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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속으로)설은 왔는데…한산한 전통시장 vs 붐비는 대형마트
상인 얼굴 주름 가득 "한파가 야속해"…시장이 살아야 지역이 산다
2016-02-04 17:06:28 2016-02-04 17:06:59
설을 앞두고 왁자지껄 '장터'로 붐벼야 할 전통시장의 표정이 밝지 못하다. 오가는 발걸음을 쫓다보니 정치권만 눈에 들어온다. 민생을 돌본다는 차원에서 여야 대표들이 다녀갔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각 당의 예비후보들도 시장 속으로 이동, '서민의 아들(딸)'을 외치고 있다. 총선과 설이 어우러진 묘한 풍경이다. 방송사 카메라들도 시장을 찾았다. 장바구니에 담긴 제수용품은 서민경제의 애환을 상징한다. 정작 시장을 찾는 소비자들의 발길은 줄었다. 한산하다 못해 음침한 기운까지 감돈다. 연중 가장 큰 대목임에도 빈 손으로 문을 닫는 상인들의 얼굴은 주름과 걱정으로 가득 찼다. 반면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은 사람들로 붐빈다. 변화된 유통환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가격 외의 전통시장 경쟁력은 소멸됐다. 설을 앞두고 대비되는 양쪽의 표정을 살폈다.
 
"곧 설인데 날씨가 계속해서 춥다 보니 대목을 놓칠까 걱정된다. 설과 추석, 두 개 보고 장사하는데 작년 추석에는 메르스, 올해 설은 추위로 대목이 실종되면서 1년 장사를 또 망치게 됐다."(망원시장 상인 손모씨). "날씨가 얼음장부터 춥다. 나부터 밖에 나오기가 싫은데 손님이 있을 리가 있나. 유동인구가 확 줄었다. 따뜻한 내부에서 쇼핑할 수 있는데 이 추위에 시장에 나오겠나 싶은 생각이 든다."(중앙시장 상인 장모씨)
 
전통시장 상인들의 겨울나기가 만만치 않다. 한파가 몰아치면서 매출이 절반 이하로 추락했다. 설 명절 특수를 기대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다시 찾아온 추위와 얇아진 주머니 탓에 소비자들의 씀씀이가 예전만 못해졌다. 설이 가까워질수록 소비자들의 발걸음이 근근이 이어지고 있지만 소비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올해 설 장사를 망친다면 지난해 메르스 여파로 추석 장사가 시원찮았던 데 이어 1년 장사를 망치는 셈이라는 곡소리마저 나온다. 상인들의 얼굴은 추위로 갈라지고 걱정으로 주름만 늘었다. 반면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설 선물세트를 구매하려는 발길로 가득 찼다.
 
"사람은 늘었는데 도통 사질 않는다"
 
설 연휴를 닷새 남겨둔 지난 1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망원시장은 장바구니를 들고 나온 몇몇 어르신들을 빼고는 대체로 한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쌀쌀한 날씨에도 상인들은 나물을 잔뜩 쌓아놓고 "한 바가지에 5000원", 알밤을 쌓아놓고 "한 바가지에 3000원"이라며 오가는 손님들의 발길을 붙잡으려 애썼지만 손님들은 정해놓은 길목으로 발걸음을 바삐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인근에서 과일을 파는 A씨는 "지난주에는 한파로 손님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시장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이가 많은 분들인데, 오늘처럼 날씨가 추운 날은 노인들마저 시장을 찾기 힘들어진다"고 토로했다.
 
설 명절이 가까워질수록 손님들의 발길이 그나마 늘고는 있지만 예년 대비 턱도 없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이렇다 보니 상인들의 입에선 "장사가 아예 되지 않는다", "경기가 너무 안 좋다"는 볼멘소리로 가득했다.
 
동태포를 뜨고 있던 김모씨는 "설 차례상에 올릴 동태를 3마리씩 포를 떠가던 손님도 이제는 반 마리만 사갈 수 없느냐고 되묻거나 물건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구매를 망설인다"며 "물건값을 20% 이상 할인된 가격을 불러도 손님들이 구입을 주저한다"고 말했다.
 
2월1일 망원시장 설맞이 풍경. 사진/뉴스토마토
 
특히 지난해보다 가격 인상폭이 큰 과일과 육류의 경우 사정은 더 안 좋다. 가격조사 전문기관인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배와 곶감은 지난해 겨울 장마와 이상기온에 의한 생산량 감소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사과(5개)와 배(5개) 가격은 재래시장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33%정도 올라 각 2만원선이다. 한우의 경우 사육 마릿수가 감소해 쇠고기(한우 양지국거리A1+·600g)는 지난해보다 11% 오른 3만3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인근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손님들이 한우보다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한 육우 혹은 수입산 위주로 사간다"며 "특히 요즘은 식구가 많지 않다 보니 고기 반근 이렇게 설날 하루 해먹을 정도만 사간다"고 전했다.
 
청과상을 운영하는 신모씨는 "예전에는 사과, 배 등 상자로 선물을 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선물세트를 박스째 구입하는 사람들을 보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가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작년보다 올해 더 힘든 것 같다"며 "지난 추석에는 과일가격이 싸 조금은 바쁘게 보냈는데 지금은 직원 3명이 지나가는 손님 구경만 하고 있다"고 했다.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선물세트 등의 판매도 감소하고 있다는 목소리는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설과 추석이 연중 최대 대목이지만, 이제 대목이라는 말도 무색해져 가고 있다.
 
굴비를 파는 양모씨는 "올해는 전통시장 상품권 손님을 제외하면 단골들도 발길을 끊었다"며 "이제는 사람들이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얼굴에는 걱정과 주름이 깊게 배였다.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북적북적'
 
설 특수가 모든 곳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은 미리 설 선물을 사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소비자들이 불황에 씀씀이를 줄이면서 소비 패턴이 중저가 선물세트 위주로 집중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는 있지만, 전통시장에 비해서는 상황이 매우 좋았다.
 
백화점 한 관계자는 "몇 년 전만 해도 40~50만원대 정육세트를 비롯해 100만원대 전후의 고가선물을 집중적으로 내걸었지만, 올해는 20만원 미만 정육세트와 15만원 미만 굴비·청과세트 등 10~20만원대 제품이 날개 돋친 듯 판매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선물세트 입점 업체들도 평균단가를 내리고 할인율을 높이고 있다. 백화점 입점 선물업체 직원은 "1~2인 가구가 늘면서 실속 선물세트 판매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며 "지난해보다 평균판매단가가 낮아지기는 했지만 팔리는 양이 늘어나 지난해 설 매출을 웃돌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1월 들어 한파가 지속되면서 홍삼·견과 등 건강식품 선물세트 판매량이 급증했고, 의류 선물 매출도 늘고 있다. 다른 관계자는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자 설빔으로 겨울옷을 사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며 "건강식품은 선물세트 카테고리 중 가장 높은 성장세를 기록 중"이라고 설명했다.
 
1일 저녁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 사람들. 사진/뉴스토마토
 
대형마트도 설맞이에 함박웃음이다. 선물세트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수년째 뒷걸음질 쳤던 매출 신장도 기대된다. 같은 날 저녁 코스트코 양평점 주변은 지하주차장으로 향하는 차들로 붐볐다. 대형매장 안에서는 선물세트가 한가득 담긴 카트를 밀며 쇼핑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선물세트 판매원은 "연말 이후 소비심리가 다시 냉각되면서 명절 한 주 전 풍경은 예년보다 덜했지만, 설이 가까워질수록 선물세트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판매원은 "선물세트를 쌓아놓기 무섭게 제품이 나가고 있어 창고에서 연신 물건을 나르고 있다"며 "10만원 미만의 제품이다 보니 한 사람당 적게는 5개, 많게는 10개 이상씩 사가는 손님들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서울역 롯데마트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중국인 관광객 유입이 늘어난 이유도 있지만, 설이 가까워지면서 선물세트를 사려는 국내 소비자들의 발걸음도 잦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 설 전날 대형마트가 휴무을 감안해 틈틈이 설맞이에 나선 소비자들이 늘었다는 설명이다. 길게 늘어선 계산줄을 기다리는 여모씨는 "지난 주말은 추워서, 설 전날은 마트가 쉬는 날이라 오늘 나오게 됐다"며 "선물 구매비로 20만원을 염두에 두고 나왔는데 괜찮은 중저가 세트가 많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소비 양극화 극명…전통시장 경쟁력 갖춰야
 
전통시장과 백화점·대형마트의 설맞이 풍경은 소비의 양극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일각에서는 이 간극을 줄이기 위해 전통시장이 편의성 개선 등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주차공간, 편의시설 등 대형 유통몰과 대비되는 환경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시장조사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말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통시장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소비자들로 하여금 전통시장을 잘 찾지 않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주차의 불편함(66.8%·중복응답)으로 조사됐다. 편의시설의 부족(51.5%), 교통의 불편함(49.6%), 시장 내 이동의 피로감(48%)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컸다. 편리하게 쇼핑할 수 있는 다른 유통채널들이 많다는 것도 원인이었다.
 
그럼에도 지역상권의 활성화를 위해 전통시장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특히 연령대가 높아질수록(20대 72.8%, 30대 82%, 40대 84%, 50대 이상 86.4%) 전통시장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무엇보다도 젊은 층이 많이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재래시장이 젊은이들도 즐겨 찾는 공간이 돼야 활성화될 수 있다고 답했다. 10명 중 7명 이상이 재래시장에서도 문화공연 등의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며 변화를 촉구했다.
 
상인연합회 관계자는 "변하는 유통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다 보니 매년 명절 유통 대기업들과의 소비 양극화가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통감한다"며 "시장별로 지역색을 살리고, 편안한 쇼핑거리를 만들 수 있도록 투자도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양한 연령대의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자구책 마련에 힘을 쏟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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