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국제시장’이 개봉했다. 6.25 전쟁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배경으로,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아버지들의 삶’을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였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상반된 입장으로 평가했다. 어떤 이는 박정희 독재정권을 미화하는 영화라 했고, 다른 이는 특정한 정치적 배경과 상관없이 우리네 가족사를 그린 영화라고 말했다. 이런 논란 속에서 국제시장은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흥행의 원동력이 중, 장년층이었다는 점은 이례적이었다. CGV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국제시장 관람자 중 4~60대는 전체 3분의 1 정도를 차지했다. 영화관을 찾은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영화가 묘사하는 아버지 ‘덕수’였다.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를 읽으니 ‘국제시장’ 생각이 났다. 그의 책 내용으로 짐작하건대, 국제시장의 흥행원인은 그 시절에 대한 보상 심리일 것이다. 주인공 ‘덕수’가 살던 때는 매우 힘든 시기였다. 동족 간 전쟁이 일어났고, 전후 피폐해진 나라를 복구하는 데 힘을 쏟았다. 어느 정도 복구된 국토는 군사 정권의 도래 후 산업화의 바람을 맞았다.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은 사람들이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고통을 감내하게 해주었다. 이 시절을 지나 현재에 이른 중장년층에게 영화는 고달팠던 지난 세월을 보상해주는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어떤 정치적 논란을 떠나 그들은 ‘국제시장’을 통해 삶을 인정받았다.
이와 비슷한 심리가 중장년층과 청년층의 역사 인식에도 차이를 만들어냈다. 2012년 대선에서 그 온도차는 연령별 후보 지지도 차이로 나타났다. 저자 유시민은 고령 유권자들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자신의 삶과 시대를 인정받으려 했다고 추측한다. 물론 대선 결과로 그들이 박정희 정권의 모든 것을 지지한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저 자신들의 한 표를 삶을 보상받으려는 심리로 행사했을 것이다. 젊은 층은 문화적으로 익숙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성향을 보였다. 이 또한 박정희 정권을 전적으로 부정한다고 보는 근거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청년층과 중장년층이 한국현대사를 사고하는 법은 분명 다르다. 2012년 대선과 ‘국제시장’은 그 예시이다.
세대 간 역사 인식 차이의 기저에는 ‘독재’와 ‘경제 성장’이 있다. 두 단어는 으레 붙어 다닌다. 권력자들은 경제 성장과 국력 신장 등의 허울 좋은 제목을 내걸고 독재 정치를 정당화한다. 독재 정치는 과정과 결과로 평가된다. 독재 정치의 과정은 그 목적이 선했다 하더라도 결코 좋게 평가될 수 없다. 헌법에서 명시한 주권재민과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위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누가 보느냐에 따라 공과가 확연히 달라진다. 중장년층은 결과를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다.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에 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국민 총생산이 2만 불을 넘어서는 시점을 두 눈으로 지켜봤다. 그런 이들이 상대적으로 독재를 좋게 바라보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에 비해 독재 시절을 겪지 않은 젊은이들은 과정을 중시한다. 민주주의에 익숙한 청년층이 그렇지 않은 시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 또한 당연한 현상이다.
유시민의 책 ‘나의 한국현대사’는 이렇듯 세대별 상반된 입장차로 평가되는 한국 현대사를 명백하게 서술하려 노력했다. 그가 태어났던 1959년은 이승만 대통령의 집권기였다. 그는 54년 사사오입 개헌으로 독재연장의 기반을 다진 후, 60년 3.15 부정선거로 계획을 완성시키려 했다. 그러나 엉터리 선거에 반발한 대중이 대구, 부산, 마산을 비롯한 전국에서 봉기했다. 같은 해 4월 19일엔 불법 선거를 규탄하는 민주주의 혁명이 정점에 달했다. 결국 이승만은 하야했고 12년 독재의 역사는 그렇게 끝나는 듯 보였다.
4.19 혁명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시발점이었다. 이전까지 민주정치를 경험해보지 못한 일반 시민이 독재 정권을 타도한 일은 역사에 길이 남을 명예로운 일이다. 그럼에도 4.19가 미완(未完)의 혁명으로 남은 이유는 어렵사리 얻은 자유가 그리 오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혁명이 일어난 바로 이듬해 5월 16일,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 박정희 소장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이후 이어진 박정희 대통령의 30년 가까운 독재에 대한 평가는 명암이 확실하게 갈린다. 1,2차 경제개발 5개년과 새마을 운동을 통해 이룩한 경제 성장이라는 명(明)이 있는 반면, 종신 독재를 위한 몇 차례의 헌법 개헌, 민중 탄압을 통한 철권통치라는 암(暗)이 있다. 이 부분에서 ‘국제시장’의 평가가 두 갈래로 나눠지는 이유도 찾을 수 있다.
역사의 진행을 인간의 욕망과 연관시켜 보자면, 박정희 정권의 종말은 인간이 더 높은 수준의 욕망을 바라게 되었다는 점에서 비롯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빈곤상태에 허덕이는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다. 기본적 욕구를 충족한 국민은 그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자유를 갈망했다. 군부 독재에 저항하며 민주주의를 울부짖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 욕망을 억누르던 와중 피살당했다. 책에서는 그런 그를 ‘자기 성공의 희생자’라고 표현했다.
박정희 정권의 독재는 끝났지만 같은 해 12월 12일 새로운 독재의 서막이 열렸다. 전두환, 노태우 등을 필두로 한 신군부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신군부는 빠르게 반(反)군부 세력을 정리하며 권력의 집중을 도모했다. 그 도중 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민주항쟁이 일어났지만, 타 지역민들은 그날의 광주를 알지 못했다. 철저한 정보차단과 검열은 전두환 정권의 특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으면 막을수록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부풀어 올랐다. 전두환 정권 시기는 그 어느 때보다 ‘운동’이 활발했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학생운동과 노동자들의 노동 해방 운동 등이 그것이다. 학생 운동의 선봉이었던 저자는 전운이 감돌던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전두환 집권 7년 동안 수많은 집회가 일어났다. 결국 마지막 해인 1987년, 정권연장에 유리한 헌법을 개헌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담화와 함께 대대적인 국민투쟁에 불이 붙었다. 6월이 되면서 야당을 주축으로 하여 시위 집단이 조직되고,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국민 봉기가 일어났다. 전두환 정권은 더 이상 자신을 거부하는 국민의 저항을 막을 수 없었다. 6월 민주항쟁은 그렇게 승리했다. 대한민국은 다수의 국민이 원하면 평화적, 합법적으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후의 민주주의가 성숙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현재로 오는 과정에서 민주주의 가치를 심하게 훼손한 사건들이 여럿 발생했고, 현재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일들이 많다.
국제시장과 지난 대선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한국 현대사는 절대적으로 완벽하거나 미성숙하다고 말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살기 좋았던 시절로, 누군가에게는 민주주의의 암흑기로 평가되는 발자국이다. 그때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들은 그러한 상태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일 뿐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만약 어떤 사회가 추하고 불합리하며 저열한 상태에서, 완전하지는 않지만 더 아름답고 합리적이며 고결한 상태로 변화했다면, 그 과정을 기록한 역사는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현대사는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역사이다. 무엇이 그런 변화를 만들었는지, 앞으로 우리가 어떤 변화를 더 이룰 수 있을지는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할 이야기들이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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