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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국적선사는 국가의 자존심이자 자랑…망하게 두면 안돼"
김영무 선주협회 상근부회장 '업계 망라하는 컨트롤타워 절실'
2016-03-22 09:45:20 2016-03-22 09:45:34
[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국적선사가 없어지면 어떻게 되냐고요? 쉽게 말하면 글로벌 대형선사들이 부산항을 들르지 않게 돼 부산항의 위상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화주의 비용도 높아지고 부산항 연계 산업단지 및 관련 종사자가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될 겁니다"
 
현대상선(011200)한진해운(117930)의 유동성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현대상선은 지난 18일 주주총회를 열고 주식병합 건을 통과시켜 상장폐지 위기를 넘겼고, 대한항공은 최근 2200억원 규모의 한진해운 영구채를 인수키로 했다.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영무 선주협회 부회장(사진)은 해운업과 조선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업계를 망라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진/선주협회
경쟁력 없는 기업이라면 정리되고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새로운 기업이 등장하는 것이 순리로 여겨진다. 하지만 선주협회는 국적선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부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해운업만큼은 일반 기업과 같은 잣대에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한국선주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상근부회장은 "국적선사의 존재 자체가 국가의 자존심이자, 자랑"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 부회장은 "한진해운이 컨테이너 두 척으로 시장에 뛰어든 지 불과 25년만에 세계 5위권이 됐지만, 지금은 10위 밖으로 물러나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
 
큰 배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기항포트를 줄이려는 경향이 있다. 국적선사가 없어진다면 대형선사가 굳이 한국의 부산항을 들를 필요가 없어져, 국내 화주들은 중국이나 일본으로 주요 화물을 실어 날라야 한다. 무역 의존도가 세계 4위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무역수출입 화주들의 비용 구조 자체가 상승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 부회장은 지금 이대로 정부가 손을 놓아버린다면 국적선사가 없어지게 돼 국가적으로 큰 손실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게다가 해운업은 국내 수출입 화물 운송의 (99%) 99.7%, 국가 전략 물자 수입의 100%를 담당하고 있는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미래 경쟁력 상실한 유동성 확보 전략
 
글로벌 경기 침체로 위기에 빠진 해운업계는 지난 2009년 이후 돈이 되는 전용선과 LNG선 매각, 유상증자와 터미널 매각 등으로 약 5조원 가량의 유동성을 확보했다. 하지만 회사채 연장 시 원금의 20%를 상환해야 했고, 10%가량의 이자를 내야하는 등 금융부담이 컸다. 김 부회장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힘드니 유동성을 확보하느라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쓰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이 기간 동안 덴마크 선사 머스크(Maersk)는 40여척, CMA-CGA는 10여척의 대형컨테이너선을 발주했다. 고효율의 선박으로 무장한 대형선사들은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을 뒤로 따돌렸다. 김 부회장은 "절대 게임이 안되는 싸움"이라며 "컨테이너 하나당 비용이 20% 가량 차이가 나기 때문에 한진해운, 현대상선이 머스크 같은 대형선사와 게임이 안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02년 현대상선은 스웨덴의 왈레니우스(Wallenius)에 자동차선 사업부를 15억달러에 매각했다. 당시 외환이 부족했던 정부는 기업에게 무차별적으로 부채비율 200%를 준수할 것을 요구했다. 왈레니우스는 3억달러를 제외한 12억 달러를 국내 은행에서 빌렸는데, 자동차선 사업부(현재 유코카캐리어스)는 매년 2000~3000억원 가량의 흑자를 내는 우량 기업이 됐다. 결국 겨우 3억 달러가 유입되는데 그쳤고, 알토란 같은 사업은 외국기업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한진해운은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근 2200억원 규모의 영구채를 발행했다. 유럽 항로 운항중인 1만3100teu급 한진해운 컨테이너선. 사진/한진해운
 
김 부회장은 "각국 정부들은 국적선사를 지키기 위해 금융지원을 발표하는 등 선제적 지원에 나서면서 해당선사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지켜주고 있는데, 우리 선사들은 지금도 돈 되는 알짜 자산들을 팔고 있어, 향후 경쟁력을 해치고 있다"고 우려했다. 경기가 좋지 않아 신조선가가 낮게 형성된 시점에 선박을 발주하는 '경기역행적 투자'로 경쟁력을 쌓아가는 글로벌 대형선사가 부럽기만 하다.
 
프랑스와 독일, 중국 등은 해운업계가 불황을 겪자, 정부 차원에서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COSCO에 108억 달러의 신용을 제공했고, 조선업계에는 신조 발주 지원을 위한 224억 달러의 여신을 마련했다. 덴마크 정부는 머스크에 수출신용기금 5억2000만 달러의 금융을 지원했다. 독일 정부는 하팍로이드(Hapag-Lloyd)에 18억 달러의 지급 보증을 섰고, 함부르크 시는 7억5000만 유로의 현금을 지원했다.
 
김 부회장은 "든든한 정부의 지원을 받는 기업들과 그렇게 않고, 이것저것 다 팔아서 겨우 연명하는 기업의 배가 있다면, 화주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겠냐"고 물었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탄탄해 보이는 선사를 택할 수밖에 없다.
 
각자도생 분위기 안타까워…'컨트롤타워' 절실
 
그는 우리 산업계가 협력하지 못하는 행태에 대해 개탄했다. '나만 잘되면 된다'고 생각하는 '각자도생' 분위기가 만연해있다는 것이다. 김 부회장은 "우리 산업계는 우리끼리 경쟁하는 게 심각한 문제"라면서 "우리끼리 피 터지게 경쟁해 저가 수주해서, 결국 손에 쥐는 게 없지 않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 산업계를 예로 들었다. 김 부회장은 "일본 배가 브라질에서 철광석을 실어오고, 그 철광석으로 일본 제철소가 후판을 만들고, 종합상사에서 대주는 돈으로 일본 선사가 배를 만드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일본 내부로 돈이 들어오면 잘 나가지 않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해운업계에서 일본 시장은 뚫기 어려운 것으로 유명하다. 
 
해운서비스는 물건을 제때 잘 실어 나르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서비스의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국내 화주들에게 국적선사를 이용해달라 협조를 구하고 있지만 무조건 요금이 싼 곳으로 고객이 몰려들 수밖에 없다. 김 부회장은 "민간끼리 협조가 잘 안되기 때문에 누군가가 나서줘야 하는데, 잘 되지 않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정부 차원에서 해운과 조선, 무역, 금융을 아우를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절실합니다. 정부에서 해운업에 대해 직접 지원하게 되면  세계무역기구 (WTO)에 제소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도 있습니다. 하지만 해운업은 국가 기간산업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WTO를 적용할 수 없다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중국이나 덴마크 같은 선진국들도 국적선사를 도와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최근 들어 해운업계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어 매우 고무적이라고 김 부회장은 설명했다. 지난해 말 정부가 '산업별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은 뒤 업체들이 선박펀드 지원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부채비율 400%를 맞추기 위해 자산 매각, 유상증자 등을 단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수출입은행이 LTV(담보인정비율)적용을 유예했다. 수출입은 약 1100억원의 유동성 간접지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협회는 산업은행에도 국적 벌크선사에 대한 LTV 적용을 유예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한진해운에 해기사로 입사해 1등 항해사까지 거쳤다. 이후 선주협회에 입사해 33여년간을 업계에 몸담아 왔다. 김 부회장의 아들도 해양대를 졸업하고 폴라리스해운에서 2등 항해사로 승선 중이다. 폴라리스해운의 김완중 회장과 김 부회장은 40여년 전 해양대 재학시 기숙사 4년 룸메이트다.  그는 "내가 배를 가져보지 못했으니 아들은 선주가 한번 되보면 어떨까 생각한다"고 웃어 보였다.  올해 상근 부회장으로 첫 해를 맞은 그의 목표는 '위기극복'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올해 중점 사업은 지금 현재의 위동성 위기를 극복하고 선사들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보라 기자 bora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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