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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미·중 한반도 관리…한국은 구경꾼”
중, 강력한 대북 제재 동의하며 정세주도권 잡아…향후 2~3개월 분수령
김준형 한동대 교수 정세진단 “한국, 외교 지렛대 다 포기해”
2016-02-28 12:50:51 2016-02-28 15:46:23
미국과 중국이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감행한 북한을 제재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초안에 합의했다. 현재 안보리 이사국들이 회람하고 있는 결의안이 이번 주 안에 안보리를 통과하면 북한은 전례 없이 강한 제재를 받게 된다.
 
그러나 결의 채택은 한편으로 새 국면의 도래를 의미한다. 중국이 미국에 제안한 한반도 평화협정 논의 쪽으로 갈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27일 인터뷰에서 강경 일변도의 분위기가 누그러지는 것일 뿐 상황을 낙관하긴 이르다고 진단했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갈 틈이 생겼지만, 현재까지 보여준 한·미의 태도로 볼 때 그 틈을 적극 활용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 초안을 평가한다면
 
‘20여년 만에 최강인’ ‘포괄적인’ 대북 제재라는 서맨사 파워 유엔 주재 미국대사의 표현이 어느 정도 맞다. 북한 수출입 화물에 대한 검색이 지금까지는 대량살상무기 관련 화물의 선적이 의심될 만한 단서가 있는 선박에 한정해서 검색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모든 화물에 대한 검색을 의무화했다.
 
기존 제재가 ‘불법’에 한정된 것이라면, 이번 제재는 훨씬 더 포괄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석탄을 비롯한 철광석 등 북한의 광물 수출을 금지하고, 소형 무기까지 포함한 모든 무기에 대해서도 금수 조치를 취한 것도 강력한 조치다. 그러나 여전히 관건은 이러한 결의를 중국이 얼마나 충실하게 이행하느냐다.
 
결의안 초안을 외견만 보자면 미국의 압박에 중국이 굴복하거나 양보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한·미 정부가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자기들이 향후 제재를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제재의 속도와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실제로 그럴 수 있는 여지가 많다. 2013년 3차 핵실험에 대한 제재 때도 그랬듯이 실천적 측면에서 제재를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일단 대부분의 선박의 입출항이 중국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이들을 엄격하게 검색할 것인지는 중국의 의지에 달려있다. 또한 북·중 교역은 외부에 노출되지 않고 육상을 통해 얼마든지 지속할 수 있다. 연간 50~60만톤으로 추정되는 대북 원유 공급도 중국의 완강한 반대로 중단시키지 않았고, 해외로의 북한 인력 송출 차단 같은 조치도 없으며, 민생과 관련된 부분에 대한 예외조항을 인정했다. 중국이 북한의 체제붕괴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 23일 미·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중국이 대북 제재에 찬성하는 대신 미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의 한국 배치를 보류하는 식의 거래가 있지 않았겠냐는 해석이 많다. 또 중국이 제안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협정 논의 병행 추진’에 대해서도 얘기가 오갔을 것 같은데 어떻게 진단하나.
 
왕이 외교부장이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을 통해 북한에 대한 당근과 채찍을 ‘콤보’로 묶은 셈이다. 중국이 제재 수준을 높이는 대신 미국이 대화의 문을 열어 제재와 대화를 병행해야 한다고 미국을 설득했을 것이다. 결국 따지고 보면 중국과 미국은 강조점만 달랐을 뿐 강경책과 온건책을 다 버리지 않은 것이다.
 
물론 미·중의 합의는 잠정적인 것이다. 사드 배치 문제도 보류나 속도조절로 봐야지 미국이 중국의 요구를 수용해 배치를 완전히 철회한 것이 아니다. 한반도 평화협정 논의도 미국이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을 받아들였다기 보다는 제재와 함께 대화 모드도 유지한다는 정도를 수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합의 과정에서 중국은 굴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것을 얻었는데,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에 대해 한·미·일이 대북 강경책으로 치닫는 동북아의 ‘강 대 강’ 대결과 긴장 구조를 일단 안정시켰다. 둘째, 중국이 유엔의 대북 제재에 참여함으로써 책임 있는 행위자임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셋째, 대북 제재 국면에서 주도권을 확보했다. 그동안은 한·미·일이 밀어붙이면서 주도권을 가졌는데, 중국이 강력한 대북 제재에 동의하고 나서면서 중국이 상황을 주도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이 제재 실천의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넷째, 평화협정을 중심으로 아젠다를 끌고 왔다. 미국이 평화협정 논의로 가겠다고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그쪽으로 물꼬를 텄다. 다섯째, 사드 배치 논의의 속도를 늦췄다.
 
왕이 외교부장은 케리 장관과 회담한 후 “향후 2개월 동안 한반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겠다”고 말했다. 만약 미국이 사드 배치를 완전히 철회했고 중국이 대북 제재를 하는 것으로 합의를 끝냈다면 그런 얘기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2개월 동안 북한과 미국이 하는 것을 보면서 중국이 중간에서 주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 미·중의 잠정적인 합의를 흔드는 변수가 있다면
 
남한과 북한이 흔들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중국의 의도대로 안 움직이고, 남한도 미국의 뜻대로 가지 않을 수 있다. 남·북한이 계속 서로를 군사적으로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3월에 시작하는 대규모 한·미 군사훈련 과정에서 북한이 도발해온다든지, 미국이 이번에 어느 정도 태도 변화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이 무시하고 계속 강경책으로 나가면 전체 구도가 흔들릴 수 있다. 왕이 부장이 2개월 동안 지켜보겠다고 한 것은, 자기들이 그 기간 동안 주도하겠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북한이 판을 흔들 수 있음을 우려하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 한국의 입장과 행보를 평가한다면
 
중국이 하고 있는 역할을 한국이 했어야 했다. 한국이 미국을 설득해 당근을 가져오고, 미국의 당근을 이용해 중국의 채찍을 끌어내 북한을 설득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을 중국이 했다. ‘강 대 강’ 대결 구조로 치닫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안정을 가져올 가능성을 열어 결과적으로 다행이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한국은 소외돼버렸다. 중국과 미국은 북한에 대한 레버리지(지렛대)를 하나도 버리지 않았지만 한국은 다 버렸다.
 
개성공단의 경우 잠정 중단이나 시한부 중단을 했더라면 레버리지가 살아 있었을 텐데 그냥 버렸다. 사드 배치 문제에서도 한국이 미국보다 앞서 강경하게 나섰는데, 오히려 미국이 유연성을 보여 버렸다. 이제 앞으로라도 그간 중국이 했던 역할을 한국이 이어 받아 중국에 힘을 실어 주며 상황을 주도해야 하지만, 정부는 ‘우리가 중국을 압박했더니 중국이 굴복하더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는 카드를 다 버린 채 주변으로 밀려나 구경꾼이 되어버렸다.
 
-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와의 위안부 합의와 이번 개성공단 폐쇄를 통해 일본과 북한은 물론 미국에 대한 레버리지도 포기했다고 페이스북에 주장했다. 어떤 논지인가?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한일관계 악화는 동북아가 ‘한·미·일 대 북·중·러’ 신냉전 구도로 가는 것을 지연시켜온 요소였지만, 그게 없어져 버렸다. 위안부 합의가 대일 레버리지의 포기인 동시에 대미 레버리지를 포기한 의미인 또 다른 이유는 위안부 문제는 미국이 역사·영토 문제와 달리 인권 문제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유대인 홀로코스트만큼이나 전 인류적 함의를 가진 문제다. 이 문제로 일본과 미국을 압박하고 한국이 세계 여론을 주도하면서 근본적인 해결을 도모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미국의 한·미·일 3각 군사협력 구축이라는 동북아 전략에 걸림돌이었던 위안부 문제를 우회할 수 있도록 박근혜 정부가 길을 활짝 열어주었다. 위안부 문제를 인권의 차원에서 다루려 애쓰는 미국 의원들에게 주미 한국대사관이 위안부 관련 활동 중단을 요청했다는 뉴스는 한국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개성공단 폐쇄도 대미 레버리지를 포기한 것인 이유는, 한국이 미국의 당근을 이끌어낼 수 있는 상징적이고 유용한 카드가 개성공단이었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은 한미 자유무여협정(FTA) 협상 때부터 유엔의 대북 제재까지 국제 기준에서 남북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예외로 인정받은 분야였다. 과거 부시 미 정부의 대북 강경책에도 살아남았던, 한국이 가진 대미 설득의 레버리지였지만 이제 북한은 물론이고 미국을 설득할 어떤 카드도 없어진 셈이다.
 
사드 배치 역시 미국이 원하는 전략적 목적을 위해 한국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사드는 미국의 동북아 미사일방어(MD) 체제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수단임에도 한국이 북한 위협 대응용이라고 정당화하면서 미국이 나서서 누그러뜨려야 할 중국의 반발을 한국 몫으로 가져와 중국의 연속적인 협박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형국이다. 국민들의 반대나 중국의 반발, 신냉전 가능성, 미일동맹에의 종속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부터 안전장치나 반대급부도 확보하지 못한 채 받아들였다.
 
- 임기 1년도 남지 않은 오바마 미 행정부가 평화협정을 논의하는 쪽으로 갈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
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적극 움직일 시점도 아니고 동력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의 동북아 전략을 고려할 때 절대 사드 배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미국은 동북아 MD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이고, 사드는 그 핵심이다.
 
지금은 유엔 대북 제재 합의 국면에서 사드 문제를 일단 넘어가기로 한 것일 뿐이다. 남북이 대결로 치닫는 것을 원치 않았고 중국이 강한 유엔 제재에 찬성한다는데 구태여 판을 깰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사드를 약간 연기해도 손해 볼 게 없다. 잠정적으로 합의하고 중국이 어떻게 할지 볼 것이다. 그래서 사드 배치를 안 한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미·중 외교장관 회담으로 상황이 관리되고 있는 것이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두 나라에 의한 상황 관리 혹은 조정 국면이다.
 
강경 일변도로 가는 것이 아니니 우리로서는 나쁠 것은 없지만, 문제가 사실상 해결된 것으로 상황을 낙관하거나 ‘한국의 압박이 통했다’는 식으로 오해를 하면 안 된다. 2~3개월 간 건설적으로 상황 변화를 이끌어 갈 틈은 생겼는데, 한·미가 건설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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