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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사람)"책을 만드는 게 여전히 참 좋네요"
홍지웅 열린책들 대표 "낯설게 보여주는게 예술…책도 마찬가지"
2016-07-20 10:48:19 2016-07-20 10:48:19
[뉴스토마토 원수경기자] "소설이나 책을 만드는 게 여전히 참 좋네요. 이게 나한테 딱 맞는 직업이긴 하구나 싶어요."
 
지난 1986년 러시아 전문 출판사로 문을 열고 다양한 해외문학을 소개해 온 열린책들이 올 초 30주년을 맞았다. 홍지웅 열린책들 대표는 지난 30년에 대해 특별한 감회는 없다면서도 참 즐겁게 일해 왔다고 말했다. "괜히 팔불출 같을 때가 있어요. 내가 낸 책을 보면서도 기분이 좋은 걸 보면 이런 사람도 참 드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7일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 미메시스 사옥에서 홍지웅 대표를 만났다. 미메시스는 열린책들의 예술 서적 브랜드로 홍 대표는 몇 달 전 거처를 열린책들에서 미메시스로 옮겨왔다. 
 
홍지웅 열린책들 대표. 사진/열린책들
 
집무실 한가운데에 있는 큰 테이블에는 '장미의 이름(움베르토 에코)'과 '개미(베르나르 베르베르)', '향수(파트리크 쥐스킨트)', '어머니(막심 고리끼)' 등 열린책들의 지난 30년을 대표하는 책 12권이 놓여있었다. "열린책들에서 화제가 됐거나 우리의 출판정신·철학을 담은 대표적인 책 12권입니다. 대부분이 소설이에요. '어머니' 같은 경우는 우리가 러시아 전문 출판사를 표방하고 시작했다는 의미를 담았고, '꿈의 해석'은 프로이트 작품 중에서 문학적인 쪽에 가까운 것이라 꼽았습니다."
 
홍 대표가 이들 12권을 다시 꺼내든 것은 독자에게 감사인사를 하기 위해서다. 30주년을 기념하며 독자 사은용으로 12권의 대표작을 묶어 오는 추석 즈음 다시 출간한다는 계획이다. "출판사가 30년간 책을 냈다면 독자 덕일 수 있는 거죠. 사은이라는 개념으로 아주 저렴하게 책을 낼 예정입니다."
 
재출간을 앞두고 홍 대표는 이들 12권의 책을 다시 읽는 중이라고 했다. 특히 '장미의 이름'은 정독하는 것만 이번이 네번째라고 한다. 홍 대표가 꼽은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독창성이다. "장미의 이름은 대단한 소설입니다. 문장이 너무 좋아서 가끔씩은 아무 데나 펼쳐서 읽곤 할 정도죠. 금세기 최고의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이 있었다는 전제로 진행하는 발상도 아주 독창적이고 중세시대와 관련된 것도 아주 디테일하게 나와 있습니다."
 
홍 대표가 해외문학에 집중하게 된 계기도 바로 독창성에 있다. "한국 소설은 대체로 리얼리즘 계열입니다. 일제의 식민지배와 6·25 전쟁, 독재정권 등을 겪으며 100년 역사가 드라마가 됐어요. 주변 인물을 시대에 넣으면 소설이 되는거죠. 상상력을 동원하는 추리소설이나 사이언스픽션(SF), 유토피아 소설 등의 장르는 사실 발전이 별로 없었어요. 실제가 더 드라마 같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한 평론가도 그랬지만 우리는 사물을 낯설게 보여주는 것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것을 다르게 보여주고 낯설게 보여주는 게 예술인데 그런걸 봐야 사람의 품격이 고양될 수 있습니다. 잘 꾸며낸, 잘 짜인 뛰어난 해외 소설을 소개하는 것이 국내 문학에 도움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독창적이고 뛰어난 작품과 작가를 찾다 보니 '전작주의'라는 철학도 생겼다. 열린책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움베르토 에코, 파트리크 쥐스킨트 등 주요 작가들의 전작을 출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에코 전집은 세계에서 유일하고 프로이트 전집을 낸 것도 언어 기준으로 전 세계 4번째였다.
 
"책을 제대로 내다보면 전작을 낼 수밖에 없어요. 장미의 이름을 보면 '이런 작가가 있을 수 있나!'하는 감탄이 나오는데 당연히 그 사람의 다른 작품도 다 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물론 움베르토 에코 이론서를 내면 1000부도 채 팔리지 않는 책도 많습니다. 손해를 볼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마니아를 만들고 책 좋아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 열린책들은 출판시장에서는 이례적인 팬덤을 가지고 있다. 도서전에서 큰 출판사를 누르고 매출 1위를 기록한 적도 여러번이며, 지난달에는 출판사 중 처음으로 페이스북 팬이 30만명을 넘어섰다. 여기에는 독창적인 작품을 뚝심 있게 낸다는 이유도 있지만 사람들의 손에 잡히는 예쁜 책을 만들겠다는 욕심도 큰 역할을 했다. 
 
"책도 예술작품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술작품인 만큼 디자인도 좋아야 하는거죠. 영향력으로만 따지면 웬만한 예술품보다 더 클 거에요. 책에 맞는, 소설에 맞는 격을 찾아줄 필요가 있는 겁니다. 또 사람들이 갖고 싶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큽니다."
 
홍 대표는 앞으로도 콘텐츠 중심의 독창적인 책을 만드는 데 힘을 쓰겠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 출판의 아쉬운 점은 텍스트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한 측면이 있다는 겁니다. 외국 책이 번역된다는 것은 외국 용어들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는 거예요. 일본은 이미 1860년대 메이지유신 때 4000여종의 책이 번역되며 이런 작업이 시작됐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원전 텍스트가 제대로 번역이 안 된 것이 많습니다. 원전 없이 비평서의 비평서, 해설서의 해설서가 나오는 식으로 과정을 뛰어 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직 우리 출판이 해야 할 과제들이 여전히 많다고 봅니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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