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시대정신 대논쟁 시작하자
2016-08-31 14:05:29 2016-08-31 14:05:29
 
어제(30일) 국회에서 열린 ‘미국 대선과 한국정치의 과제’라는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조정식 의원실이 주최하고 국회 ‘통합과 상생포럼’이 주관한 행사였다. 최근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는 책을 펴낸 경희사이버대 안병진 부총장이 기조발제를 맡았고 김부겸, 민병두, 김세연 의원이 생생한 미국 전당대회 참관기를 발표했다.
 
미국 대선에서 나타난 이러저러한 모습들을 들여다 보면서 한국 대선을 멀찌감치서나마 전망해 보는 자리였다. 안병진 교수는 미국 대선이 단순한 인물의 교체를 넘어선 문명사적 대전환기의 패러다임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전 대선과 뭔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의 내로라 하는 정치학자나 전략가, 언론들도 트럼프, 샌더스 현상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로버트 라이시가 그의 책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에서 2020년 미국에서 공화당이나 민주당의 후보가 아닌 무소속 참주선동가가 집권할 것이라고 예언한 그 현상이 4년 빨리 예고된 것이다. 지난 2012년 대선을 완벽하게 예측해 선거 예측의 신이라 불리는 네이트 실버조차도 트럼프 현상을 내다보지 못했다. 예측은 틀렸고 그는 혼란에 빠졌다. 그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의미 있는 신호를 잡아냈지만 그 신호는 대전환기의 본질에 이르지 못했다. 본질에 이르지 못한 신호는 또 하나의 소음이 된다. 전략가 스탠리 그린버그는 새로운 진보의 시대가 온다고 선언했지만 곧바로 역사상 가장 반동적인 트럼프 현상을 목격해야 했다. 뉴욕타임스 같은 유력 언론들도 트럼프, 샌더스 현상을 예측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일종의 반성문을 썼다.
 
안병진 교수는 이에 대해 지금은 문명사적 대전환기이고 “단순한 대선 지형 분석 이전에 거시적 조망, 새 세대의 삶 문법과 꿈, 기술 가속화 등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이번 한국 대선도 기존 교과서를 버리고 새로운 비전,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전당대회가 끝나면서 본격적으로 대선시계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전당대회 결과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소위 친박과 친문 체제의 강화로 이어졌다. 호남 출신의 이정현이 새누리당 대표가 되고, 영남 출신의 추미애가 더민주의 대표가 됐다는 것은 호사가들의 비본질적 대비일 뿐이다. 두 당 모두 당내 최고 실세의 영향 아래 치러졌다. 본질적인 의미는 두 당 대선 후보의 유동성 혹은 선출 과정의 역동성이 매우 약화됐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결과를 통해 세 가지 정도를 상상할 수 있다.
 
첫째, 새누리당의 반기문 사무총장, 더민주의 문재인 전 대표가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 둘째 두 당의 잠룡들 즉, 새누리당의 유승민, 김무성, 오세훈, 남경필, 더민주의 박원순, 안희정, 김부겸, 이재명 등의 고민이 깊어졌다. 셋째 국민의당 안철수 전대표를 비롯한 제3지대에 새로운 대선 플랫폼이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이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평이한 전망이다. 미국 대선은 이런 ‘교과서’를 뒤엎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한국에서도 상상을 초월하는 어떤 대변화가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대중의 절망과 분노를 보라. 총선에서 나타난 밀레니얼 세대의 조용한 혁명을 보라.
 
우리가 미국 대선이나 브렉시트 같은 특이 현상에서 얻을 교훈이 있다면 시대정신의 본질을 누가 선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복잡한 난제들을 안고 있다.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한 부와 소득의 불평등 심화와 4차산업혁명 시대의 일자리 절벽 등은 우리 시대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본질적인 과제이다. 최근 우병우 사태에서 보여지는 사법 정의의 위기, 세월호 참사, 옥시사태 등 사회안전망 붕괴에 대한 우려 또한 가속화되고 있다. 여기에 청년들의 절망과 분노, 저출산과 인구구조 악화 문제도 우리 사회을 위협하는 요소다. 또 사드 배치 논란으로 촉발된 안보와 평화통일 이슈도 존재한다.
 
대선 후보들은 정치공학을 넘어 시대정신의 본질을 안고 우리 앞에 닥친 국가적 난제를 온몸으로 돌파해야 한다. 그런데 정치공학은 난무하지만 아직 ‘불평등’ 어젠다를 전취한 후보를 찾아보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사실 위에 열거한 문제들은 여야를 떠나 누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풀기가 쉽지 않은 난제들이다. 국민과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추석이 지나면 본격적인 대선판이 펼쳐질 것이다. 난무하는 정치공학을 넘어 세계사적 대전환기에 치러지는 대선을 계기로 시대정신을 둘러싼 대논쟁이 시작되기를 바란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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