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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증권집단소송법은 태생적으로 '죽은 법'…전면 개정 필요"
시행 11년간 소송 건 수 9건…지나친 요건 제한이 '발목'
2016-06-07 14:00:00 2016-06-07 14:15:09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이 시행된 지 올해로 11년째지만 전혀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나친 요건 제한과 실효성 없는 선언적 법규정이 활성화를 옥죄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이미 법 제정 당시 재계 등 기업의 입김이 상당히 반영돼 '개미투자자'보호라는 취지가 상당부분 희석됐고 "일단 만들고 보자"는 주먹구구식 태도가 법의 실효성을 떨어뜨렸다는 분석이 많다. 때문에 법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와 함께 실효적인 법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증권관련 집단소송의 문제점과 활성화 방안을 학계와 전문변호사들과 함께 짚어봤다.(편집자 주)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은 2004년 1월20일 법률 제7074호로 제정돼 이듬해인 2005년 1월1일부터 시행됐다. 올해로 도입 12년, 시행 11년을 맞고 있다. 법은 증권거래 과정에서 발생한 개미투자자들의 집단적 피해를 효율적으로 구제하는 것과 이를 통해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목적에서 마련됐다. 증권집단소송의 종주국인 미국의 'Class Action'을 참고했다. 그러나 그동안의 소송진행 경과상황을 짚어보면 이 두 가지 목적 중 어느것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증권업계와 법조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인 전영준 변호사에 따르면, 지난 5월까지 제기된 사건은 총 9건에 불과하다. 법 시행 이후 1년에 채 1건도 접수가 안 된 셈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증권관련 집단소송은 태생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법 제정 당시부터 기업 부담과 기업경영활동의 위축, 남소 우려 등이 재계를 중심으로 제기됐고 이런 우려가 반영돼 법에 불필요하거나 또는 지나칠 정도로 소송제기 자체를 제한하는 규정이 포함됐다. 법무부 증권집단소송법 개정자문위원이었던 최정식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법 제정과정에서부터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중심으로 한 재계와 기업에서 견제가 많았다"며 "결국 앞, 뒤 다 자르는 바람에 미국과 같은 신속성과 파괴력이 없어졌다"고 비판했다.
 
증권집단소송의 활성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 원인 가운데 법상 규정돼있는 '문서제출명령'의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법은 32조에 '법원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소송과 관련 있는 문서를 가지고 있는 자에게 그 문서의 제출을 명하거나 송부를 촉탁할 수 있다'고 규정했지만 강제성이 없어 실무에서는 거의 이용되지 않고 있다. 증권사건 전문인 나승철 변호사(법무법인 대호)는 "투자자들인 원고가 소송에서 이기려면 증거를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증권사가 가지고 있는 불법행위와 관련된 문서 등 증거를 제출받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현행법상으로는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며 "이에 대한 보완 없이 증권집단소송의 활성화를 바라는 것은 넌센스"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 역시 "문서제출명령의 실효성은 피해자들의 피해 확정과 직결된다"며 "현재로서는 검찰이나 금융감독이 수사나 조사를 해서 자료를 배포해야 증거를 간접적으로 얻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소송허가 신청 등 소송요건이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법 7조는 집단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원에 소송허가신청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소송 남용을 차단한다는 취지지만 오히려 불필요한 소송을 가중하고 있다. 2010년 1월 제기된 '로얄뱅크오브캐나다(RBC) 사건'은 소송허가신청에서 패소하자 RBC측이 재항고까지 가면서 본안판결을 받기까지 6년이 걸렸다. 서초동의 한 증권전문 변호사는 "소송허가신청이 지나치게 엄격해 증권사 등이 막대한 자본을 들여 항고와 재항고 등으로 사건을 장기적으로 끌고 가는 바람에 구심력과 자본력이 약한 피해투자자들로서는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결국 이 요건이 본 취지와는 달리 증권사의 방어막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증권사인 피고의 항고 등을 제한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지만 재판청구권 침해라는 위헌성이 지적되고 있다.

집단소송의 대표당사자와 소송대리인 자격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도 문제로 제기된다. 법 11조는 '최근 3년간 3건 이상의 증권관련집단소송에 대표당사자 또는 대표당사자의 소송대리인으로 관여했던 자는 증권관련집단소송의 대표당사자 또는 원고측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변호사 업계에서는 "이런 제한이 집단소송 전문가들의 양성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대한변호사협회에서는 과거 증권 전문변호사 등록 과정을 뒀지만 최근 없앴다.

이런 실태 때문에 법을 실효적으로 전면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최근 힘을 얻고 있다. 최 교수는 법 전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증권집단소송은)미국에서는 아름다운 소송이고 한국에서는 초라한 소송"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집단소송을 한다고 해도 기업들이 무서워하지 않는다. 죽은 법이기 때문"이라며 법의 전반적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대한변협 초대 법제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최승재 변호사(법무법인 다래)는 "최근 활발히 논의가 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함께 증권관련 집단소송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 왔다"며 "법원이나 학계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이어 "법 제정 당시에는 일단 만들고 보자는 식이었지만 변협차원에서 자리를 만들어서 한국형 집단소송을 어떻게 키워 나갈지 논의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며 "증권관련 집단소송이 시작이 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공정거래집단소송, 소비자집단소송, 일반적집단소송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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