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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최민식 "'마의 2시간' 깨버렸으면"
2015-12-14 15:05:53 2015-12-14 15:05:53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명량해협에서 일본군의 함대를 격퇴시킨 이순신을 연기했던 배우 최민식의 다음 행선지는 지리산이었다. 항일 분위기가 짙은 일제강점기 시골의 한 포수가 그가 맡을 역할이었다. 기록으로 존재하던 이순신을 생생히 표현해냈던 그는 이번에는 가상의 호랑이와 붙어야 했다. '명량'의 현장이 너무도 고생스러워 이순신을 다시는 연기하지 않겠다는 말이 무색하게 최민식은 이번에는 지리산의 거친 산중턱을 올랐다. 최민식이 영화 '대호'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6개월 간 지리산에서 부대낀 최민식을 지난 11일 서울 부암동 소재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예의 사람 좋은 웃음을 웃어보이며 서글서글한 모습으로 기자를 마주한 최민식은 '대호'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대본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이야기, 냄새가 괜찮았다. 내 성향이 약간 고적전인 느낌이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왠지 새로운 영화가 나올 수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영화 '대호'에 출연한 최민식. 사진/NEW
 
아닌 게 아니라 영화 '대호'에는 분명 새로운 지점이 있다. 날렵한 호랑이를 CG로 훌륭히 구현한 점, 전면적으로 항일운동을 하지는 않지만 보다 넓은 개념에서 일본과 맞선다는 점, 호랑이라는 상징적 존재를 통해 철학적인 메시지를 던진다는 점 등이 그렇다.
 
배우 입장에서는 가상의 호랑이를 두고 연기해야 한다는 게 부담일 수 밖에 없다. 최민식은 "호랑이가 검증이 안됐었다. 호랑이를 마주하고 연기를 하는 것도 상상이 안 갔다. 우리가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호랑이가 이상하면 실망만 안길 뿐이다. 우려가 왜 없었겠냐"면서 "막상 영화를 보니 꽤나 만족스러웠다. CG팀이 정말 훌륭히 해낸 것 같다"고 말했다.
 
기존 항일 영화들과 달리 '대호'에서는 조선인이 일본군과 맞서지 않는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 일본군에 합류한 조선인과 호랑이를 지키려는 조선인으로 그룹이 나눠지고,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온다. 그는 "이 영화가 상투적인 항일영화로 비춰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일제강점기지만 만드는 입장에서 항일에 중점을 두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천만덕의 행동이 항일이 되지만, 뻔한 클리셰는 거부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영화 '대호' 최민식 스틸컷. 사진/NEW
 
완성도 높은 영화가 나왔지만 최민식은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메시지를 모두 담기에 러닝타임이 짧다는 것이다. '대호' 속 인간 군상의 모습은 '돈'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는 현 시대 사람들과 매우 닮아있다. 이들을 보여주며 영화는 개인의 욕망을 넘어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 고민하기를 권유한다.
 
최민식은 "이런 깊은 이야기를 할 거면 4~5시간 넘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마의 2시간'을 꼭 깨고 싶다. 영화는 왜 2시간이어야만 하나. 2시간으로 줄이는 게 효율성은 있지만, 그 자체가 숨 막힐 때가 있다"고 말했다.
 
전작에서 1700만 관객 동원이라는 대기록을 남긴 그는 흥행에 있어서는 전혀 부담이 없다고 했다. 그랬다면 '대호'를 택하지 않았을 거란 얘기다. 최민식은 앞으로의 계획과 관련해 "아마 내가 재밌어하는 곳으로 갈 것"이라고 전했다. 몸 사리지 않고 도전을 거듭하는 배우 최민식의 다음 행보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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