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법무부가 2년 전에 입법예고까지 했던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안이 표류하고 있다. 정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도 모자라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여당은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야권과 시민사회 요구에도 묵묵부답으로 버티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의원은 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롯데 사태로 불거진 대기업의 잘못된 지배구조 문제를 국민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며 "박 대통령 공약을 이행한다며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입법한다고 나섰던 정부는 아직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상법 개정안은 여야가 조금만 노력하면 풀 수 있는 문제"라고 했다.
우 의원은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상법 개정안을 지난 5월21일 발의했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의 이사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고, 감사위원의 독립성을 갖추는 내용을 담았다. 또 주주가 총회에 출석하지 않고도 의결권을 행사하는 전자투표제와 이사 선임에서 소수 주주의 집중투표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도록 했다. 재벌 총수 일가의 입김을 줄여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작업은 정부가 먼저 시작했다. 법무부는 지난 2013년 7월 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우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비슷한 내용이다. 하지만 법무부는 2년 넘도록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법제처 법안 심사 신청도, 국회 발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공교롭게도 상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된 지 한 달여 만인 2013년 8월23일 박 대통령은 재벌 총수들과 만나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지난 9월23일 상법 개정안 처리가 늦어지는 이유를 물은 참여연대에 보낸 답변서에서 "다양한 의견이 제출돼 개정안을 신중하게 검토하는 중"이라고 했다.
한국 기업 지배구조는 이미 세계 흐름에 뒤처져 있다. 세계경제포럼이 매긴 순위를 보면 2007년 25위였던 한국의 기업 경영 윤리는 올해 95위까지 떨어졌다. 회계·감사 기준도 같은 기간 35위에서 84위로 뒷걸음질쳤다. 기업 이사 효율은 30위에서 126위, 소액주주 보호도 31위에서 119위로 추락했다. 우 의원은 "지금도 너무 늦었다.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최소한의 장치인 상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투명한 경영 문화를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법 개정안의 정기국회 처리는 물 건너갔다. 새정치연합이 경제민주화 3법 가운데 하나로 이 법안을 내세웠지만, 여당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김성진 변호사는 "국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재벌 경영을 건전하게 만들고, 전횡을 견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정부 입법이 유야무야되는 상황에서 상법 개정안이 더 이상 표류하지 않도록 국회 통과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여당은 상법 개정안에 눈감은 채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거스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이 단적인 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겉으로는 사업 재편을 도와준다고 포장하고 있으나 정부가 말하는 업종 대부분은 이미 부실화가 심해 원샷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재벌·대기업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특혜로 작용할 수 있고, 주주총회를 생략해 이해 관계자의 권리를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12일 국회를 통과했던 기업 인수합병을 원활하게 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전 교수는 "여기엔 주주총회를 열지 않고 이사회 결의로 갈음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갔다"며 "이사회 결정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같은 예방 장치가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순민 기자 soonza00@etomato.com
법무부가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지 2년이 지나도록 국회에 발의하지 않은 채 "검토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 6월16일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의원 주최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안 공청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우윤근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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