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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셰르파와 산소통
2016-01-06 06:00:00 2016-01-06 06:00:00
우리민족은 등산을 좋아하는 민족이다. 겨울이 와서 매서운 한파와 눈보라가 몰아쳐도 전국의 유명한 등산로에는 산이 주는 매력을 만끽하려는 인파가 여전히 넘쳐난다. 등산이라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와 건강관리에 유용하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한국인들의 산에 대한 애정은 이렇듯 뭔가 특별한 구석이 있는 듯하다.
 
한국인들의 이러한 산사랑은 일찌감치 글로벌화 되었다. 유럽, 남미, 아프리카의 높고 험준한 산맥을 비롯하여 등산계의 메이저 리그라고 할 수 있는 히말라야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발길은 정상정복의 그 순간을 향해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의 고산준령을 누비고 있을 것이다.
 
필자는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8000미터가 넘는 히말라야의 고봉에 도전하는 이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들의 험난한 여정이 우리경제의 발전과정과 매우 닮아있음을 느낀다. 출정대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출발점에서의 발걸음은 경쾌하고 가볍다. 그렇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등정속도는 떨어지고 한걸음을 더 옮겨가기가 힘들어진다. 또한 산에서의 날씨는 예측하기가 어려운데 날씨변화에 신속히 대응하지 않으면 등반을 포기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우리나라 경제, 출발점에서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고도의 성장을 이뤄냈다.
 
그렇지만 이제는 저성장의 기조에 빠져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힘겨운 상황이다. 글로벌 시장환경도 에베레스트 정상의 날씨처럼 변화무쌍하다. 폭풍이 몰아치고 쓰나미가 밀려오는 시장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을 경우 우리경제는 성장의 모멘텀을 잃고 또 다시 위기상황에 빠질지도 모를 일이다.
 
히말라야 최고봉 등정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존재중의 하나가 셰르파라고 한다. 셰르파(Sherpa)는 티베트어로 ‘동쪽 사람’이라는 뜻인데 도우미라는 의미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셰르파는 단순한 가이드나 보조짐꾼이 아니라 등반루트의 선정에서부터 정상공격 시간의 설정에 이르기까지 전체 등반일정에 대해 모든 것을 조언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한다. 등반일정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출정대가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포괄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히말라야 등반과정을 다시 한번 우리경제에 투영시켜 본다면 셰르파의 역할을 담당할 곳은 당연히 금융이 될 것이다. 금융이 국가경제 발전에 있어서 담당하는 역할은 단순히 자금공급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금조달 경로를 선택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최소의 비용으로 자금을 배분함으로써 실물경제의 흐름을 최적화시키는 포괄적인 서비스의 제공이 금융이 감당해야할 몫이다. 셰르파가 정상공격조의 출정을 지원하듯 금융은 실물경제의 흐름을 지원하여 성과를 극대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다소간의 부침이 있기는 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이전까지 국내 금융기관들은 셰르파로서의 역할을 비교적 잘 수행해 왔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금융기관들의 역할에 뚜렷한 변화가 필요한 시기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경제는 많은 등반가들이 그랬듯이 고산병에 걸려 신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산병은 높은 지대에서 저산소 상태에 노출되었을 경우 발생하는 신체의 이상반응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호흡곤란, 두통, 현기증, 식욕부진, 탈진 등의 증상을 동반하며 몸의 움직임도 현저히 둔화되는데, 이는 현재 우리경제가 겪고 있는 증상과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다. 아무리 뛰어난 셰르파라 하더라도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고산병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고산병을 이기는 방법은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등반가의 강력한 의지를 통해 버티어 내거나 아니면 산소통을 다는 것 밖에 없다. 두 가지 방법 중 어느 쪽이 금융의 역할일지는 너무도 자명해 보인다.
 
경제가 고산병으로 탈진해 있을 때에는 금융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셰르파의 임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산소통의 역할을 추가해야 하는 것이다. 산소통의 역할이란 눈보라와 한파가 몰아치는 위험한 환경에서 등반가에게 한순간을 더 버티어 낼 수 있는 힘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 기업이 어려운 상황을 조금 더 참아낼 수 있는 힘, 그리고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있는 용기를 잃지 않도록 모험자본을 공급하는 것이 바로 금융이 추가해야할 산소통의 역할일 것이다. 우리경제가 고산병의 증세를 극복해내고 정상에 우뚝 설수 있도록 금융의 적극적인 역할 확대를 기대해본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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