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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국민연금은 필요할 때 꺼내쓰는 금고가 아니다
2016-06-22 06:00:00 2016-06-22 06:00:00
국민연금이 가진 대규모 적립금을 공공투자에 활용하자는 주장이 20대 국회의 뜨거운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국민연금의 적립금은 2015년말 기준으로 이미 500조원을 넘어섰으며, 2040년에는 23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적립금이 빠른 속도로 쌓이고 있으니 이중의 일부를 활용해서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투자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자금을 이와 같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고, 투자와 관련된 위험을 증가시켜 국민들의 노후생활 보장이라는 국민연금의 핵심기능을 흔들 수 있는 사안이다.
 
국민연금은 대규모 자금을 적립하여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종종 자금운용에 관해 외부로부터의 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종류의 외압은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특정세력의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소요되는 대규모 자금수요를 국민연금이 가진 적립금을 활용해 손쉽게 해결하려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자금운용방향이 외부로부터의 압력에 의해 왜곡될 때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평균적인 운용수익률 저하현상이다. 물론 운용방향의 변화가 항상 투자실패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며 일부에서는 기대이상의 성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정치적 색채가 강한 사업에 국민연금의 자금을 투입할 경우 그 투자결과가 기대수익률을 만족시킬 가능성은 높지 않으며, 나빠지는 수익률은 기금고갈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요소가 된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공공투자사업의 특성을 한번 살펴보자. 저소득 계층의 주거안정화를 위한 공공임대주택의 건설은 수요에 비하여 공급이 부진한 편이다. 민간영역에서의 시장기능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투입되는 건축비용 대비 임대수익이 시장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어려운 탓이다. 국민연금 자금의 투입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5%이상의 수익률 달성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만일 이정도의 수익률 달성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국민연금을 투입해야할 이유가 사라진다. 현재 국내의 기준금리는 1.25%에 불과하며 연간 3% 이상의 투자수익률을 제공하는 투자상품조차 많지 않다. 5% 이상의 안정적인 수익률 달성이 가능하다면 그러한 투자처에는 이미 민간자금의 유입이 넘쳐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장의 현실은 이러한 모습과 완전히 상반된다. 공공투자사업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공공투자 부문은 국민연금이 감당해야 할 영역이 아니라 재정정책의 영역으로 보아야 한다. 소득양극화의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으며, 저출산 해소도 시급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사회의 이런 구조적 문제점들은 정부정책의 방향성을 재정립해 나감으로써 해결할 필요가 있다. 복지정책의 수준과 방법론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조율하고 재원마련을 위한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국채발행의 증가나 증세를 고민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공공투자에 국민연금을 활용하자는 주장은 국채발행 확대나 증세와 같이 부담스러운 논쟁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공공투자의 재원마련을 위해 국채발행을 확대한다면 국가채무수준을 높여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키는 부담이 있다. 증세를 통한 재원마련은 세부담 확대에 대한 극렬한 반발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향후 선거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정책성 자금이 필요하지만 조달이 여의치 않을 경우 국민연금은 매력적인 유혹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국민연금은 필요할 때 편리하게 꺼내 쓸 수 있는 금고가 아니다. 가입자가 내는 돈이 적립금으로 운용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된다면 가입자는 적립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세금을 내는 셈이 된다. 국민의 안정적인 노후소득의 마련이라는 목적성에 최고의 의미를 부여한다면 정치적 필요를 위해 기금운용에 개입하는 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 복지정책의 확대는 정부의 재정정책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타당하며 예산의 할당과 그에 상응하는 재정자금 마련방안을 조율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치적 목적달성을 위해 국민연금의 운용방향에 개입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연금 가입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국민연금은 공적인 성격이 강한 기관이지만 기금운용의 독립성은 두텁게 보호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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