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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쓰레기로 만든 가방이 필리핀 빈곤 가정에 희망이 됩니다"
이영연 저스트프로젝트 대표 "환경보호에다 기부까지"
"업사이클링 시장 성숙해져 많은 사람들이 좋은 활동에 동참할 수 있었으면"
2016-03-03 12:48:58 2016-03-03 13:29:51
'업사이클링(upcycling)'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업사이클링은 폐기물을 재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으로, 기존 재활용(recyling)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방식이다. 업계에서는 지난 2013년 20억원 수준에 불과했던 업사이클링 내수시장 규모가 지난해 100억원대로 급성장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저스트프로젝트'는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드는 사회적기업이다. 주 재료는 일상생활에서 버려지는 빨대와 비닐로, 필리핀 현지 근로자 20명이 제품을 만든다. 제품 판매로 인한 수익금은 다시 필리핀의 주요 교통수단인 트라이시클을 구매하는데 쓰여 어려운 가정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지난 2014년 여름, 단순한 프로젝트로 시작해 지금은 필리핀에 두 개의 회사를 만든 이영연 대표를 만나봤다.
 
저스트프로젝트의 키워드는 '쓰레기'다. 버려지는 빨대, 비닐, 종이가 저스트프로젝트의 손을 거치면 가방으로 재탄생한다. 이 가방에는 '환경보호'와 '기부문화'도 함께 담겨있다. '쓰레기를 쓸모 있는 제품으로 변화시키는 일', 저스트프로젝트가 추구하는 모토다.
 
집 잃은 필리핀 가정 돕기 위한 프로젝트로 시작
 
'Just Project!'. 저스트프로젝트는 프로젝트일 뿐이었다. 이영연 대표는 지난해 초까지 친환경 문구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가 필리핀에 두 개의 회사를 차리게 된 계기는 이민을 떠난 부모님을 찾아뵙기 위해 필리핀을 오가면서다.
 
"필리핀에 갔을 당시 큰 태풍이 지나갔는데, 부모님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일을 돕던 현지인의 집이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두 눈으로 봤습니다. 마음이 안 좋았죠. 이 분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6명의 가족이 살 집을 짓기 위해서는 500만원이 필요했다. "지인 500명만 모아보자." 이 대표는 한국에 돌아와 지인들로부터 1만원씩 기부를 받기로 결심했다. 현실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다들 기부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쉽게 지갑을 열지는 않았다. 필리핀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가져와 팔기도 했다. 제품에 스토리가 없다보니 이 역시 실제 판매로 이어지진 않았다.
 
"기부를 받는 것도, 필리핀 제품을 판매하는 것도 실패하면서 디자이너 경력을 살려 제품을 만들고, 이를 브랜딩해서 판매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6명의 가족을 돕고자 시작한 프로젝트였죠."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6명의 필리핀 현지 가족을 돕기 위해 시작한 일은 이 대표에게 있어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을 건네는 일종의 봉사 의미가 전부였다. 이렇게 프로젝트로 시작했던 일이 하나의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아이템이 개발되고 현지인을 통해 업사이클링 제품이 생산되면서 일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이 대표는 직장생활을 접고 저스트프로젝트 사업에 매진하게 됐다.
 
이영연 대표(왼쪽에서 두번째)와 필리핀 현지인 근무자들의 모습. 사진/저스트프로젝트
 
쓰레기로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제품
 
저스트프로젝트의 주요 제품은 가방이다. 비닐이나 빨대를 엮어 만든 제품으로, 동남아나 남미, 아프리카 지역에서 예전부터 질긴 나뭇잎이나 부드러운 나무껍질로 가방이나 바구니를 만들던 방식을 적용했다.
 
쓰레기를 활용해 만든 가방은 이미 해외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북미와 유럽에서 이 같은 방식으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브랜드가 있는데, 이들은 프린팅이 잘못된 비닐 등을 기부 받아 만들었다. 방식은 같지만 저스트프로젝트는 이미 개인에게서 사용된 쓰레기에 초점을 맞췄다. 필리핀 현지의 큰 마트나 카페에서 버려지는 빨대나 비닐을 수거해 세척을 하고, 이를 100% 수작업으로 가공해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때문에 같은 제품은 단 하나도 없다. 제품 하나하나가 세상의 하나뿐인 제품이다.
 
빨대와 비닐로 만든 동전지갑. 사진/저스트프로젝트
 
현재 업사이클링 제품들은 필리핀 현지에서 만들어져 한국으로 보내진다. 현지에서 일하는 근무자는 총 20명. 이들이 만든 가방, 카펫 등 제품은 한 달에 약 150여개에 이른다. 유일한 한국인인 이 대표는 필리핀을 오가며 제품을 점검한다.
 
현지인들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제품의 반응은 다행히 좋았다. 빨대와 비닐로 만든 제품 자체에 소비자들이 재미를 느꼈다.
 
"빨대나 비닐로 만들어지다 보니 제품을 재미있어 하고, 제품에 담긴 스토리를 알고 난 후 더 관심을 주더군요. 실질적으로 판매로 이어지고 있고, 시원한 느낌이 있기 때문에 여름철에 인기가 많죠."
 
저스트프로젝트의 가방은 소재 특성상 여름이 성수기다. 그렇다고 비수기에 현지인들의 근무를 중단할 수 없어 1년 내내 가방이 생산된다. 소재의 특성을 고려해 이 대표는 사계절이 여름인 대만으로 눈을 돌렸다. 지난해 대만지역 매장 몇 곳에서 시범적으로 제품을 판매해 반응을 지켜봤고, 올해부터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판로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필리핀 택시회사 만들어 현지인 생계 지원
 
제품 판매로 모은 수익금 전액은 다시 필리핀 현지인을 돕는 데 쓰인다. 이 대표가 또 하나의 회사를 만든 이유다. 필리핀에서는 택시와 같은 교통수단이 '트라이시클'이다. 현지에서 트라이시클은 한 가정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제품 판매로 얻은 수익금으로 어려운 가정에 트라이시클을 한 대 사주려고 했어요. 하지만 현지인들 대부분이 채무가 있어 트라이시클을 사주더라도 기존 빚 때문에 뺏기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트라이시클 회사를 운영해 이들을 드라이버로 고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 대표는 이렇게 필리핀에 두 개의 회사를 운영하게 됐다. 트라이시클 회사는 저스트프로젝트의 가방 판매 수익금으로 운영할 방침이다. 지금까지는 수익금을 모으는 데 집중했다. 이르면 이달부터 트라이시클 회사가 계획대로 운영된다. 트라이시클 한 대당 비용은 1000만원가량이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 발생한 수익금 일부와 개인 자금을 합쳐 트라이시클 한 대를 마련하기로 했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가방 판매와 트라이시클 사업이 원활하게 연계되면 현지인들을 돕는 일이 체계적으로 잡힐 것 같습니다."
 
저스트프로젝트는 다른 사회적기업과 달리 아직까지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있다. 혼자 힘으로 사업을 이어가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게 이 대표의 의지다. 저스트프로젝트의 사업이 수익 사업이 아니다 보니 주변의 걱정도 크다. 이 대표는 디자인 경력을 살려 수익이 되는 일을 병행하면서 저스트프로젝트를 이끌어갈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이 대표는 업사이클링에 대한 건강한 시장이 조성되길 바라는 마음도 전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업사이클링에 대한 건강한 시장이 마련되지 않았어요. 친환경 녹색성장을 강조하면서 국민들 사이에 문제의식은 생겼지만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죠. 오히려 아직까지 반감도 많습니다. 업사이클링 시장이 성숙해져서 많은 사람들이 좋은 활동에 동참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바람이 한국과 필리핀을 넘나들며 훈풍이 되고 있다. 
 
임효정 기자 emy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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