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취임 후 첫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쪽으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그러나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해서 양국의 최대 쟁점인 위안부 문제나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와 관련한 한국의 우려 해소 대책 등에서 뚜렷한 진전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10월 말이나 11월 초로 예정된 한·중·일 3국 정상회담 때문이다. 특별한 돌발변수가 없어 이 회담이 열리게 되면 3국 정상이 모두 모이는 테이블과는 별도로 양자 정상회담도 각기 마련된다. 이때 한·중 및 중·일 정상회담이 열리는 마당에 한·일 정상회담만 하지 않는 것은 어렵다. 특히 이번 3국 정상회담의 의장국인 한국의 대통령이 일본 총리가 원하는 양자 회담을 거부하는 것은 외교관례상 불가능에 가깝다.
아베 총리는 그간 박 대통령과의 회담을 원한다는 뜻을 꾸준히 전달해왔다. 지난 8일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을 예방한 일본 연립여당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 편에 친서를 보낸 것이 가장 최근의 사례다. 야마구치 대표는 "'1965년(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양국이 협력하면서 교류와 안정을 유지해왔으며,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잘 부탁한다'는 아베 총리의 전언을 포함해 박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아베는 지난해 9월에도 모리 요시로 전 총리를 통해 박 대통령에게 정상회담 개최를 원한다는 내용의 친서를 전달했다. 지난달 30일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아베 총리의 뜻을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 전달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한 바 있다.
이처럼 한·일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입장 변화를 목표로 아베 총리를 최대한 압박하기 위한 전술로 풀이된다. 야마구치 공명당 대표는 “박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여성 인권에 관련된 테마이며, 당사자가 고령화되고 있어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다는 강한 의욕을 나타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베 내각이 한·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위안부에 관한 법적인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는 기존의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낮다. 일본이 그간 9차례 열린 한·일 국장급협의에서 정부의 책임 인정과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명목 등 핵심 쟁점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아 왔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베 정부가 처한 대외적인 환경을 봐도, 위안부 문제에 관한 입장을 바꿔가면서까지 한·일 정상회담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평가다. 일본으로 하여금 한국과 화해하라고 요구하는 가장 큰 힘은 한·미·일 3각 협력체제 구축을 원하는 미국이다. 그러나 미국이 대통령 선거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3각 협력체제 구축은 차기 정권의 숙제로 넘어가고 있다. 미국은 이미 아베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에 대한 호평을 통해 과거사 문제에 관한 그의 입장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미국이 원하는 일본의 집단자위권 법안들도 최종 성립됐고, 사실상 미·일 자유무역협정(FTA)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도 타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국 정상회담이 열리고, 그 분위기상 ‘어쩔 수 없이’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될 경우 박 대통령은 ‘위안부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는 장기 과제로 삼고, 한일관계는 경제·안보 등을 중심으로 발전시킨다’는 기존의 투트랙 전략을 말할 수밖에 없다. 첫 정상회담을 해도 특별한 전환점을 만들지 못한 채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하며 끝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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