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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 '싸우게 되는 구조'를 고쳐야
2015-10-05 14:00:59 2015-10-05 14:00:59
택시기사들과 대리운전기사들이 '견원지간'이던 때가 있었다. 2000대 초반 대리운전이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대리운전법 제정 움직임이 일자 영업에 위기감을 느낀 택시업계는 정부에 대리운전업체의 불법영업을 단속·처벌하라는 압력을 넣으며 대리운전 법제화를 방해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두 업계 간 영업경쟁에 신고와 법적 분쟁까지 동원됐다. 대리운전기사들이 회당 3000원 정도를 내고 이용하던 유상셔틀을 놓고 택시기사들은 ‘불법영업’이라며 소송을 걸었고, 대리운전기사들은 택시기사들의 불법정차를 신고하면서 맞불을 놓았다.
 
끝이 보이지 않던 갈등이 해소되기 시작한 것은 ‘싸울 이유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부터다. 돌이켜보니 상대에 피해를 입힐수록 자신들의 손해도 커질 뿐더러, 택시와 대리운전은 애초에 영업 영역이 구분돼 서로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두 업계는 나름대로 상생을 시도했다. 피크타임으로 불리는 0~2시 사이 외곽으로 빠지는 손님을 받을 경우 택시기사들은 빈차로, 대리운전기사들은 대중교통을 타고 도심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때 대리운전기사들 3~4명이 2000~3000원씩을 모아 택시를 이용하려 하는데, 택시기사들도 ‘빈차보다 기름 값이라도 받는 게 낫다’는 판단에 따라 저렴한 가격으로 대리운전기사들을 받았다.
 
택시기사들과 대리기사들의 화해를 가능케 한 배경에는 각자 속해 있는 업체의 횡포와 그들이 받는 열악한 처우에서 비롯된 동질감이 있었다.
 
기사들끼리 백날 경쟁해봐야 이득을 보는 쪽은 업체들이다. 우선 택시기사들은 얼마를 벌든 하루(12시간) 14만원 내외의 사납금을 입금해야 한다. 경기가 불황이라, LPG 값이 올라서, 휴가철이라서, 도로여건이 안 좋아서, 대중교통이 확충돼서 등의 이유로 수입이 줄어도 사납금은 절대 줄지 않는다.
 
대리운전도 마찬가지다. 업체 간 가격경쟁으로 단가가 계속 낮아지는 상황에 수수료율은 20~30% 수준으로 고정돼 있다. 결국 기사들이 기존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오래 더 많이' 일해야 하고, 업체는 이런 희생을 통해 이익을 보전한다. 대리운전기사들은 기본급도 없어 업체들은 최대한 많은 기사들을 확보해 기사들 사이의 경쟁을 유도한다.
 
택시와 대리운전뿐만이 아니다. 편의점, 커피전문점, 보험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을이 싸울수록 갑만 이익을 보는’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 하지만 대개의 정책은 을끼리의 갈등을 푸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그런 갈등이 해소됐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정말 해소돼야 할 대상은 갈등보다는 갈등을 조장하는 구조다.
 
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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