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전문가 칼럼] 야스쿠니 신사와 한일관계
일본 언론, 폭발음사건 용의자 진범 확정된 듯 보도 부적절
2015-12-13 10:46:51 2015-12-13 10:46:51
일본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는 A급 전범을 비롯한 약 246만명의 일본군 위패가 있고, 전쟁박물관인 유수관에는 가미카제 특공대의 유서와 제로센 전투기, 군마·군견 동상이 전시되어 있다. 위패 가운데 약 230만명은 중국 침략과 태평양전쟁에서 전사한 일본군이다. ‘야스쿠니’(靖?)는 본래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이나, 요즘은 한·중·일 외교 갈등의 진원지가 되어 있다. 이를 작명한 메이지 일왕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화도사건과 갑신정변, 청산리전투에서 사망한 일본군도 있다.
 
야스쿠니 신사가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1978년 A급 전범들을 합사한 이후다. A급 전범 14명 가운데 13명은 중국 침략에 책임이 있다. 난징대학살의 주범인 마쓰이 이와네 대장도 있다. 한국과 직접 관련된 A급 전범은 1942~1944년 조선 총독을 지낸 고이소 구니아키이다. 인적·물적 수탈이 가장 심했고 조선인들이 위안부와 강제 징용, 창씨개명, 일본어 강요, 식량 공출 등 헤아릴 수 없을 고통을 당했던 시기이다. 전후 야스쿠니 신사 측은 무단 합사한 2만1000명의 조선인 위패를 내달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일본 법원은 정교분리 원칙을 들면서 종교법인의 활동에 국가가 개입할 수 없다며 한국인 유족 패소 판결을 내렸다.
 
최근 들어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방화나 폭파 시도가 몇 차례 있었다. 2011년12월 한국계 중국인 류창은 야스쿠니 신사에 방화했다. 그후 한국으로 들어와 주한 일본대사관에 화염병을 던지고 구속되었다. 그의 사연은 기막히다. 한국인 외할머니가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 고초를 겪었다. 외증조 할아버지는 몰래 조선어를 가르치다가 일본 경찰에 고문을 받던 중 사망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재난 지역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그는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분노를 느끼고 야스쿠니와 일본대사관에 방화를 시도했다. 한·일 범죄인 인도조약이 있고 일본 정부가 강하게 반발했지만 한국 법원은 류창에게 분명한 정치적 동기가 있었다고 결론 내리고 중국으로 송환시켰다.
 
2013년9월에는 한 한국인이 야스쿠니 신사에 들어가 시너가 담긴 페트병을 던지려 하다가 체포되었다. 일본의 역사 왜곡에 화가 나서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2015년 11월23일 야스쿠니 신사 화장실에서 폭발음이 들렸고 발화 장치가 발견되었다. 일단 용의자로 전모씨(27)가 지목되어 일본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진범 여부는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하지만 야스쿠니 신사에 잇따른 방화와 류창의 중국 송환 등이 겹치면서 일본 내 혐한론이 더욱 거세질까 우려되고 있다.
 
아예 일본 언론은 용의자를 진짜 범인인 양 보도하고 있다. 대부분의 방송과 신문에서 크게 얼굴 사진과 실명을 게재하고 있다. 중대한 정치적 사건도 아니고, 인명 살상이나 기물 손괴가 없었고, 아직 범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런데도 거침없이 보도하는 일본 언론의 행태는 부적절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파리와 런던, 뉴욕에서 크고 작은 테러가 발생한데다 일본 내 혐한 감정이 결합되면서 일본 언론들이 반테러 및 혐한 감정에 편승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물론 종교 시설에 대한 파괴와 폭력 행위는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용인할 수 없는 범죄지만,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한국인·중국인의 심정을 일본인들도 고민할 필요는 있다.
 
이런 가운데 위안부 피해자 명예훼손죄로 기소된 ‘제국의 위안부’ 사건에 일본 내 진보 지식인이 반발하면서 지난 11월26일 항의성명을 발표했다. 한편으로 오는 17일에는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이 명예훼손죄로 1년6개월 유죄 기소에 대한 서울중앙지법의 선고가 예정되어 있다. 이같은 갈등이 이어지는 와중에 아베 정권은 자민당 창당 60주년을 맞이해 역사재검증 작업을 시작했다. 위안부와 난징사건을 재검증을 통해 또 다시 역사를 왜곡할 가능성이 높다. 도쿄재판의 부당성을 확산시켜 헌법을 개정하려는 수순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지난 11월2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연내 위안부 해법을 도출하자는 한국 정부의 제안이 무색해질 정도이다. 전후 70주년이자 한·일 수교 50주년인 2015년, 공동의 기억을 둘러싼 양국의 갈등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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