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할 건데요? 그럼 뭘 믿고 펀드에 돈을 넣을 건데요?"
투자 상품을 운용사 매니저를 믿고 변경했다는 얘기에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이 같이 반문했다. 20년 뒤 노후를 대비할 자금인데 사람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있느냐는 얘기다.
사실 컴퓨터나 냉장고를 살 때는 폭풍 검색에 이것저것 따져보면서 20년 뒤를 책임질 펀드에 가입할 땐 대충 금융사 직원 말만 듣고 가입하는 사람이 많다. 나 역시 3년 전 소득공제 해준다는 말에 퇴직연금펀드에 가입했다. 물론 적립식펀드여서 손해는 아니었지만 같은 기간 똑같은 돈을 붓고도 0%인 내 펀드와 50%수익률을 기록한 지인을 보고 깨우쳤다. 앞으로는 절대 남의 말만 듣고 투자상품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안다해도 펀드를 고르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노후를 대비한 상품으로 펀드를 고를 때 기준이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운용역의 지속성, 낮은 매매회전율, 투자원칙 세 가지만 잘 지켜서 운용해도 결과는 나온다는 것.
존 리 대표 역시 메리츠자산운용을 이끌기 전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더 코리아펀드’라는 한국 주식형 펀드를 운용해 명성을 떨쳤다. 그 동안 스쿼더 인베스트먼트와 도이치뱅크를 거쳐 라자드까지 회사는 바뀌었지만 ‘더 코리아펀드’의 펀드매니저는 20년 동안 존 리였으며 현재 메리츠에서 함께하는 운용팀 역시 그때 했던 동료들이다. 2013년 취임 이후 1년 만에 업계 꼴찌에서 단 번에 1등으로 빅점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투자상품을 고를 때 팀이 얼마나 오랜기간 공유했는지를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매니저를 자주 바꾸게 되면 포트폴리오를 교체로 이어지고 이는 운용 철학을 훼손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얘기한다.
펀드매니저 교체는 매매회전율과도 연결된다. 통상 연평균 매매회전율이 100%면 보유주식을 1년간 한 번 교체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연평균 200~300%의 매매회전율을 보이고 있다. 회전율이 극단적으로 높을 경우 펀드가 단타매매 위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미국 펀드의 매매회전율은 연간 40% 내외라는 점에서 대조를 이룬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펀드내 종목 매매를 자주하면 운용사와 증권사는 수수료 이익이 발생하니까 좋을 수 밖에 없다"며 "하지만 이 돈은 다 고객이 지불하는 비용인데 잦은 거래비용은 수익률에도 치명적"이라고 꼬집었다.
현대증권이 금융투자협회를 분석해 지난 2009년부터 2014년까지 국내채권형을 제외한 타 유형에서 펀드매니저 교체가 적은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을 비교한 결과 수익률 차이가 무려 16.8% 발생했다. 이지웅 한국펀드평가 애널리스트는 “연금펀드는 무엇보다 장기투자의 관점에서 봐야한다"며 "펀드 등급 산정시 내부적으로 운용역의 교체 여부를 중요한 포인트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펀드매니저가 자주 교체된다면 그 만큼 펀드 운용을 불안하게 한다는 뜻이므로 교체하는 것을 권한다.
퇴직연금펀드에서도 운용지속성, 낮은 매매회전율, 투자 철학을 지킨펀드가 두각을 나타냈다. 6개월과 1년 기준으로는 모멘텀을 따라하거나 돈으로 끌어올리는 펀드가 좋았지만 2년,3년 시계를 길게 늘일수록 신영퇴직연금배당펀드, 한국밸류10년투자펀드, KB퇴직연금펀드 등으로 압축된다. 순간의 선택이 수익률 수십퍼센트를 가른 셈이다.
상품별로 살펴보면. '신영퇴직연금배당펀드'는 3년 수익률이 40%를 기록하고 있으며 누적수익률은 400%에 달한다. 1996년에 문을 연 신영자산운용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겪는 잔뼈가 굵은 운용사다. 주로 기업의 내재가치가 좋은 종목을 선정하고 결정하면 수익을 낼 때까지 ‘기다리는 투자’를 한다.내재가치를 평가하는 핵심 브레인은 허남권 부사장과 이상진 대표다. 창립멤버로 20년째 신영을 지키고 있다.
한국밸류10년투자펀드는 이름처럼 10년 이상 장기투자를 목표로 설계한 상품이다. 1세대 가치투자가인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이 운용하는 펀드다. 그 역시 뚝심으로 우뚝 선 금융인이다. 1999년 주당 10만원에 사들인 롯데칠성 주식을 10년 넘게 보유했고2006년 5만원에 산 동원 산업은 7년 뒤 30만원, 한국 밸류 10년투자 펀드 수익률은 156%에 달한다. 1억을 갖고 있다면 기다리기만 해도 2억5000만원이 넘는다.
특징적인 것은 이들 펀드 모두 대표매니저가 한 번도 교체된 적이 없었고 가치투자, 혹은 배당이라는 철학을 지키면서 운용을 해왔다는 점이다. 아울러 잔은 매매횟수를 뜻하는 매매회전율이 50%~80%로 전체 평균을 밑돌고 있다. 노후에 대비해 내 돈을 맡겨도 될만한 상품이라는 평가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이들 펀드가 처음부터 관심을 받았던 펀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른 펀드들이 트렌드를 따라갈 때 투자철학을 지키면서 운용을 하다보니 성과가 나오고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전문가들은 펀드 규모보다 운용스타일을 지키면서 시장 변화에 맞게 대응할 수 있는 펀드를 골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주식형펀드라면 일부 비중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투자하고 있는지 여부도 살펴봐야한다는 조언이다.
명정선 기자 cecilia102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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