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이후의 기후변화 대응 체제를 논의하는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가운데, 남한이 북한에 태양광발전 등 재생에너지 기술을 이전하는 대가로 가져올 수 있는 경제적 가치가 연간 112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현대경제연구원 장우석 연구위원은 지난 30일 ‘남북 재생에너지 CDM 협력사업의 잠재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분석하며 “남·북 재생에너지 협력은 현 정부의 그린 데탕트(환경 분야 협력을 통한 화해·협력) 정책을 현실화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CDM은 청정개발체제(Clean Development Mechanism)의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용어로 현행 기후체제인 교토의정서에 규정된 개념이다. CDM의 목적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협력해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동시에 개도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달성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선진국이 개도국에 자본과 기술을 투자해 낡은 산업시설·발전시설을 에너지 효율이 높은 시설로 바꾸거나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설비를 새로 만들어주면, 그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량을 선진국의 감축 실적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CDM 집행위원회는 인정한 분량만큼의 탄소배출권을 투자국에게 부여한다. 이는 해당 선진국에 당초 허용된 온실가스 배출량 이상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공장 증설 등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 돈으로 환산된다.
한국은 현행 교토의정서 체제에서 온실가스 감축의무국은 아니지만 교토의정서가 만료되는 2020년 이후의 새 기후체제에서는 감축의무가 부과된다. 이에 정부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전망치 대비 37%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지난 6월30일 유엔에 제출했다. 그러나 전형적인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국이 경제성장과 감축목표 달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탄소배출권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과의 CDM 협력이 긴요하다는 주장이 7~8년 전부터 나왔는데 이번에 구체적인 경제 효과가 장우석 연구위원에 의해 산출된 것이다.
보고서에서 장 연구위원은 남한이 북한에 재생에너지 발전 기술을 이전할 경우 북한이 확보할 수 있는 전력생산 잠재량은 연간 8915TWh(테라와트시)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재생에너지 중에서도 시장 규모가 크고 성장률도 높아 유망산업으로 주목받는 태양광과 풍력, 소수력 발전만을 검토한 결과 태양광에서 가장 많은 8902TWh, 풍력에서 8TWh, 소수력에서 5TWh를 연간 확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남한이 확보할 수 있는 탄소배출권은 이산화탄소 연간 108억톤(CO2) 분량으로, 그 경제적 가치는 112조원 규모라고 장 연구위원은 추산했다.
장 연구위원은 “석탄과 수력 중심의 에너지 수급구조를 가지고 있는 북한은 새로운 에너지원 개발에 대한 수요가 높아 CDM 사업에 유리한 조건”이라며 “한반도의 자연환경에 부합하는 재생에너지 개발을 남한이 주도하게 되면 북한 지역의 친환경적 개발과 한반도의 평화 정착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민간기업이 선도적인 투자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에서 에너지 관련 공기업이 먼저 북한과 CDM 사업을 수행해 성공사례를 남김으로써 사기업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장 연구위원은 “최근 중국 주도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설립되면서 북·중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대북투자 가능성이 높고 러시아도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추세”라며 “북한 개발을 둘러싼 주변국의 경쟁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남한이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도록 당국간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북한이 남한의 지원을 통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도록 지원함으로써 남한이 대북투자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남·북 CDM 협력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발전량이 증가할 경우 북한의 소득 수준 향상과 통일비용 감소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도 그간 이 문제에 관심을 보여 왔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이던 2008년 신년사에서 지구온난화 방지라는 국제사회의 공동 과제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그해 3월에는 남·북이 CDM 프로젝트를 공동 추진하는 방안을 놓고 개성에서 막후협상을 벌였다는 <신동아>의 보도도 나온 바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달 쯤 후부터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논의는 중단됐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환경·민생·문화의 3대 통로’를 열자고 북한에 제안했고 올 6월에는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나온 상황에서 CDM이 남·북 협력의 효과적인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3대 통로’ 중 환경 통로에 대해 “남북을 가로지르는 하천과 산림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일부터 시작해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협력사업을 확대해 가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일 파리 유네스코 본부 연설에서도 ‘남·북한 환경·민생·문화의 3대 통로’를 다시 언급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김정은 북한 국방위위원회 제1위원장은 2014년 신년사에서 “수력을 위주로 하면서 풍력과 지열, 태양열을 비롯한 자연에너지를 이용해 전력을 더 많이 생산할 것”을 주문했다. 이같은 재생에너지 보급 촉진 정책은 이 분야에서 남북 협력의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사진은 지난 10월 3일 북한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준공식 장면이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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