
 
사진/동지훈
 
19:00. 경기가 진행되는 중간에도 빅보드에 실종자들의 당시 사진과 현재 추정 몽타주가 반복적으로 나왔다. 실종아동의 가족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방송됐다. 
“영광아. 네가 엄마 찾으러 왔으면 좋겠다. 매일 너 오는 것만 기다리고 사는데… 이제 네가 우리 집에 좀 찾아왔으면 좋겠다.”
“이 슬픔의 눈물이 제발 행복한 눈물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너를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아빠는 어떤 욕심도 내지 않을 거란다. 사랑한다 아가야.”
상기된 표정 너머로 얇지만 단단한 희망 하나로 버텨왔을 시간이 고스란히 보이는 표정이다. 
 
 
사진/동지훈
 
 
19:37. 세 개의 아웃카운트가 모두 차고 공격과 수비의 교대를 위한 잠깐의 시간. 평소 같았으면 끼 많은 관중을 담아내는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는다. 이벤트에 참여하고 상품을 받아가는 관중의 웃음도 보이지 않는다. 다들 일어나서 응원가 부를 준비하라는 응원단장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압도적인 점수 차이와 연승을 달리고 있는 분위기에 사뭇 어울리지 않는다. 경기장을 메우던 함성은 3분 남짓한 시간이지만, 잠시 사그라든다. 13,399명 관중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아진다. 전광판에 보이는 야구선수면서 아빠인 선수들이 쓴 손글씨. 
 
“당신의 손글씨가 실종 아동의 슬픔을 막을 수 있습니다.”
 
더 이상의 실종 아동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짧은 글을 SNS에 올려 1,000개의 손글씨가 모이면 어린이집 10곳에 미아방지 팔찌를 지원하는 캠페인, ‘손글씨 릴레이’다. 주장 김강민을 시작으로 김성현, 박정권, 채병용 등의 선수가 ‘손글씨 릴레이’에 직접 참여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3분의 공백을 지워낸다. 
 
 
희망더하기 손글씨 릴레이. 사진/동지훈
 
 
20:05. 클리닝 타임을 맞아 운동장 정비를 하는 동안 희망더하기 캠페인을 맞이해 선수들이 등장하는 영상이 흘러나온다. 누군가를 얼마나 오래 기다릴 수 있는지 묻는 질문에 제각각 답을 내놓는다.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길어야 세 시간의 기다림을 약속하는 이들. 그 너머로 시간을 멈추고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실종아동의 가족들이다. 다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곁을 떠난 자식의 빈자리에서 미안함과 그리움을 발견할 수 있다. 
 
사진/동지훈
 
22:17. 네 시간을 조금 넘긴 경기가 끝났다. 고된 경기를 마친 선수들이 승리를 자축하고 나란히 서서 팬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네 시간 동안 긴장했을 얼굴에 비로소 환한 미소가 번진다. 그들 등에 새겨진 세 글자가 빛날 수 있는 값진 승리였다. ‘이동훈’, ‘김도연’, ‘김하늘’, ‘서희영’, ‘이명화’. 자기 이름 대신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실종아동의 이름을 달고 뛰어준 선수들에게 팬들도 박수를 보낸다. 값진 승리의 여운이 남아있는 녹색 그라운드를 뒤로하고 관중들이 출입구로 몰린다. 맥주 컵, 치킨 기름이 아직 배어있는 일회용 그릇 등 온갖 쓰레기를 손에 쥐고 경기장을 빠져나오면서 출입구 앞 쓰레기통이 바빠졌다. 고개를 빼꼼 들어보면 오늘 하루 선수들보다 더 많이 불린 이름이 보인다. 실종 아동들의 사진과 인적사항이 적힌 포스터. 화장실 앞, 매표소, 매점 옆의 바쁜 발걸음도 이날만큼은 잠시 멈추게 만든다.   
 
 
실종 아동 전단. 사진/동지훈
 
 
오각형의 판을 밟아서 점수를 내는 야구는 숫자 하나에 승과 패가 갈리는 냉정한 종목이다. 사력을 다해 치고 달리는 선수들과 그들의 땀방울에 환호하고 아쉬워하는 팬들에게 아웃카운트 27개를 채우는 서너 시간의 기다림은, 어찌 보면 길다. 이따금씩 집 가는 마지막 차편을 고민해야 할 정도로 길다. 그럼에도 이기든 지든, 마침표를 찍을 지점이 있으니 기다리게 된다. 끝이 있음을 아는 우리의 기다림은 곧 기대이자 즐거움이다.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막연한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기대와 즐거움은 쓸쓸함과 허전함으로 바뀐지 오래다. 잃어버린지 십여 년이 지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11:30. 하루의 열기가 가라앉은 도로를 버스는 조용히 달린다. 이따금씩 문이 열리고 늦은 귀갓길을 보채는 이들을 뒤로 한 채 다시 달린다. 자정이 가까워도 집으로 돌아가면 반겨줄 사람이 있기에 길을 간다. 
 
‘이동훈’, ‘김도연’, ‘김하늘’, ‘서희영’, ‘이명화’, ‘정유리’, ‘최솔’, ‘최준원’, ‘모영광’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길 기원한다.  
 
 
 
동지훈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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