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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시골 민달팽이들의 고단한 인생
2015-08-26 08:00:00 2015-08-26 08:00:00
해보지 않은 사람은 말도 꺼내지 말라는 집 없는 설움. 오래된 우리 서민 정서에서도 으뜸가는 설움 중 하나다. 나와 당신, 주변에서 너무 쉽게 목격되는지라 오히려 당연하고, 식상한 푸념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런데 그 설움이 대물림 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 부모 곁을 떠나 서울로 유학 온 19살 지방 서민 대학생들, 일명 '신흥주거빈곤층'들은 애저녁부터 그 설움을 톡톡히 겪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정도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파란만장한 근대사를 겪으며 켜켜이 쌓인 대한민국의 악바리 교육현실과 그로 인한 일류대학 지상주의가 만들어낸 어두운 이면이겠지만 이제는 해도 해도 너무하다.
 
여름 방학을 지낸 서울 대학가에는 집구하기 전쟁이 펼쳐졌는데, 그 양상을 들여다보면 전셋집을 찾아 헤매는 수도권 가족단위 서민들의 모습과 판박이다. 들어갈 집도 찾기 힘들고, 주머니 사정은 궁색한데 가격은 비싸다.
 
무엇이든 열심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청운의 꿈이 이놈의 답답하고 열악한, 있는지 없는지 모를 청년주거복지를 만나 동력을 상실한다. 벙어리 냉가슴으로 높다란 현실의 벽 앞에 주저앉아 의도치 않게 일찍 철이 들어간다.
 
지난해 기준 서울 등 수도권에서 대학생활을 하는 인구는 26만여 명이다. 이중 지방에서 유학 온 학생은 절반이 넘는 14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 기숙사 수용률은 약 12.8%다. 수치로만 보면 12만이 넘는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몸 누일 방 한 칸 찾는 고민까지 떠안았던 셈이다. 때문에 기숙사 신축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학교 주변 임대사업자들의 반대로 번번이 사업이 중단되기 일쑤다.
 
정부는 조금이라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11년 연 2~3% 이자를 내면 최대 7500만원까지 돈을 빌려주는 대학생전세임대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입주 조건에 맞는 집을 찾기가 힘들다. 게다가 도입 초기 눈치 빠른 임대사업자들이 전세 보증금을 7500만원 이상으로 높이면서 일대 전셋값을 폭증시키는 역효과가 발생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다 못한 대학생들이 직접 나섰다. '민달팽이유니온'이란 단체를 만들고, 조합을 설립해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고 있다. 다양한 주거복지 혜택도 안내한다. 경험이 없는 학생들을 위해 중개업소에 동행까지 해 준다. 이렇게 나서줬다니 반가우면서도 정부와 기성세대를 보는 그들의 시선이 어떨지 서글프기도 하다.
 
전세난을 해결할 묘수가 없는 마당에 중산층을 위한 임대주택 공급, 중요하다. 하지만 '신흥주거빈곤층'의 벌써부터 고단한 삶에 대한 고민, 달팽이집을 짓는 고민도 한번쯤 해봐야 하지 않을까.
 
박관종 건설부장
pkj31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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