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금융질서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성공적으로 출범시킨 중국이 동아시아 정치·경제와 외교·안보를 아우르는 거침없는 행보에 나서고 있다. 주변국들과 영유권 갈등을 빚고 있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완력’을 보이는 데 주저함이 없는 한편으로 상황을 관리하기 위한 외교에도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중국 시진핑 정부는 세계 2위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경제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일대일로’와 AIIB라는 두 개의 깃발을 들었다. 일대일로(一帶一路)는 중국 중서부에서 중앙아시아~유럽으로 이어지는 육상 실크로드와 중국 남부해상과 동남아~인도양~지중해로 이어지는 해상 실크로드를 건설한다는 국가 전략이다. 이는 중국이 주도해 지난달 29일 베이징에서 협정문 서명식을 가진 AIIB와 함께 글로벌 정치·경제 지형을 바꾸는 대외전략으로 마련된 것이다.
포스코경영연구원 심상형 수석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이 일대일로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더 이상 두 자릿수의 경제성장이 지속될 수 없다는 위기감도 깔려 있다. 중국은 ▲수출 위주의 성장을 내수 중심으로 바꾸고 ▲정부 주도의 경제 운영을 시장과 민간이 주도하는 시스템으로 진전시키며 ▲상품의 수출을 자본 수출로 전환한다는 세 가지 ‘재균형’ 전략을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이 중에서 세 번째 ‘자본 수출’ 전략의 주된 시행 방안이다.
일대일로와 연계되는 국가는 60여개국으로 세계인구의 63%를 차지하는 44억명과, 세계 GDP의 30%에 달하는 22조달러 규모의 경제권이다. 일대일로의 첫 번째 목표는 이들 지역과 연결되는 교통 인프라 건설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미국이 주도하는 무역체제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응해 중국이 주도하는 경제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위해 자체적으로 400억 달러의 ‘실크로드기금’을 조성했고, AIIB에는 300억 달러의 출연금을 냈다. AIIB에서 중국의 지분율은 30.34%로 1위를 차지했고, 투표권도 25%가 넘는 26.06%를 확보해 주요 안건에 대한 거부권을 확보했다. 이로써 세계은행(WB)과 일본 주도의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있던 기존 구도에 중국 중심의 다자 금융기구가 출연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베트남, 필리핀 등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남중국해에서 군사적인 우위를 점하기 위한 시도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 해군은 지난 22일 하이난다오 동부 남중국해에서 10일 일정으로 군사훈련을 시작했다. 중국 국방부는 "정례 군사훈련으로 특정 국가를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베트남 등 주변국들은 ‘주권침해 행위’라고 반발했다. 중국은 이 훈련에 앞서 남중국해 일대에서 함정과 상륙부대, 헬기부대 등을 투입하는 대규모 상륙훈련을 실시했다고 중국 언론이 보도했다. 내년 5월에는 남중국해에서 러시아와 함께 군사훈련을 하는 방안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중국 국가해양국은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제도(중국명 난사군도)와 주변 해역에 대한 보호계획 제정에 착수했다고 반관영 통신 <중국신문망>이 22일 보도했다. 해양과학연구센터, 기술연구소, 시범기지, 해양생물 유전자은행, 생태·해양 관측소, 기름유출 사고 등에 대비한 응급처리센터 등 각종 기지와 시설 설치를 골자로 하는 계획이다.
동중국해에서는 일본이 지난 21일 공개한 2015년 방위백서에서 ‘중국 위협’을 강조한 것을 계기로 다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22일에는 일본 외무성은이 중국이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과 관련해 12개의 새로운 구조물을 건설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항공사진 등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그러자 중국 외교부의 루캉 대변인은 22일 성명을 발표해 "중국이 동해(동중국해)의 분쟁없는 관할 해역에서 원유·가스 개발 활동을 하는 것은 완전히 정당하고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것"이라며 반박했다. 그는 동중국해의 영유권 분쟁지역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문제와 관련해서는 “중국은 계속해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며 영토 주권을 강력히 수호할 것"이라며 "일본은 이에 대해 그 어떤 비현실적 환상(꿈)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경제적·군사적으로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는 중국이지만 한편으로는 지역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도 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이미 9월 3일 열리는 ‘제2차 세계대전 및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아베 총리를 초청한 상태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열병식에 참석하지 않는 대신 그 무렵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의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지난 16일 아베 총리의 외교책사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보국장에게 ▲중·일 공동성명(1972년) 등 4개의 정치문서를 준수하고 ▲무라야마 담화(1995년)의 정신을 답습하며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등 3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정상회담이 가능하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23일 보도했다. 여기서 야스쿠니 참배 문제는 아베 총리가 중국에 비공개로 ‘참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는 방식으로 타협할 수 있어 중국이 정상회담 문턱을 낮췄다는 평가가 나왔다. 중국이 상황을 관리하는 ‘대국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7월 초부터 2차 세계대전에 관한 새로운 기획전시회를 시작한 중국 베이징의 항일전쟁 기념관. 마오쩌둥부터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까지 중국 최고지도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사진/로이터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