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무렵 재벌로는 화신(박흥식), 태창(백낙승)을 비롯해 지주에서 상업자본으로 변신한 경성방직(김연수), 일제시대 최고 부자였던 민대식·민규식 형제 등이 꼽힌다. 당시 이들의 위상에 비하면 삼성이나 LG(옛 락희)는 구멍가게 수준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면서 화신, 태창 등은 사라졌고, 삼양으로 사명을 바꾼 경성방직은 재계 30위권 밖으로 밀린다.
대신 현대(정주영), SK(옛 선경, 최종건), 한진(조중훈), 한화(옛 한국화약, 김종희) 등 신흥 재벌이 급부상했고, 삼성과 LG도 몸집을 불렸다. 오늘의 10대 재벌이다. 이들이 재벌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적산 불하와 정경유착이 만들어낸 '기적'이 있었다.
◇현대·한화·두산·동양 등 적산 불하 수혜
첫 번째 열쇠는 어수선한 해방 정국에서 이뤄진 적산 불하다. 일제가 전쟁에 패망하자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자산을 그대로 남기고 도망치듯 떠났다. 이는 조선에서 수탈한 자본이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새 정부가 소유해 국가재정에 충당해야 했다. 그런데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자유경제 원칙을 적용, 민간에 매각한다. 그것도 당시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공짜나 다름없게 민간에 넘겨졌다.
1947년부터 무려 2821개 업체가 이런 식으로 민간에 넘어갔다. 더구나 해방 후 5년 만에 6·25전쟁이 터지면서 '귀속재산처리법' 등 적산 불하의 원칙이 무시되다시피 한 채 정권과 결탁한 소수 자본가들에게 주요 적산들이 넘겨졌다. 특히 기존 재벌들이 반민족행위자로 몰려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적산 불하는 꿈도 꾸지 못한 틈을 타 1920년 이후 태어난 젊은 사업가들이 적산을 기반으로 급속히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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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통천군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소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였던 정주영이 대표적이다. 그는 미 군정 아래에서 서울시 중구 초동 땅 2백여평을 넘겨 받은 것을 시작으로, 자동차 수리공장을 운영해 모은 돈으로 조선이연금속 인천공장을 불하받아 인천제철로 키웠다. 이를 바탕으로 만든 현대그룹은 1980년 이후 20년간 재계 1위를 고수했다.
또 조선유지 인천공장은 당시 30대였던 김종희에게 넘어가 한화그룹의 모태가 됐고, 소화기린맥주는 박두병에 불하돼 OB맥주가 됐다. 근대 상업주의의 상징이었던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은 삼성이 흡수, 오늘날 신세계백화점이 됐다. 설탕 도매상이었던 이양구는 오노다 시멘트 삼척공장을 인수해 동양시멘트로 키웠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 역시 일본인이 남기고 간 방직공장을 인수해 전남방직으로 키웠다.
해방 직전 선경직물에 취직했던 최종건은 선경직물을 넘겨받아 선경물산으로 키웠고, 반세기 후에는 재계 3위의 SK그룹으로 성장했다. 흥미로운 점은 선경직물이 조선에서 만주로 직물을 팔던 선만주단과 일본의 교토직물이 합작해 설립됐다는 점이다. SK의 유래인 '선경'(鮮京)은 이 앞글자들을 딴 것으로, 일제가 도모한 내선일체의 의미가 담겨 있다. 다만 SK는 불하받은 기업의 이름을 그대로 썼을 뿐, 내선일체 의미는 과도한 해석이라는 주장이다.
이밖에 외환위기 전까지 재계 10위권이었던 쌍용그룹은 일본 방직공장이, 재계 30위권을 형성했던 해태그룹은 일본인이 남기고 간 제과공장이 모태다. 1980년대 재계 7위까지 올랐던 국제그룹도 부산에 남은 일본 견직공장을 인수하면서 몸집을 키웠다.
◇군사독재의 유산 '정경유착'…대우·한진·SK '급성장'
두 번째 열쇠는 정경유착이다. 적산 불하가 임자 없는 땅에 누가 먼저 깃발을 꽂느냐의 경쟁으로 변질되면서 돈 있는 사람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정권에 줄을 대기 시작했고, 우리 경제의 고질병이 된 정경유착을 낳았다. 특히 이승만 정권 이후 군사정권에서 정부 주도의 관치경제를 고수하면서 정경유착은 더 심해졌다.
최정규 성균관대 교수에 따르면, 이승만 정권 때 정경유착이 가장 심했던 곳은 백낙승의 태창그룹이었다. 백낙승은 일제시대 섬유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으며, 중일전쟁을 위한 국방헌금과 군용 비행기를 자진 헌납할 정도로 권력에 줄을 댔다.
그는 해방이 되자 이승만에게 붙었다. 정치자금을 제공한 대가로 고려방직과 조선기계 등을 불하받고 홍삼 판매권까지 손에 쥐었다. 그는 심지어 이승만의 정적인 여운형과 박헌영에까지 줄을 대는 등 정치력까지 발휘했다. 하지만 1956년 백낙승이 사망하고, 4년 후 이승만마저 하야하자 태창그룹은 급속히 몰락,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본격적인 정경유착은 박정희 정권에서 이뤄졌다. 박정희 정권은 경공업을 탈피, 중화학공업 육성을 내세우며 재벌들과 밀접히 결합했다. 이른바 산업화다. 삼성은 1964년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현 삼성정밀화학)를 설립하는데, 이 과정에서 정부는 일본과의 차관 교섭에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업 합리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부실기업 정리도 정권에 줄을 댄 재벌들에게는 몸집을 키울 기회로 작용했다. 최정규 교수에 따르면, 정부는 부실기업을 인수하는 대신 부채의 이자 지급을 일정 기간 유예하고 대출 원금을 탕감하는 혜택을 줬으며 특별융자도 시행됐다.
산업 합리화로 가장 덕을 본 곳은 1967년 설립된 대우(김우중)다. 대우는 매물로 나온 부실기업들을 인수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춰 자동차, 전자, 중공업, 금융 분야로 진출했다. 대우는 설립 20년 만에 27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재계 2위까지 오를 정도로 그 수혜를 톡톡히 봤다.
3선 개헌에 성공한 박정희 정권은 경영 효율성 추구를 명분으로 1968년부터 공기업 민영화를 시작한다. 1968년 이후 10년간 12개의 공기업이 민영화되는데, 정부와 우호관계에 있던 기업들이 인수했다.
가장 큰 수혜자는 한진이었다. 1945년 엔진 수리공장과 트럭 몇 대를 기반으로 시작한 한진은 1969년 대한공항공사(지금의 대한항공), 대한해운공사(한진해운), 대한조선공사(한진중공업)를 잇따라 인수하며 거대 물류운송 그룹으로 커나갔다.
SK도 수혜자다. 1970년대까지 섬유·화학산업에 주력하던 SK는 1980년 대한석유공사를, 1994년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그룹의 양대 축인 SK에너지와 SK텔레콤으로 키웠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사돈인 노태우 전 대통령 임기 때 따냈지만 숱한 논란 끝에 반납한 후 김영삼 정부 들어 한국이동통신을 품에 안게 된다. 현대와 대우도 각각 인천중공업과 한국기계공업을 품에 안았다.
◇베일 벗은 정경유착…존경 못받는 재벌
공공연한 비밀로만 알려지던 정경유착의 실체가 드러난 계기는 1988년 5공 청문회였다. 당시 국세청은 전두환 정권이 357개 기업으로부터 거둔 각종 기부금 규모가 1045억원이라고 밝혔다. 이조차도 박계동 의원이 폭로한 통치자금 4000억원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1992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정치자금 문제를 본격 제기했다. 그는 그해 1월 기자 간담회에서 "박정희 대통령 때는 한 번에 5억원씩 내다가 마지막에 20억원씩 냈고, 전두환 대통령 때는 추석에 20억원, 연말에 30억원을 냈으며, 6공 들어서는 20억~30억원씩 내다가 50억원으로 올렸고, 1990년 말에는 100억원을 냈다"고 폭로해 충격을 던졌다.
문민정부 들어 비자금 문제가 공론화되자 검찰 조사로까지 이어졌다. 전임이던 노태우 정권 때 주요 재벌의 정치자금 상납액은 확인된 것만 삼성과 현대가 각각 250억원, 대우 240억원, LG 210억원, 한진 170억원, 동아 160억원, 롯데 140억원이었다. 또 진로 110억원, 한일 100억원, 쌍용과 한보가 각각 80억원, 효성 75억원, 대림 70억원, 금호 60억원, 극동건설 50억원, 기아·동부 각각 40억원, SK 30억원, 두산·코오롱 각각 20억원을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상납액은 무려 2040억원에 달한다.
일제와 미 군정, 이승만 정권, 군사독재 정권에 이르기까지 권력과의 유착에만 매진했던 재벌은 경제발전 공로에도 불구, 사회적 지탄 대상에 머물고 있다. 국민의 기본의무인 병역은 물론 국적 논란에, 최근에는 땅콩회항에서 보듯 3세들의 일탈 문제까지 불거졌다. 또 탈세와 횡령,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 등 각종 경제범죄도 재벌의 단골 메뉴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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