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관계 회복 선포식’ 방불케 한 노동당 70주년 기념식
김정은, 중국 최고위 인사와 함께 관람…시진핑, 축전 보내 북한 설득
장거리 로켓 발사 가능성 낮아져…북·중정상회담으로 이어질지 주목돼
2015-10-11 10:03:01 2015-10-11 10:03:01
주석단에 오른 외국 대표는 류윈산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 단 한사람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25분간의 육성연설에서 중국이 싫어하는 ‘경제·핵 병진노선’을 언급하지 않은 채 ‘인민’을 강조했다. 10일 오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된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 행사의 초점은 단연 북중관계의 회복이었다. 당에 대한 충성심 고취라는 내부적인 목적도 물론 있었지만, 대외관계에서 북한이 염두에 둔 대상은 오직 중국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열병식 연출이었다.
 
북한이 지난 5월 이후 장거리 로켓 발사 카드를 흔드는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중국에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면 유엔이 제재를 강화하고, 그에 반발한 북한이 핵실험을 하게 되는 파국을 막고 싶으면 정치적·경제적 지원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라는 해석이었다. 구체적으로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기념일에 중국의 고위급 인사를 파견하고 경제적으로도 지원하라는 뜻으로 풀이됐다. 그 과정을 통해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중국통’ 장성택 처형 등을 거치며 악화된 북중관계를 풀어보자는 의도도 깔려 있었다.
 
로켓 카드를 흔든 지 4개월여 만에 중국은 결국 북한이 내민 손을 잡았다.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부인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중 하나로 권력서열 5위로 인정되는 류윈산이 북한 당 창건 행사에 간 것이다. 중국 최고지도부의 일원이 북한을 방문한 것은 2011년 리커창(현 총리)이 정치국 상무위원 겸 상무부총리 신분으로 방북한 이후 4년 만의 일이다. 2013년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로는 처음이다. 중국은 특히 정부대표단이 아닌 공산당 차원의 대표단을 보냄으로써 북중관계는 국가간 관계가 아니라 ‘당 대 당’의 특수 관계이며 ‘혈맹’임을 분명히 했다.
 
중국이 북한의 요구에 응한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 9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보낸 축전을 통해 알 수 있다. 시 주석은 “김정은 동지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비서의 유훈을 받들어 노동당과 조선 인민을 영도해 경제 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적극적인 진전을 이룩했다"며 “우리는 조선 동지들과 함께(…)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해 적극적이며 건설적인 역할을 발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이란 문구는 5년 전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노동당 창건 65주년 축전에는 없던 것이다. 한 마디로 ‘핵·미사일로 말썽을 일으키지 말아라. 중국이 문제 해결을 위해 역할을 하겠으니 북한도 동참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을 강조한 것은 선대들의 ‘한반도 비핵화 유훈’을 상기시키며 핵·미사일 개발 대신 경제발전에 힘을 쏟으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9일 밤 김 위원장과 류 상무위원의 회동을 전한 중국 신화통신의 평양발 기사를 보면, 김 위원장도 중국의 요구에 원칙적인 동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류 상무위원은 이 회동에서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안정 실현 ▲비핵화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 등 한반도 정책의 3원칙을 견지하겠다고 밝히며 북한과 함께 노력해 6자회담이 조속히 재개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양국 간 고위급 대화를 확대하고 모든 수준에서 교류를 증진해 양국 관계에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자고 강조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자신들이 경제를 발전시키고 인민생활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평화롭고 안정적인 외부 환경이 필요하다고 공감을 표했다. 김 위원장은 다음날 열병식 육성연설을 통해서도 그와 같은 맥락의 말을 했다.
 
중국이 북중관계 회복 쪽으로 방향을 잡은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로 분석한다. 첫째, 관계 복원을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저지함으로써 중국의 외교적 위상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을 최소한이라도 컨트롤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임을 보여주면, 미국보다 영향력 있는 동북아 정세의 관리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계속 방치할 경우 미국의 한·미·일 3각 군사동맹 강화 움직임을 저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를 반대할 명분이 약해진다. 셋째,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를 타개하는 방법 중 하나로 여겨지는 ‘동북 3성 개발’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인접한 북한과의 관계 개선과 긴장 완화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중국의 ‘뒤통수’를 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북한은 2012년 11월30일 리젠궈 중국 공산당 정치국 위원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후 보름도 안 된 12월12일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적이 있다. 우주과학 강국임을 강조하는 북한의 내부논리상으로도 로켓 발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북중관계 회복 선포식을 방불케 하는 열병식을 연출한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 쪽으로 돌아설 경우, 그 반전에 따른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것이 분명하다. 향후 김정은 위원장의 첫 중국 방문과 북·중 정상회담 추진 상황, 북중관계 회복 속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국면 등이 북한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로 꼽힌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0일 오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중국 류윈산(오른쪽)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과 함께 사열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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