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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화된 간접고용…"우리는 노동자다"
통신업계 서비스기사들의 외로운 투쟁…대부분 개인사업자 신분 "4대보험? 꿈도 못꿔"
2015-09-30 07:00:00 2015-09-30 07:00:00
◇2014년 12월15일 서울시 중구 포스트타워 광고탑에 올라가 시위를 벌이는 LG유플러스·SK브로드밴드 서비스 기사들. 사진/뉴시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인터넷·통신산업이 간접고용에 시름하고 있다. 현장 일선을 도맡는 서비스 기사들은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로환경에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하루살이 신세지만, 노동자로서의 권리 주장은 꿈도 못 꾼다.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이다. 이들 중 일부는 용기를 내 노동조합을 결성, 원청과 하청(서비스센터)에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있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관심과 냉소, 심지어는 탄압과 일감 뺏기다.  
 
LG유플러스 관악서비스센터에서 개통 기사로 일하는 김모(37)씨는 지난해 인터넷 설치를 위해 2m 높이의 담장을 타고 오르다 바닥에 떨어졌다. 건물 외벽이 미끄러웠던 데다, 몸을 지탱할 안전장비도 없었다. 인재였다. 김씨는 병원에서 10여 바늘 넘게 꿰맸으나 수술비와 치료비 모두 본인이 부담해야 했다. LG유플러스 로고가 박힌 점퍼를 입고 위험천만한 일도 감내하지만, 개인사업자 신분인 탓에 산업재해보험의 혜택을 못 받는다.
 
김씨의 처지는 인터넷·통신업계에서는 흔한 일이다. LG유플러스 또는 SK브로드밴드 서비스센터에 소속돼 일감을 받지만, 원청(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과 계약을 맺은 하청(서비스센터)의 정식 직원도 아니다. 개인사업자 신분은 족쇄가 돼 노동자로서의 최소한의 법적 권리인 4대보험(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에서조차 제외된다.  
 
이들은 급여 대신 '건 바이 건'(건당 실적에 따른 수당)으로 돈을 번다. 올해 기준 전국에 있는 LG유플러스의 서비스센터와 서비스 기사는 70여곳에 2500여명, SK브로드밴드는 90여곳에 3000여명으로, 각 사 모두 70% 정도가 개인사업자들로 채워져 있다. 
 
그나마 KT는 사정이 낫다. 민영화됐다고는 하나 공기업 성격이 유지되면서 정규직 고용비율이 높다. 이런 KT조차 계속되는 매출 급감 속에 원가절감을 이유로 직접고용 대신 계약직으로 간접고용 비율을 늘려가고 있다. 역행이다. 업계에서는 3~4년 안에 KT에서도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와 같은 사태가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김하늬 민주노총 희망연대노조 조직국장은 인터넷·통신 업계가 내수에만 치중한 데다 이마저도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출혈경쟁만 난무한 결과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힘없는 서비스 기사들만 쥐어짜면서, 고통 분담이 아니라 '고통 전담'이 돼 버렸다는 설명이다. 그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외주화가 대거 진행됐으며, 남은 사업부문은 협력업체·대리점·하도급 등으로 떼어져나가 간접고용과 도급화를 부채질했다"며 "정규직 업무가 대체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저임금 구조는 노동 착취를 가속화했다"고 말했다.
 
정규직 지위를 보장받지 못한 서비스 기사들은 기계마냥 하루를 보낸다. 하루 평균 9시간 가까이 일하지만, 당직 근무를 빼고도 주 6일을 근무한다. 그렇다고 시간외 수당을 제대로 받는 것도 아니다. 한 달에 버는 돈은 기껏해야 200만원 남짓. 퇴직금은 물론 4대보험에서도 예외라 일터를 잃는 순간 생계가 버겁다. 김씨처럼 일하다 다쳐도 산재보험 처리는 20% 미만이다. 일하러 갈 때 쓰는 차 역시 자가차량을 이용하며, 보험과 유지비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 서비스 기사들은 이 같은 업계 상황을 '무법천지'에 비유했다. 최영열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 부지부장은 "LG유플러스·SK브로드밴드 모두 서비스 기사들과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 한 장 쓰지 않은 채, 간단한 면접만으로 구두로 계약을 맺고 일을 한다"며 "원청이니 하청이니 하는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개인사업자로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근로조건 등에 불만을 품거나 항의를 하는 서비스 기사들은 0순위로 계약 해지 대상이 된다. 최 부지부장은 이를 두고 "재주는 서비스 기사들이 넘고, 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들에게는 2013년 결성된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투쟁의 불씨가 됐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서 일하는 기사들이 원청으로부터 간접고용에 따른 처우 개선 등을 약속받으면서다.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 노동자들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투쟁결과에 고무돼 지난해 4월 노조를 결성했다. 민주노총 희망연대노조에 소속돼 연대투쟁에도 나서고 있다.
 
물론 노조 결성 자체부터 험난했다. 특히 이들의 신분이 문제가 됐다. 직·간접 고용 논란은 차치하고, 개별 서비스센터(하청)로부터도 노동자 신분을 인정받지 못하는 개인사업자의 한계는 컸다. 이를 빌미로 원청과 하청은 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최 부지부장은 "노조 결성 문제로 하청과도 숱하게 싸웠다"며 "고용노동부에서 근로감독이 나온 후 정식 근로계약을 쓰지 않았어도 실제 업무 지휘는 원·하청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인정돼 노조를 결성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노동자이고 싶었다"는 절규다.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 서비스 기사들은 노조 결성 이후 서비스센터로부터 교섭권을 위임받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임금 및 단체협약을 벌였다. 수차례 조정 끝에 기본급과 식대, 차량 유류비, 통신비 등으로 매월 150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임금안을 타결했다. 삼성전자서비스 지회 건이 모태가 됐다.
 
하지만 노조가 결성된 후 노동자들의 삶은 더 피폐해졌다. 노조 결성을 전후로 지속적으로 일감 뺏기와 급여 차감, 노조 탈퇴 압박과 회유가 이어지고 있다. 정종문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 연대팀장은 "서비스센터 쪽에서 노조 탈퇴를 강요하기 위해 비노조원에만 일감을 준다"며 "노조에 가입한 기사들은 일감을 못 받아서 노조 결성 전보다 급여가 반토막나는 일이 많다"고 토로했다.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는 한발 더 나아가 이런 일의 배후에 LG유플러스 본사가 있다고 주장한다. 서비스 기사 개개인에게 일감을 배정하는 것은 해당 서비스센터지만, 원청의 지시와 묵인 없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최소한의 관리감독 의무도 저버렸다는 주장이다.
 
반면 원청인 LG유플러스는 서비스센터와 노조가 풀 문제라며 책임에서 한발 물러서 있다. 서비스 기사들이 노조와 개인사업자로 양분돼 있는 데다, 일감 또한 서비스센터 대표들이 만든 센터장협의회를 통해 결정되기 때문에 원청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법적으로도 문제는 없다.
 
서비스센터 대표들은 경총에 권한을 위임했다는 이유로 노조와의 직접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최 부지부장은 "근로환경을 개선하려고 노조를 만들었는데 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들의 처지는 이전보다 더 나빠졌고, 노조 탈퇴 압박을 받아 노조에서 나간 사람들도 생겼다"며 "하청인 서비스센터가 끝내 대화를 거부한다면 LG유플러스와 LG그룹에 직접 불합리한 처우 개선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지만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LG유플러스·SK브로드밴드 서비스 기사들이 노조를 조직해 원청과 끊임없이 접촉하려고 하는 이유는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서다. 올해 5월 경총과 합의된 임단협에 따라 그동안 개인사업자 형태로 일해 왔던 서비스 기사들은 협력업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노동자로서의 첫걸음이었다. 동시에 다단계 하도급 구조라는 본질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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