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시론)또 한번 거부된 대한민국의 권력분립
2016-05-31 06:00:00 2016-05-31 06:00:00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두 번째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19대 국회가 문을 닫기 이틀 전이었다. 임시국회를 열려면 3일 전에 공고해야 한다는 걸 몰랐을까. 이러고도 꼼수로 소통과 협치를 거부했다는 비판이 억울할까. 그래도 간신들은 재의결의 기회마저 봉쇄한 묘수라며 뿌듯했을까. 위헌성이 있다기에 헌법에서 허용된 권한을 행사했는데 무슨 문제가 있냐고? 솔직히 말하자. 천상천하 유아독존. 그 밖에 더 무슨 확실한 이유가 있었는가?

 

거부권 행사의 판을 깔기 위해 바람잡이들이 출몰했다. 전직 헌법학자로서 교과서까지 냈지만 자신의 견해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언행을 통해 곡학아세의 상징으로 떠오른 ‘진박 당선자’가 나섰고, 전직 검사 출신의 국회의원이 나섰었다. 여당이야 워낙 자신들이 제안하거나 찬성한 법도 위헌이라며 악을 쓰는 정당이니 그렇다 치자. 법제처를 내세워 검토를 맡겼다는데 어떤 학자들이 어떤 논리로 얼마나 거부권 행사를 옹호했는지는 발표조차 못하고 있다. 총알받이들인지 바람잡이인지 모를 이들 가운데엔 총리도 섞여 있다.

대통령은 이번에도 무대의 전면에서 사라졌다. 국무회의의 의결은 총리가 주도하고 자신은 외국에서 충심어린 신하들의 간언에 대해 전자결재를 통해 허락하는 모양을 갖추었다. 통합진보당을 위헌정당이라며 제소한 때와 같은 풍경이다. 껄끄러운 일에는 총리를 내세워 자신의 해외순방 성과가 희석되고 모든 정치적 논란이 쏠리는 것을 피하려 했다는 해석이 따른다.

총리는 “현안 조사를 위한 청문회 제도는 입법부가 행정부 등에 대한 새로운 통제수단을 신설하는 것으로 권력분립 및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 정신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워터게이트나 클린턴 대통령의 추문에 청문회를 행한 미국은 천하의 불량 독재국가였나? 행정입법 통제법안을 국회로 돌려보낼 때 대통령은 “정부의 입법권과 사법부의 심사권을 침해하고 결과적으로 헌법이 규정한 3권 분립의 원칙을 훼손해 위헌 소지가 크다”고 했었다. 그 결과 유승민은 자신이 원내대표로 있던 당에서 쫓겨났고, 자신의 저서마저 부정한 정종섭은 장관 출신의 국회의원이 되었다. 역시 인생은 눈치와 타이밍인가.

거부당한 법안은 두 번 다 국회법 개정안이다. 삼권분립과 의회민주주의를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대통령의 인식이 여실히 드러난다. 처음엔 법률의 범위를 벗어나는 행정부의 시행령에 대하여 통제장치를 두려는 것을 거부했다. 이번에는 국회가 스스로 법률을 고쳐 상임위 운영방식을 바꾸겠다는데 행정부가 개입해서 저지한다. 청문회든 입법통제든 행정부가 귀찮으니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국회가 필요 없다는 심산이 아니라면 이토록 일관될 수 있을까. 결국 권력분립의 원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며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것은 분명 대통령이다.

이 와중에 역시 지록위마와 곡학아세를 실천하는 우리 시대의 권력자들은 다시 한 번 여실히 그 면모를 드러냈고, 벌거벗은 임금님을 숭상하는 영혼 없는 공무원들 또한 한몫을 했다. 헌법학자들이 아무리 경고해도, 여론조사를 통해 60%의 국민들이 거부권 행사에 반대한다는 결과가 나와도 권력의 폭주는 멈출 생각이 없다.

여당의 행태는 더욱 한심하다. 총선에서 질 것 같으니 ‘국회선진화법’을 꺼냈다가 이기고 나서는 위헌이라며 악을 쓰고, 총선에서 낙승할 것 같을 때엔 ‘청문회활성화법’에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다 여소야대의 국회 출범에 임박해서는 다시 말을 바꾼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또 어떤가. 다행히 5월 26일, 5(각하)대 2(기각)대 2(인용) 의견으로 새누리당 의원 19명이 국회의장과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 심판 사건을 각하했다. "의사 절차에 대한 국회의 자율성과 권한을 존중해야 한다"며 국회법에 정해진 절차와 내용이 위헌적 요소를 담고 있지 않다는 근거를 댔다. 그래도 나는 궁금하다. 만일 총선에서 여당이 150석~180석 사이의 의석을 얻어 승리했다면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결국 대통령 한 사람의 몽니로 인해 총리도, 여당 원내대표도, 당대의 헌법학자도, 법률가 출신의 국회의원도, 법제처도 헌법재판소도 누추한 처지가 되었다. 지나친가? 그럼 대답하라. 남북문제를 다루는 G7 정상회담 대신, 아프리카에서 아버지의 새마을운동을 홍보하느라 거부권 의결조차 총리에게 떠넘긴 대통령의 진의는 무엇인지. 왜 늘상 청문회가 모든 일을 다루는 미국을 그토록 칭송하는 것인지. 국회의 수준이 다르다고? 그럼, 대통령의 수준은?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