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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정·손진환 "'세일즈맨의 죽음', 주변 사람들 생각나게 하는 작품"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서 윌리·린다 부부로 호흡
2016-04-25 18:16:16 2016-04-28 18:03:55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고전의 힘은 세다. 1949년에 쓰여진 미국 작가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이 다시 한 번 무대에 올라 관객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한태숙 연출가의 연출로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현재 공연 중인 이 작품은 허망한 꿈을 좇는 현대인의 삶을 압축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미 수차례 한국에서도 소개됐지만 세월을 초월한 고전답게 이번에도 '삶을 반영하는 거울'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작품은 1930년대 경제대공황을 배경으로 한다. 주택할부금이나 보험료 등에 치여 살고 있는 세일즈맨인 주인공 윌리는 이제 60대에 접어들면서 회사에서 잘릴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현실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성공한 삶에 대한 갈망은 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결국 그 허망한 꿈을 아들을 통해 실현하려 한다. 미국의 한 아버지는 이렇듯 한국의 아버지들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

 

오는 5월8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예술의전당 공연에서 윌리 로먼과 그의 부인 린다 로먼 역을 맡은 배우는 손진환과 예수정이다. 연극계의 굵직한 상을 휩쓴 배우인 예수정은 연극 '하나코'에 출연한 뒤 바로 다음 작품에서 또 한 번 한태숙 연출가와 조우했다. 손진환 배우의 경우 최근 2~3년에 한 작품씩 출연했을 정도로 한태숙 연출가의 작품과 인연이 깊지만 이번처럼 큰 무대에서 선 굵은 역할을 맡는 것은 처음이다. 두 사람을 만나 '세일즈맨의 죽음'과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에 출연 중인 배우 손진환(왼쪽)과 예수정. 사진/예술의전당

 

-두 사람이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인가.

 

(예수정)생전 처음이다. 그 전엔 몰랐다.

 

(손진환)아니, 선생님이 기억을 못하시는 거다. 단편영화와 장편영화에서 뵀다. 영화 '지구를 지켜라'에서도 같이 출연했다. 같은 장면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선생님께서는 찍어놓고도 잘 안보시니까.(웃음) 그동안 영화를 간간히 했다.

 

-예수정 배우의 경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연극 '하나코' 다음에 한태숙 연출가와 또 한 번 작품을 바로 하게 됐는데.

 

(예수정)한 선생님께서 '하나코' 때부터 나를 매우 쳐야겠다고 생각을 하셨나보다.(웃음) 어렸을 때 만나고 오랫동안 안 만났으니까 한 번 칠 때 계속 매우 쳐야겠다고 작정하신 것 같다. 그래서 이어서 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왜, 대학 다닐 때 보면 서너해 차이나는 선배가 더 무섭지 않나. 요즘에는 부드러운 엄마 같지만 예전엔 무서운 선배였다. 

 

-손진환 배우는 한태숙 선생님과 많이 작품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손진환)처음 선생님 작품을 한지는 11년 정도 됐다. 그 이후 2~3년에 한 번씩 작품을 했다. 

 

-캐스팅 되고 굉장히 놀랐다고 들었다.

 

(손진환)많이 놀랐다. 잠을 못 잤다. 안 믿겨지고, 붕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두 달 정도 힘들었던 것 같다. 주연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이 정도 규모에서 주연을 해본 것은 처음이다.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윌리 역을 맡았다. 나이 들어 보이기 위해 머리카락도 잘랐다던데.

 

(손진환)진작에 잘랐다. 안에도 좀 밀고. 공연 연습 초반에 제안을 하셨는데 흔쾌히 받아들였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두 분 다 처음 해보는 작품이다. 굉장히 연구를 많이 했겠다.

 

(손진환) 정신병리학적인 자료를 많이 봤다. 연출 선생님도 그런 쪽으로 접근하셔서 치매 등에 대해 연구를 했다. 그래도 남들 하는 정도지 엄청나게 연구하고 그런 건 아니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에 출연 중인 배우 예수정, 박용호, 손진환, 이승주(왼쪽부터). 사진/예술의전당

 

-윌리 역, 린다 역을 맡기로 하고 작품을 다시 읽었을 때 어떤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나. 이 작품의 힘, 매력에 대해 말해달라.

 

(손진환)아버님 생각을 되게 많이 했다. 아버님이 반대하는 배우의 길을 이렇게 몇 십 년 째 하고 있다보니. 아직 아주 유명한 배우가 되지도 못했고, 결혼도 굉장히 늦게 했다. 반대를 굉장히 많이 하셨는데 그 뜻을 거스르고 살아온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내 상황을 대입하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작품을 읽으니 너무나 자연스럽게 많이 눈물이 나더라. 아버님이 젊었을 때부터 삶을 꾸려가면서 어떻게 돈을 버셨는지 하는 것들이 생각나서 많이 울었다. 막상 연습에 들어와서는 그런 생각을 안하려고 노력을 했다.

 

-모두에게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공연이다.

 

(손진환)거의 대부분의 가정이 이렇지 않을까. 어머니는 많이 참으시고.

  

-예수정 배우는 작품 읽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예수정)나는 오히려 나이가 드니까 아버지보다 젊은이들, 아들 입장이 훨씬 이해가 된다. 자기가 꿈꾸던 게 성취가 안될 나이가 되면서 자식의 성공을 바라게 되는데 젊은이들은 그게 얼마나 스트레스일까. 좀 못 살아도 자유롭게,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 수 있는 건데 그러지 못하는 이유 중 일부분은 부모님이 실망할까봐 그러는 것 아닌가. 아들이 많이 생각났다. 옛날에 읽었을 때는 '아버지들의 희생이 이랬구나' 그랬는데 나이 들어서 보니 '아, 이 허망한 야망이라는 게 이게 안 좋은 거다' 이런 생각이 든다.

 

-이번 공연에서 그 점이 많이 드러나기도 한 것 같다.

 

(예수정)자식들은 그런 희생을 원하지도 않는데, 그냥 자기 한 몸 편안히 잘 살아주면 고마운 건데 부모들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자기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희생하니까. 물론 갸륵하고 뜨거운 마음이지만, 젊은 사람들은 '그거 싫다고요' 그럴 것 같다. '어르신들은 그냥 편하게 사시면 그게 우리한테 가장 편해요'라고 할 것 같다. 내가 달라져서 그런지 모르겠다.

 

-오래 전에 쓰여진 희곡인데도 요즘의 세대 문제와도 상통하는 작품이다.

 

(예수정)아들인 해피와 비프의 비교도 아주 잘 써놓은 것 같다. 해피 같은 경우는 흔히 생각할 때 바람둥이, 비프는 자유를 원하는 사람으로 본다. 그런데 내가 읽을 때는 비프는 그래도 아직 꿈이 있는 청년이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아는 사람인데 해피는 꿈을 잃어버린 자,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아는 게 아니라 계속 남과 비교하며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삶을 사는 사람으로 보이더라. 남들이 다 좋아하는 길로 가려고 하는데 그게 안되니까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바람을 피는 것 같았다. 비프의 경우는 꿈을 잃지 않은 아직 젊은 아이인데, 그래서 말투나 행동이나 다듬어지지 않고 좀 거칠다. 보면서 요즘 세대를 굉장히 많이 느꼈다.

 

-그래서 린다가 공연에서 해피를 많이 혼낸 건가.(웃음)

 

(손진환)근데 한태숙 연출가는 등짝을 더 세게 때리라고 하셨다. 세게 때릴수록 더 아끼는 마음이 보이는 거라고.(웃음)

 

(예수정)나로서는 최대한 세게 때리는 거다.(웃음)

 

-비프 역의 이승주, 해피 역의 박용우 배우는 함께 맞춰보니 어땠나.

 

(손진환)굉장히 지독하게 열심히 한다. 이승주 배우의 경우 잠을 못 잘 정도로 열심히 한다. 박용우 배우도 그렇고. 처음 만났는데 다들 다른 일을 별로 안하나 보다. 젊을 때는 할 일이 굉장히 많을텐데.(웃음)

 

(예수정)온도가 좋다. 뜨거워서.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에 출연 중인 배우 손진환(왼쪽)과 예수정. 사진/예술의전당

 

 

-린다 역에는 어느 정도 공감을 하나. 전형적인 어머니상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사실 예수정 배우는 그런 캐릭터는 아니지 않나.(웃음)

 

(예수정)전형적인 게 어디있나, 요새.(웃음) 타고난 심성이 착해서 인내하는 쪽으로 풀지 않았다. 요즘 어머니들처럼 '이 사람이 너무 힘드니까 내가 참아야지 어떻게 하겠어' 하는 컨셉트로 갔다. 모든 걸 다 이해하고 너무 사랑해서 자연적으로 인내하는 게 나로서는 잘 이해가 안됐다. 너무 고전적인 것 같고. 좋은 어머니의 수위를 좀 낮췄다. 나로서는 감히 범접할 수가 없어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는 엄마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남편보다 더 먼저 돌아버리지 않았을까. 우리 작품에서는 또 윌리가 원작보다 더욱 심하게 중얼중얼 거리는데 린다는 긍정적인 마인드이기 때문에 '괜찮아요, 괜찮아'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가도 진짜 현실에 부딪히면 놀라게 된다. 막상 윌리가 죽었을 때는 '나는 뭐 한 거지. 이 사람은 정말 그래야 됐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 

 

-사실 윌리 같은 경우는 아들과 운동을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미국 아버지 식의 설정이 많다. 한국 아버지들은 사실 그렇지가 않은데 접근하기에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손진환)지금도 편한 것처럼은 안보이는 것 같다. 조금 더 친밀하게 하라는 주문을 받고 있다. 저번 연습 때는 그래서 업어보기도 하고 그랬다가 좀 어색해서 빼기도 했다. 조카들은 여러 명 있는데 내가 실제로 아버지였던 적이 없으니까 아무래도 좀 다를 것이다. 주문을 해주시면 그걸 많이 반영하려고 하는 편이다. 요즘은 그렇지 못하지만 어렸을 때 아버지와 등산과 낚시를 다녔던 좋은 기억이 있는데 그걸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배우들의 경우 아무래도 캐스팅이 돼야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다. 작품 속 윌리와 같은 고민들이 사실 배우들에게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어느날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상황 말이다.

 

(손진환)어느 날 전화가 안 오면

 

(예수정)음, 나 같은 경우는 일을 많이 안해서 공백이 길고 그럴 때가 있는데. 그게 '신난다'는 아니지만 그런 시간에 익숙한 편이다. 공백 기간을 잘 지내는 게 내가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연습할 때는 두달 반에서 석달 가량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쓴다. 그런데 이런 작업을 연달아서 하는 게 과연 내 인생의 발전과 이어지는가를 생각하면 이런저런 것을 보상해주는 게 공백기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손진환)예수정 선생님은 이거 끝나고 바로 산티아고로 가신다. 

 

(예수정)그런 건 소문내지 말고.(웃음) 사람의 생각이라는 게 한계가 있다. 공백기간 동안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여다볼 시간을 갖지 않으면 (머리를 가리키며) 여기가 자꾸만 막힌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이라는 게 원래 정해진 게 아니지 않나. 어떤 상황에서 한 사람이 슬플 수도 있지만 사실 그냥 멍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슬프다'라고 가정을 하고 접근하고, 모두가 슬프기를 원하고 거기로 머리를 들이밀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내 인식의 지평이 조금 넓다면 뭔가 다른 감정을 찾아낼 수 있다. 뭔가가 안 찾아진다면 인식이 막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연을 많이 하고 연극을 많이 해서 화술이나 움직임 등 테크닉 등을 좋게 만드는 것은 관객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지 그것보다 역시 배우한테 필요한 것은 머리를 물렁물렁하게 해두는 것이다. 근데 그걸 언제 하나. 막상 공연할 때는 조여지는 게 있기 때문에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벗어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평소에 (머리를 가리키며) 여기를 잘 찢어놓으면, 공연이 있을 때 스스로의 발에 힘이 붙는다. 시간이 갈수록 그런 생각에 정당성을 더 주고 싶어진다. 

 

(손진환)그럴 때 산에 가서 시간을 참 많이 보낸 것 같다. 힘들게 올라가면 오히려 더 편해지는 것 같고. 이번에도 끝나면 산을 갈 것 같다. 지리산을 가거나 가본 지 오래된 통영에 가든가. 아무튼 많이 걸을 것 같다. 그런 시간을 가지려 한다. 

 

(예수정)윌리는 진짜 거대한 역이다. 작품도 그렇지만,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윌리 역이라는 게 정말 어마어마하다. 

 

-공연 보는 관객들이 꼭 기억했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면. 

 

(손진환)지난해에 개인적으로 마음이 되게 힘들었을 땐데 그 때 단편영화를 찍고 있었다. 이 일도 있고 저 일도 있고 한 상황이었는데 내가 여기저기 너무 접속을 많이 하고 있더라. 그러다보니 힘들었다. 어느날 눈을 딱 떴는데 내 생각이 났다. 그 때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순간순간 주어진 만큼 해내면서 즐겁게, 가능하면 건강하게 생각을 가져가지 않으면 내가 못 버티겠더라. 그러고 나서 비교적 편해졌다. 그게 이번 공연과 관련한 연락을 받기 직전이었다.

열심히 하는 것은 기본인데 그걸 넘어서서 일이 될까, 안될까 하는 것에 조바심을 느끼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냥 묵묵히 열심히 가는 것 밖에는 없는 것 같다. 관객들도 이 공연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셨으면 좋겠다. 

 

(예수정)마지막 커튼콜 때 기회가 됐으면 좋겠는데, 책임감이란 걸 어깨에 짊어지고 그 책임감을 향해 끝까지 갔었던 모든 가장들한테 진심으로 고개 숙여 인사할 수 있었으면 한다. 작품을 하다보니 '사랑의 무게라는 걸 어깨에 짊어지고서 힘들게 가다가 절망하고 또 싸워야 하는 사람들끼리 작품을 매개로 함께 극장 안에 모여서 공감하고 있구나' 하는 게 느껴진다. 마지막에도 그런 걸 느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건 내가 욕심을 낼 수 없는 건데 사랑의 무게라는 것 때문에 끝까지 책임지고 가려는 열정이 좋은 것이긴 하지만 그 또한 허망한 꿈이라는 것을 관객들이 조금은 보고 갔으면 하는 욕심은 있다. 윌리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건 사랑뿐만 아니라 또한 허망한 꿈 때문인데, 그걸 일일이 무대 아래 내려가서 이야기해줄 수도 없고.(웃음).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마침 연출 선생님이 허망한 꿈을 부추기는 인물로서의 '벤'이라는 역할을 상당히 강하게 색칠하고 가셨으니까 기대하고 있다. 사실 오늘날 그런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나. 왜 옛날 어른들이 '몸은 개천인데 눈만 용이다' 하는 말처럼, SNS를 통해 자기를 과시하고 허상 속에서 살다가 절망하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 왜 허망한 꿈을 꾸는지 모르겠다. 진환이처럼 산에 가거나 그래야지. (웃음)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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