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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기업 구조조정, 명확한 기준부터 제시하라
2016-04-27 15:30:31 2016-04-27 15:30:31
금융권이 뒤숭숭하다. 연착륙이 예상됐던 기업 구조조정이 경착륙 분위기로 급변했기 때문이다. 고강도 기업 구조조정을 원하는 정부 ‘입김’이 작용했다.
 
연착륙을 시도하던 금융당국도 당황해하는 모습이다. 어쭙잖게 입을 맞추는 시늉을 하고는 있지만 주요 대상을 선정할 당시 "전자업종 부문을 추가해 넣을 것"이라고 했다가 논란이 확산되자 결국 최종 기업 구조조정 대책에는 전자업종 부문을 빼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명확한 기준 없이 구조조정에 착수했다는 얘기다. 
 
중장기적으로 일관성 있고 단호하게 진행돼야 하는 기업 구조조정 정책이 기준조차 없다는 방증이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는 일이다. 
 
금융당국은 조선·해운 등 경기민감업종을 강도 높게, 부실징후기업을 상시적, 공급과잉업종에 대해 선제적 구조조정을 한다며 3가지 방안을 내놨다.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였을 뿐 재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핵심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는 조선·해운 산업은 벌써 두려움에 떨고 있다. 조선·해운 밀집지역인 영남권 민심도 흉흉하다. 총선에 패한 정부와 여권이 위기감 조성으로 민심 잡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까지 나온다.
 
금융권도 부담이다. 정부의 방침에 당장 칼을 날카롭게 갈아야 하니 말이다. 기업에 금융지원을 중단하고 웬만한 부실은 다 끊어내야 한다. 은행들의 주력 수익원인 기업금융도 줄여야 할 판이다. 기업이 망해 나가면 지원한 돈을 회수하기 어려워져 건전성이 악화되는 악순환도 이어지게 된다. 
 
강도 높은 기업 구조조정으로 금융권마저 벼랑 끝에 선 형국이다.
 
기업들은 금융권의 여신정책에 따라 존폐 위기가 결정된다. 정부가 금융권을 압박해 돈줄을 차단하면 기업의 생존은 어려워진다. 그래서 정부가 기업의 돈을 풀고 죄는 방향성을 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정부는 1960년대 가죽·섬유 등 경공업을, 1970년대 기계·자동차 조선·화학 등 중화학을, 1980년대 가전·반도체·전기통신 등 IT산업을, 1990년대는 국내 산업의 세계화 등에 집중적으로 돈을 풀어 산업을 키워왔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살릴 기업은 살려야 한다. 기업이 살아야 금융도 국민도 산다. 최대한 살 수 있는 기업, 정말 가치 있는 기업, 미래 성장동력이 될 만한 기업들을 잘 가려 살려야 한다. 
 
정부가 오락가락해서는 안 된다. 단순히 돈줄을 죄는 등의 ‘일차원적’ 압박으로 시장에 불안한 시그널을 줘서도 안 된다. 
 
현 정권의 임기는 2년 남았다. 내년 말 대선정국을 감안하면 1년도 채 되지 않는다. 경영 환경이 악화된 기업의 생존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시간으로는 너무 짧다.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해 엑시트(자금 회수)하는 기간도 5~7년이다. 
 
진정 기업 구조조정이 기업 길들이기가 아니라면 정부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20대 총선이 끝나자마자 국정과제로 튀어나온 기업 구조조정. 납득하지 못 할 구조조정으로 이어진다면 국민과 기업은 “역시 이번 정부는 끝까지 제대로 하는 게 없다”는 냉정한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최근 광양의 한 조선소 협력업체 직원이 해고된 후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앞서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대표 역시 자금난으로 자살하고 말았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구조조정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과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들의 원망 섞인 통곡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면. 그리고, 그나마 유종의 미를 거두려면 말이다.
 
고재인 금융부장 jik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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