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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집단자위권 법률 통과, 동아시아 뒤흔들 중대사건”
전문가들 “일본 ‘강대국 정치’ 의지 표명…한국 원론적 우려 표명만으로는 부족”
한·일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아베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
2015-10-11 10:03:43 2015-10-11 10:03:43
일본이 지난 9월 집단자위권을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11개 법률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고 공포한 데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은 원론적일 뿐이라는 전문가들의 비판이 제기됐다. 정부는 한반도에서 분쟁이 일어날 경우 일본 군대가 이들 법률에 근거해 한반도로 진입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한국의 요청과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는데, 이는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이같은 지적은 한반도평화포럼과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등이 주최해 지난 8일 열린 한일수교 50주년 기념 ‘21세기 동북아정세 변화와 한일관계의 재구축’ 심포지엄에서 나왔다. 집단자위권은 동맹을 맺은 나라가 침략당할 경우 자국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하고 함께 싸울 수 있다는 권리이다. 일본의 아베 신조 내각은 지난해 7월 헌법 해석을 변경해 일본에도 집단자위권이 있다고 선언하는 이른바 ‘해석 개헌’을 감행한 후 그와 관련된 법안들을 지난 9월 통과시켰다.
 
서승원 고려대 일본연구센터 소장은 이날 발표에서 한국이 일본을 향해 ▲(일본의) 평화헌법을 견지하고 ▲미일동맹 틀 내에서 투명하게 추진하며 ▲한반도 영역 내에서의 집단자위권 행사는 한국의 요청과 동의가 불가결하고 ▲(아베 총리의) 역사수정주의 포기를 통한 주변국의 신뢰 확보를 강조하는 것은 “원론적인 입장만을 반복”하는 것이라며, “사태를 적극적으로 타개해 나갈 의지는 부족한 듯하다”고 평가했다.
 
또 서 소장은 “과거사를 부정하는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는 동아시아와 세계 평화에 위협적일 수 있다거나,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는 자위대의 미군 후방지원 역할과 한·미·일 공조를 공고히 하게 되어 대북 억지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견해” 등 정부를 비롯한 한국 측의 입장에 대해서도 “피상적이고 지엽적인 문제를 다루는 경향이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더 적극 대응해야 하고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이 절박하다고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 서 소장은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로 인해) 한국을 비롯한 (일본의) 주변국들이 ‘대국간 정치’의 종속변수로 치환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안보법제(집단자위권 관련 11개 법안)를 비롯해 아베 정권의 새로운 외교·안보 정책은 ‘미·일 vs 중국’ 구도를 이용해 70여년 만에 ‘대국간 정치’에 다시 참여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며 “대국 간 정치를 부정해 온 요시다 독트린(1950년대 요시다 총리 시절 정착시킨 '경무장·경제중시' 노선)으로부터의 명백한 이탈이며, 동아시아 지정학적 지형을 뒤흔들게 될 중대 사건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서 소장은 아베 정권 외교·안보 정책의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동맹국 미국을 비롯한 관계국들과 연계를 취하면서 지역 및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기여한다는 이른바 ‘적극적 평화주의’이다. 둘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설치 등을 통해 총리의 안보 정책 결정권을 키워주는 내부적인 정비이다. 셋째는 미·일 양자동맹과 한·미·일, 미·일·호주, 미·일·인도 등 3국 안보협력에 역점을 두는 동시에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중시하는 정책이다.
 
토론자로 나선 김준섭 국방대학교 교수는 ‘집단자위권 행사는 매우 특수한 조건 하에서 국회의 사전 승인이라는 엄격한 제약 하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에 대해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집단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개정이라는 높은 벽이 사라진 이상 향후 집단자위권 행사의 조건은 일본 정부의 정책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게 되었으며 헌법 개정보다는 훨씬 쉬운 법률 개정에 의해 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보법제의 성립에 의해 일본의 안보정책은 근본적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며, 우리는 이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일본의 변신을 예의주시하면서 우리의 국익에 부합되는 외교·안보 정책을 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측 전문가들은 아베의 이같은 정책이 가능하게 된 일본 내부적인 요인을 분석했다. 기무라 칸 일본 고베대 교수는 “경제 침체와 안보 불안,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으로 불안감을 가지게 된 일본인들이 ‘군사적인 힘을 통해서라도 강한 일본을 지향하자’는 아베의 메시지에 동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무라 교수는 “1990년대부터 일본의 경기 침체를 배경으로 중국과 한국을 의식하는 내셔널리즘(민족주의·국가주의)이 대두되어 아베를 지탱하고 있다”며 “특히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이 중국과 ‘유사동맹’이 됐다는 생각으로 일본이 고립감과 불안감을 가지면서 ‘미국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나카무라 기요시 도쿄신문 서울지국장은 지난 8~9월 안보법제 강행 처리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례없이 대규모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외교·안보 정책에서 일본인들의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나카무라 지국장은 “(집권 자민당이) 전체 유권자 20% 정도의 지지로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며 “선거 하나로 아베 정부에 안보 정책을 백지위임한 것은 아니라는 유권자들의 생각이 시위와 집회라는 형태로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일본 연립여당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가 지난 8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야마구치 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친서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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