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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 '속도전' 압박에 임금피크제 여론몰이
사례집 발간해 1만개 기업에 배포 예정
'소통' 없는 일방적 정책홍보 문제로 지적
2015-07-22 15:39:34 2015-07-22 15:39:34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속도전 압박에 고용노동부는 민간부문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본격적인 수순에 돌입했다.
 
고용부는 22일 업종별 16개 기업의 임금피크제 도입 과정과 내용, 담당자 인터뷰 등을 담은 ‘나눔과 상생의 약속, 업종별 임금피크제 사례집’을 발간했다. 고용부는 이달 중 100인 이상 사업장 1만여 곳에 사례집을 직접 배포해 임금피크제 도입을 유도할 계획이다.
 
고용부의 이번 사례집 발간은 노동계와 ‘타협 결렬’을 염두에 둔 정책 강행 의지로 풀이된다. 지난 4월 이후 노사정 대타협이 중단된 상황에서 사례집 발간은 대화보다 여론전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당청이 연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시간을 끌리면 개혁 자체가 물 건너갈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은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가 노동계의 입장을 들어 정책에 반영하기보다는 정책홍보라는 일방적인 창구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르면 이달 중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 가이드라인이 발표될 예정이어서 향후 정부 지침에 따라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들에 대한 ‘줄소송’ 사태가 빚어질 우려도 있다.
 
임금피크제 논란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정부가 가이드라인 형식으로 임금피크제에 대해 ‘노동자의 동의 없는 취업규칙 변경’을 허용하는 것은 위법행위라는 지적이다. 근로기준법 제94조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그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2004년 7월 22일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임금피크제를 불이익으로 보기 어렵고 ▲불이익에 해당하더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면 노조의 동의 없는 취업규칙 변경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법원의 당시 판례에는 ‘대다수의 동의 및 임금단체협상 체결’이라는 특수성이 반영돼 이를 임금피크제 사례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야권과 노동계는 내년부터 적용되는 정년 연장이 ‘이미 보장된 권리’이기 때문에, 이를 조건으로 노조의 동의 없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현재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임금피크제가 시행되고 있는데, 이를 민간부문에 대해서도 강제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행위이자 근로기준법 무력화 행위다. 임금피크제 도입 여부는 노사가 알아서 정할 문제”라며 “정부가 취업규칙 변경 가이드라인 제시를 강행한다면 그에 따라 강경하게 대응할 계획이다. 직권남용 고발 등 법적 대응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정책의 취지다. 정부는 임금피크제로 줄어드는 인건비를 신규채용에 투자할 수 있다며 이를 청년세대를 위한 정책으로 홍보하고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과보호되고 있는 정규직의 권리를 제한한다는 것과 같은 논리다. 결국 정부 정책은 ‘덜 어려운 노동자들의 밥그릇을 쪼개 더 어려운 노동자들에게 나눠주는’ 식이다. 반대로 1000조원에 이르는 사내유보금을 활용하는 등 기업의 희생을 요구하는 정책은 없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야당 간사인 새정치민주연합 이인영 의원은 이날 논평을 통해 “정부 정책 실패로 인한 노동시장의 문제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며 “정부는 정책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이어 “제도 개선에 수반되는 당사자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그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임금 삭감을 전제로 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 위해 취업규칙을 마음대로 바꾼다거나, 저성과자라는 낙인을 찍어 쉽게 해고하는 등 법에도 없는 가이드라인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유신독재 계엄령보다 더 나쁜 폭거”라고 비판했다.
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와 국회 환경노동위 야당 의원들이 지난 13일 국회 정론관에서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불법 강제도입 규탄 및 정책변경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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