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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이란 핵협상 타결 원동력은 ‘미국의 의지’
오바마 정부, 국내강경파·동맹국 반대 뿌리치고 문제 해결 나서
이란 핵협상 통해 본 북한 핵문제 교착의 이유
2015-07-19 11:13:31 2015-07-19 11:13:31
미국·영국·중국·러시아·프랑스·독일 6개국이 지난 14일 이란과 핵협상을 타결하면서 북한 핵문제에 국제사회의 시선이 다시 모아지고 있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의 공산주의 중국 방문에 비견되는 이란 핵합의를 이루게 한 ‘외교의 힘’이 왜 북한 핵문제에는 작용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는 데 있어 흔히 거론되는 것은 북한과 이란의 차이다. 북한은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고 ▲그 사실을 공공연히 밝히며 ‘핵보유국’이라는 국제적 공인을 받으려 하고 ▲ 기존의 핵합의가 이행되지 않은 경우가 여러 번 있었으며 ▲국가안전을 보장받기 전에는 한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완강한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북한의 이같은 특징은 그들이 왜 이리 완강하며, 핵합의 불이행의 책임이 과연 북한에만 있는지를 따지는 것과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이다.
 
반면 이란은 2013년 8월 대통령 선거에서 중도파인 하산 로하니가 범중도·개혁파의 지지를 받고 당선되면서 핵문제 해결을 통한 경제제재 해제를 적극 추진했다. 강경파였던 전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2005년 취임 후 핵개발을 재개하고 서방의 제재에도 굴하지 않았던 것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란에서 일종의 ‘정권교체’가 일어나면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양보할 것은 양보하는 타협과 절충의 외교 과정을 받아들인 것이다. 또 이란은 핵개발의 목적이 핵무기 보유가 아니라 민수용이라는 명분을 한 번도 버리지 않았다. ‘핵을 포기하면 공격당할 것’이라는 북한식 안보 불안도 이란에는 크지 않았다.
 
북한과 이란의 차이점이 이처럼 뚜렷한 가운데 이란 핵협상에서 두드러졌던 것은 중재국의 활약이었다. 이란 핵협상은 미국과 이란의 교섭이 중심이었고, 영국·중국·러시아·프랑스·독일 5개국은 협상이 막힐 때마다 돌파구를 열어 주거나 테이블을 박차고 나가지 않도록 압박하는 역할을 맡았다.
 
특히 러시아의 역할이 주효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과 사사건건 대립해온 러시아는 이란 핵협상에서만큼은 성실한 중재자로 임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14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대립했기 때문에 이번 협상이 잘될까 싶었지만 러시아는 두 사안을 놀랄만큼 구분해서 임했다. 러시아가 우리와 함께하지 않았다면 합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 핵문제에서 중재자의 활약은 사라졌다. 북한과 미국이 사실상의 당사자인 북한 핵문제에서 한국은 과거 가장 중요한 중재자였다. 한국은 북핵 해결으 로드맵인 2005년 9.19 공동성명과 그를 이행하기 위한 2007년 후속 합의 탄생의 산파였다. 그러나 한국은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현재까지 그 중재 역할을 포기했다. 중재는커녕 북·미가 핵 문제를 해결하려고 접근하는 기미를 보이면 미국의 발목을 잡아 협상을 사실상 방해했다. 한국의 태도가 그러하다 보니 중국의 중재 역할 역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중재자의 활약 여부보다 결정적인 차이는 문제 해결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의지였다. 이란 핵문제만큼은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정권 차원의 의지가 강력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이번 협상 타결을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 무려 18일간 머물렀다는 사실은 오바마 정부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인 미 국무장관이 외국의 한 도시에 이처럼 오래 머물렀던 것은 1919년 파리평화회의 이후 1세기 만에 처음이었다.
 
앞서 2013년 11월 ‘통합행동계획’이라는 첫 합의가 나오기까지는 윌리엄 번스 국무부 부장관과 조 바이든 부통령의 선임 보좌관이 한 팀을 이뤄 이란 고위관계자들과 6개월가량 비밀협상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3년 9월 로하니 대통령과 역사적인 통화를 했고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하메네이와 서한을 주고받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핵합의 발표 직후에도 ‘의회가 합의안을 통과시키지 않을 경우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못 박으면서 합의 이행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이어 15일 백악관 공식 기자회견에서는 “군사력을 통해 이란을 굴복시키는 것이 대안이라면, 비판가들은 그렇게 말하라. 그것이 정직한 논쟁이다”라는 말로 앞으로 있을 논쟁을 피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란과의 핵협상 자체를 반대해 온 동맹국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그들의 지원을 받을 미 의회 내 강경파들의 핵합의 무효화 시도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오바마 정부 초기부터 가졌던 ‘전략적 인내’라는 사실상의 방관정책을 버리지 않고 있다. 오바마 정부 6년 반 동안 통하지 않는 정책임이 입증됐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비핵화의 진정성을 ‘행동으로’ ‘먼저’ 보여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란 핵협상의 숨은 주역인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은 16일 “이란이 합의를 제대로 이행해 제재가 해제되는 것을 보고, 북한은 지금 추구하는 매우 위험한 경로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북핵 해결을 위해 미국이 먼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뜻은 없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과거 클린턴 행정부 시절 대북정책조정관으로 북한과의 협상을 이끌었던 셔먼 차관이 지금 이런 말을 한다면 미국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말할 만한 추진력은 오바마 정부 내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지난 15일 백악관에서 이란 핵협상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격적인 질문을 하는 기자들과 논쟁을 마다하지 않으며 핵합의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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