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①대한민국 재벌의 뿌리…부의 배경은 지주·부일·정경유착
2015-11-18 07:00:00 2015-11-18 10:31:29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의 핵심은 '뿌리'다. 뿌리는 정통성과 정체성을 규정한다. 때문에 권력은 부끄러운 뿌리의 왜곡에 대한 유혹을 느끼게 된다. 대통령과 집권여당 대표가 과거사 전선을 이끌고, 기득권층이 집결한 것도 부끄러운 뿌리의 미화에 있다는 평가다. 이로 인해 2015년 대한민국은 '친일'과 '독재'의 광풍에 다시 휘말렸다. 소용돌이에서 비켜난 듯 보이지만, 재벌 역시 뿌리 논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일제에 대한 부역은 미 군정을 거쳐 군사독재와의 유착으로 이어졌다. 이를 통해 축적된 막대한 부는 탈세 등 각종 편법을 이용해 대대손손 세습되며 그들만의 왕국을 구축했다. 그 사이 사회는 양극화로 시름 중이며, 젊은이들은 금수저·흙수저라는 변형된 계급론을 당위로 받아들이며 꿈을 접고 있다. <뉴스토마토>가 '재벌의 뿌리'를 들여다본 이유다.(편집자)
 
취재팀이 두 달여에 걸쳐 국내 30대 재벌(2015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 기준)의 기원을 분석한 결과, 선대가 일제시대 지주 또는 부일 세력이었거나 해방 이후 정경유착을 통해 부를 쌓은 경우가 절반을 넘었다. 범위를 주요 재벌로 넓히면 그 수는 더 많아진다. 현대와 대우(1999년 해체), STX(2013년 해체) 등이 자수성가형으로 꼽히지만 이들조차도 정권과의 유착을 통해 재벌로 성장했다.
 
재계 1위 삼성(이병철), 4위 LG(구인회), 6위 GS(허정구), 22위 효성(조홍제) 등은 창업주가 경남의 지주들이었다. 이병철이 쓴 <호암자전>을 보면, 그는 1930년대 중반까지 30명 정도의 노비를 둔 천석꾼 집안에서 자랐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강원도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며느리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조부(현준호)는 호남의 대지주였다.
 
지주들은 대부분 일제에 협력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안위를 보장받는 한편 소작농들에 대한 착취 강도를 높였다. 참여정부 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오미일 부산대 연구교수는 "당시 지주들은 아파트 투기하듯 땅을 담보로 은행 돈을 빌려 다른 땅을 사는 방식으로 부를 늘렸다"며 "일제에 포섭돼 수탈에 앞장선 지주도 많았다"고 말했다. 이는 민심의 반감을 낳았고, 해방 직후인 1946년 북한의 토지개혁 배경이 됐다.
 
적극적인 부일을 통해 부의 기반을 마련한 경우도 있다. 박승직 두산그룹 창업주는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까지 이름이 실렸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조부인 정상희 역시 일제시대 총독부 관리를 지냈다. 일본이 만든 어용 체육회 간부로도 활동했다. 체육인이던 그는 1940년대 기업인으로 변신한다.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는 1930년부터 해방까지 전라도 일대에서 경찰을 지냈으며, 이원만 코오롱그룹 창업주는 1923년부터 10여년간 경북에서 산림조합 기수보를 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군납을 통해 사업기반을 마련했다.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는 금융조합장을 지낸 이력이 있는 데다, 1940년에는 신문광고를 통해 일제 천황가의 기념일을 축하하기도 했다. 이재준 대림그룹 창업주의 부친은 면장을, 형인 이재형 전 국회의장은 금융조합 이사를 지냈다. 산림조합과 금융조합 모두 총독부의 최일선 대민기구였다. 
 
오미일 교수에 따르면, 일제시대 지주와 부역세력의 궤는 같다. 지주는 토지를 기반으로 토지를 불렸고, 부일세력은 권력을 악용해 수중에 들어온 돈을 땅에 투자해 지주가 됐다. 이들은 일제의 수탈이 극심해지던 시기에도 이런 방식으로 차곡차곡 부를 쌓았으며, 해방 후에는 산업자본으로 변신해 오늘날의 성공에 이르렀다.
 
해방 이후에는 정권에 줄을 대는 방식으로 부를 쌓았다.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에서는 일본이 남기고 간 적산 불하를 놓고 정경유착이 활발했다. 이후 정부 주도의 산업화 흐름 속에 정권에 돈을 댄 재벌들은 부실기업 및 공기업 인수, 사업권 획득 등의 각종 특혜를 챙겼다. 삼성, 현대, 대우, LG, 한진 등은 군사정권에 수백억원대의 정치자금을 바쳤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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