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국정화 이슈, 이념 아닌 상식의 문제
2015-10-13 13:25:20 2015-10-13 13:25:20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계획을 발표한 12일, 독일 대통령 요하임 가우키가 우리나라 국회에서 연설했다. 요하임 가우키는 동독 출신의 신학자이자 민주화운동가이며 2012년 3월 독일 대통령으로 선출된 통일독일의 산파 가운데 한 명이다.
 
“독일에서 우리는 과거 청산이 성공적인 화해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매우 좋은 경험을 했던 방법 중 하나는 교과서에 관한 대화입니다. 교과서는 역사와 이웃국가들에 대한 청소년의 시각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독일은 브라운슈바이크 소재 게오르크-에커트 연구소를 통해 한일간 이러한 대화를 지원했습니다.” 
 
교과서를 획일적 주입이나 수험교재가 아니라 대화의 매개로 묘사한 대목이 흥미롭다. 독일 게오르그 에커트 연구소의 에크하르트 푹스 대표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교육과정은 아직 중요하지 않다. 역사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며 새롭게 해석되고, 거기에 지역적 특성의 영향도 받는다”고 말한다. 
 
독일은 교과서의 국정화는 고사하고 검정제도 자체에 대한 찬반논란을 벌인다. 정부가 교과서를 허가하는 제도가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중이다. 이미 10여년 전에는 ‘독일-프랑스 공동교과서’ 같은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도 있다. 2003년 5월 ‘독일-프랑스 청년의회’에 참석한 500여명의 청년이 양국 정상에게 제안하면서 이 프로젝트가 추진됐다. ‘한중일 공동교과서 프로젝트’ 같은 혁신적 플랜이 나와도 시원찮을 마당에 시대착오적인 국정화라니.
 
이는 한마디로 ‘1974년 체제’로의 회귀다. ‘박정희 시대’로의 회귀를 뜻한다. 민주정부 10년 이후 사회 전 분야에서 진행돼 온 테르미도르 반동의 결정판이다. 반동이 극단화되면 ‘상식’을 처형하기에 이른다. 정부는 교과서 국정화를 이념의 문제로 옭아매려 하지만 이는 명백히 상식의 문제로 귀결된다. 대한민국은 정부 스스로 상식을 거부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강조해온 민생도, 경제도, 미래도 뒷전으로 밀어둔 채 매우 비생산적이고 비상식적인 논쟁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북한,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국정 역사교과서를 가진 몇 안 되는 나라의 대열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국정교과서 전환에 대한 반발이 거세자 정부는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고 헌법적 가치에 충실한 균형 잡힌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교과서’(약칭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들기로 했다’고 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현재 교과서들이 3대 세습 독재의 비정상 체제인 북한을 미화한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렇다면 교과서 집필진이나 검정을 승인해준 정부 관계자 모두 국정원의 수사를 받고 철창신세를 졌을 것이다. 정부 여당 스스로도 설명되지 않는 장황한 네이밍으로 본질을 가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친일교과서, 유신교과서, 정권맞춤형 교과서, 박정교과서(박근혜 대통령이 정한 교과서)라며 정부 여당에 맞섰다. 정청래 의원은 아베교과서라고 불렀다. 정 의원은 “일본 군국주의 시대에나 발행하던 국정교과서를 내놓고, 아베 정권을 향해 사과하라고 어떻게 말하겠느냐”고 했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현 교과서는 2013년 8월 박근혜 정부가 최종 합격 판정을 내린 교과서”라며 이것이 좌편향이라면 정부의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박근혜 정부는 왜 선진국 기준에 비추어 매우 부끄럽고, 대다수 역사학자들이 반대하는 국정화를 감행하는 것일까. 민생, 경제 프레임으로는 불리해서 이념 프레임을 전면화한 총선전략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현실성이 떨어져 보인다. 앞서 말했듯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이념 프레임 이전에 상식 프레임에 속한다. 좌우의 문제를 가뿐히 넘어선다. 
 
황우여 교육사회 부총리는 12일 “국민이 역사를 다르게 기억한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분열뿐”이라는 자학적 고백을 했다. 이는 명백한 전체주의적 사관이다. 역사를 정부가 정해준 대로 기억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역사적 해석이 5년마다 한 번씩 바뀌는 정부의 입맛에 따라 정해진다면 그 역사는 그저 갈등의 연대기로 전락할 뿐이다. 역사는 제도와 이념과 사상을 아우르는 거대한 장강이다. 잘못된 과거는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성과 참회를 통해 ‘극복’되는 것이다. 
 
청소년 시기에 교과서가 갖는 영향력은 크다. 역사교과서는 다른 것들에 비해 사뭇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해석에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가 획일적으로 정할 일이 아니다. 지금의 검정 시스템을 보완하고 강화하는 것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며 그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정부의 무리한 국정화 시도는 무수한 변명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위한 과잉충성으로 보여진다. 
 
가우키의 말처럼 과거는 언젠가 미래를 위한 에피소드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우리 또는 우리 선조들이 과거에 어떤 잘못과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함께, 미래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요하임 가우키 <자유>)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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