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손 한번 들어 줬으니 이번엔 미국'? 단순 논리 경계해야
‘전승절 외교’ 호평 받은 박근혜 대통령 앞에 놓인 3가지 외교 숙제
북한 반발 가능성도 있어…한·중·일 정상회의도 난제
2015-09-06 11:36:26 2015-09-06 11:36:26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에 다녀온 박근혜 대통령이 앞으로 미국, 북한, 일본 등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관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가 많다. 진보 성향의 전문가들도 ▲한미동맹에 얽매이지 않은 점 ▲‘미·중 가운데 누구의 편이냐’는 틀에서 벗어난 점 ▲중국과의 경제관계 등 국익을 고려해 실리적으로 행동한 점 등을 꼽으며 높은 점수를 준다. 한국 외교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후한 평가도 나온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전승절 행사 참석의 의미가 컸던 만큼 거기서 비롯된 외교적 숙제들을 박 대통령은 해결해야 한다. 장기적인 국가전략과 단기 외교전략을 바로 세워 신중하게 움직여야 할 상황이다. ‘중국의 손을 한번 들어줬으니 이제는 미국 차례’라는 단순 논리로 접근하면 방중 성과는 물거품이 되고, 시류에 편승한 외교를 한 것으로 귀결될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외교가 맞닥뜨린 첫 번째 숙제는 미국과의 관계이다. 박 대통령은 열병식 참석에 앞서 동맹국 미국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청와대는 중국 방문 결정을 발표하기 일주일 전에 2개월 후 있을 한·미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먼저 발표했다. 박 대통령의 방중 전인 지난달 31일 한·미 외교장관회담을 연 것도 미국 배려로 해석됐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존 케리 미 국무장관에게 ‘늘 푸른 동맹’의 상징이라며 소나무 묘목을 선물하기도 했다.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서인지 열병식 참석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담담했다. 마크 토너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3일 정례브리핑에서 ‘한국이 중국과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역내 국가들이 강건한 관계를 맺기를 권한다”며 “한국은 우리의 강력한 우방이자 동맹”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미국의 ‘내심’은 이같은 공개적인 발언과는 다르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동맹국·우방국 정상 중 유일하게 중국 열병식을 참관하는 박 대통령을 본 미국인들이 ‘한국은 이제 중국에 기운 것 아니냐’는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한·미·일 3각 협력 체제를 구축해 중국을 견제한다는 자신들의 동북아 전략도 흔들린다고 볼 가능성이 있다. 3각 체제 구축은 한·일 과거사 갈등 때문에 그렇잖아도 제동이 걸려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에 ‘누구의 편인지 행동으로 보여라’하고 요구해올 경우 한국은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나 열병식 참석 결정 때보다 더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미국의 예상되는 요구로는, 중국이 반대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가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미국은 일본과의 과거사 갈등에서 한국의 ‘양보’를 압박할 수도 있다. 이달 24일 미·중 정상회담과 내달 16일 한·미 정상회담은 대미 외교의 향방을 가르는 중요한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두 번째 숙제는 북한이다. 박 대통령 방중 과정에서 나타난 한·중의 대북 태도나 북한 관련 협의에 반발해 북한이 10월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경우 8·25합의 이행은 시련을 겪을 것이고, 대북 제재가 강화되면 ‘4차 핵실험 위기’가 올 것이며, 그를 명분으로 미국이 사드 배치를 요구하는 등 정세가 요동칠 수밖에 없다.
 
북한을 자극할 만한 씨앗은 이미 뿌려졌고 북한의 반발도 한 차례 나왔다. 박 대통령이 2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도발’과 ‘중국의 건설적 역할’ 등을 언급한 데 대해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3일 “우리를 심히 모욕하는 극히 무엄하고 초보적인 정치적 지각도 없는 궤변”이라고 비난했다.
 
박 대통령이 4일 귀국 비행기 내 기자간담회에서 한 발언을 두고 북한이 흡수통일과 그에 대한 한·중 공조를 의미한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 박 대통령은 “평화통일을 위해 중국과 같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한반도 평화통일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건가에 대해 (중국과) 다양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핵실험 등 다양한 형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중국과) 협력해 나가자는 정부의 의지”라고도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은 5일 페이스북에 “(박 대통령이) 중국에 가서 북한을 압박하는 외교 행태로 북한의 반발을 불러온 것은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일에 전략적 대반격을 초래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메시지였다”며 “이 기조가 유지된다면 구석으로 내몰린 북한은 얼마든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논평했다.
 
세 번째 과제는 10월 말을 목표로 추진되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이다. 박 대통령은 기내 간담회에서 3국 정상회담 개최를 자신이 제안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동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안보 법제의 제·개정을 밀어붙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중국이 3국 정상회의 개최에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며 적극성을 띠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 경우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첫 한·일 정상회담도 열어 한일관계를 풀겠다는 박 대통령의 구상은 실현되지 못할 수 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박근혜 대통령이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3일 오전 중국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과 함께 행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이번 중국 방문은 한국외교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지만, 의미가 컸던 만큼 해결해야 할 숙제도 만만치 않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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