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영화 '대호'에는 지난해 영화 '명량'으로 대기록을 쓴 배우 최민식이 출연한다. 연출은 '부당거래'와 '악마를 보았다'를 집필하고, '신세계'로 단숨에 차세대로 떠오른 박훈정 감독이 맡았다. 연기파 배우 정만식과 김상호가 뒤를 받친다. 없던 산을 새로 만들고, 길이 380cm, 무게 400kg의 호랑이를 그려낸다.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할 요소가 적지 않다. '대호'는 올 겨울 최고 화제작다운 외연을 갖췄다.
때는 1915년 일제시대다. 조선을 집어삼킨 일본군은 지리산 마지막 호랑이 잡기에 혈안이다. 조선의 자존심, 민족의 얼을 파괴하기 위해서다. 가죽 재질도 자신들의 입맛에 안성맞춤이다. 일본군은 조선 포수들을 채근해 '지리산 산군'이란 호칭을 지닌 애꾸눈 호랑이를 잡으려 한다.
영화 '대호' 포스터. 사진/NEW
그런데 이 놈이 보통 영특한 게 아니다. 총구를 겨눈 포수와 군인이 수백명씩 달려들어도 쉽게 잡히지 않는다. 목숨을 잃은 사람이 수십명이 넘는다. 산군으로부터 동생을 잃은 구경(정만식 분)은 복수심으로 호랑이를 잡으려 하지만, 녹록치 않다. 한계를 느낀 구경은 조선의 명포수 만덕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만덕은 요지부동이다. 호랑이 때문에 아내를 잃었음에도, 만덕(최민식 분)은 '산군은 건들면 안 된다'며 거절한다. 복수심에 가득 찬 구경은 만덕의 아들을 미끼삼고, 만덕은 다시 원치 않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영화는 호랑이와 인간의 싸움을 기대한 관객들의 예상을 철저히 배반한다. 누군가에게 꼭 처치해야 할 목적이었던 호랑이는 만덕으로 인해 인간이 지켜야할 절대적 가치로 변모한다. 영화의 흐름 역시 호랑이와 인간의 싸움에서, 호랑이를 처치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대치로 바뀐다. 그러면서 영화는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꼭 지켜야할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자고 권한다. 그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느리고 길며, 비장하게 전달한다.
영화에서 가장 칭찬해주고 싶은 배우는 호랑이다. CG팀은 위엄이 있고, 강직하며, 날렵한 호랑이의 이미지를 자세히 묘사했다. 어색한 장면이 거의 없다. 인간과 맞서는 액션은 물론, 감정신에서도 뜨거움이 전달된다.
영화 '대호' 최민식 스틸컷. 사진/NEW
촬영장에서 CG 호랑이의 빈 공간을 채운 건 배우들이다. '연기는 리액션'이라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최민식은 시종일관 강력한 존재감을 내뿜는다. 지난해 조선시대 최고의 장군에서, 올해 조선 말기 일개 사냥꾼으로 변했지만 이질감이 없다. 정만식과 김상호, 오스기 렌, 정석원 등 시너지는 강렬하다. 신예 성유빈 역시 놀라운 수준이다.
다만 영화는 다른 영화들에 비해 길고 좀 느리다. 거대한 이야기를 너무 어깨에 힘을 주고 말하니 조금 민망하다고나 할까. 비록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깊이 있는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 향연 등 장점은 다분하다. 특히 '대호'의 메시지는 분명 되새길 만하다. '영화는 상품'이라고 인식되는 시기에 진한 예술성을 가미했다. '대호'가 국내 상업영화의 지평을 한 뼘 더 넓혔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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