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과 물과 땅과 그 이치’라는 관점에서 본 마을은 물리적 환경이 아니라 사람, 자연 그리고 공간이 상호 공존하는 곳이 된다. 마을 동(洞)의 뜻에서 유래하고 있는 마을의 의미는 ‘같은 우물을 쓴다’는 뜻을 지닌다. 선조들은 큰길, 어귓길, 샛길, 안길, 골목길 등 길의 사용 여부에 따라 길의 의미를 구성하고, 그 길과 길이 연결된 하나의 공간을 마을을 이해했다. 따라서 과거의 마을은 구성원 간의 호혜적 관계가 형성된 사람 중심의 공동체, 공간과 공간이 연결된 관계의 공간공동체 그리고 자연에 순응하여 더불어 사는 생명지역공동체의 특징을 지닌다.
그러나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 과정을 겪으면서 동네 혹은 마을이라는 공간적 의미가 점차 약화되었다. 1960년대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전환하기 위해 진행된 한국적 근대화 프로젝트는 도시에서는 경제개발계획이 농촌에서는 새마을운동이 국가재건의 핵심적 프로젝트였다. 조국 근대화 프로젝트로 시작된 한국의 압축적 성장은 마을에서 지역으로, 지역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부동산으로 공간에 대한 이해가 확장되어 가면서 물리적 환경 구축에 집중해 왔다.
산업화의 반작용으로 다양한 풀뿌리 운동이 전개되고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마을 만들기 운동도 등장한다. ‘마을만들기’라는 용어가 우리 사회의 특정 실천사업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로 지금은 지역 활동가들이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과 도시계획, 도시재생 현장에서도 널리 사용된다. 우리나라의 마을만들기운동은 마을 디자인, 마을 가꾸기, 마을만들기, 마을진흥사업, 생태마을운동, 마을공동체운동, 주민자치운동 등 추구하는 목적과 내용, 진행 방법, 대상 등에 따라 다양한 이름과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마을만들기는 주민참여예산이나 주민주도 마을계획과 같은 자치와 거버넌스 영역과 사회적기업, 협동조합운동 등 커뮤니티 비즈니스와 결합하면서 마을에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고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2000년대에 이르러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마을만들기를 공식 정책으로 받아들이면서 조례제정, 관련 부서 설치, 중간지원조직 결성 등이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각 지방자치단체가 마을만들기를 정책의 주요 분야로 추진하면서 관료화된 마을만들기의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나친 관 주도, 형식주의, 하향식 추진, 단기적 실적주의, 정치화 등의 문제로 주민이나 활동가들과 갈등을 빚고 중앙정부에서도 마을과 공동체에 대한 유사 중복 정책이 난무하면서 중복지원, 성과주의, 예산낭비, 공동체성 약화 등의 부작용이 발생했다. 마을만들기의 필요성, 마을과 공동체, 주민주도 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었지만, 아직 마을만들기에 대한 개념과 범위, 방식과 내용에 대해서는 오해나 편견으로 인한 쟁점이 있다. 한편, 그것들은 마을과 마을만들기가 다양성과 특수성을 지닌 영역이라는 점을 말해 준다.
최근 마을공동체운동의 권한과 책임을 확보하고, 계획적이며 안정적인 활동을 추진하기 위한 제도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마을만들기 조례를 제정하는 지자체도 늘고 있다. 그러나 제도를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장기적으로 프로그램이 지속되어야 한다. 문화는 제도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참여의 경험을 축적하고 체화할 때 하나의 동질적 유전자가 형성됨으로써 정착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참여 문화는 긴 호흡의 여정이며, 인내를 가지고 추진해야 할 제도다. 따라서 참여의 기본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개방성, 공평성, 투명성, 공개성, 권한 부여 등의 여러 요소들이 지켜져야 한다.
마을만들기는 거버넌스에 기반한 풀뿌리 주민자치운동인 동시에 진정한 마을의 의미를 복원하는 운동이다. 마을만들기의 시작과 끝은 주민과 마을이다. 그 어떤 제도와 정책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가장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상호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주체별 역할정립이다. 마을만들기는 물리적 환경개발 중심에서 사람과 거주자 중심 그리고 현 세대와 미래 세대를 고려한 생태적 삶의 공간을 이루어 가는 가치 발굴형 내생적 발전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창언 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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