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메르스·가뭄 추경 카드’를 꺼내자, 가뭄 대책을 소관하는 농림축산식품부가 7월 초로 예정된 기획재정부의 세출 리스트 작성 마감까지 남은 며칠 동안 예산을 받아낼 사업을 짜내는 데 분주한 모습이다.
하지만 농식품부가 피해 농가에 대한 재해대책비 등 본래 추경 취지에 맞는 사업 보다 추경을 틈탄 개발 사업 예산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8일 정부부처에 따르면 농식품부는 이번 추경에 가뭄 대책에 쓸 예산이 대폭 반영되도록 주력하고 있다. 앞서 제출한 농식품부의 내년 예산 요구안 총 19조원(전년대비 3000억원 감소)에 대한 상향조정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농식품부가 예산 증액을 받기 위해 구상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사업 가운데 상당수가 개발 사업이라는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 개발 사업의 경우 중장기로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가뭄피해를 지원한다는 추경의 취지와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같은 우려는 이동필 장관의 최근 가뭄 관련 개발 현장에 대한 릴레이 방문으로 증폭되고 있다. 이 장관은 지난 24일 백신지구 다목적 농촌용수개발사업 현장을 시작으로 27일 충남 태안군 반곡저수지 준설 공사 현장 등 개발 현장에 방문해 하반기 추경 시 더 많은 예산을 따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백신지구 농촌용수개발사업은 이미 지난 2008년 총사업비 1029억원을 투입해 2018년 완공하기로 결정된 사업이다. 현재 예산을 늘리더라도 당장 가뭄 관련 피해 회복에 기여하기 어렵다.
가뭄 대책에는 ▲농촌용수개발사업 ▲저수지 준설 사업 등 개발 사업 ▲가뭄피해복구자금 등 한해대책비 지원 ▲물차 및 급관수 시설·장비 지원 ▲피해 농가 온라인 판로 지원 ▲농업정책자금 상환 연기 ▲농가 학자금 면제 등 다양한 방안이 있다.
그럼에도 농식품부는 가뭄 문제가 일 때마다 다양한 가뭄 대책 가운데서도 개발 사업 확대에 혈안이 되는 모습이다.
농식품부의 이같은 추경 예산 확보 방안은 올 하반기 추경의 본 목적인 경기 살리기와도 맞지 않는 먼 이야기다. 최경환 부총리는 2%대로 주저앉을 것으로 전망되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대로 유지하기 위해 추경을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개발 사업은 중장기적 효과를 내는 사업으로 재해대책비 지원과 같은 당장의 경제 효과를 내기 힘들다.
농식품부의 올해 가뭄 등 재해방지 관련 예산을 보면, 총 2조2237억원 가운데 용수개발 등 생산기반 관련 개발 예산이 1조4225억원으로 전체의 64%를 차지한다. 이밖에 다목적농촌용수개발사업 3050억원, 수리시설 개보수 5487억원, 배수개선 3160억원, 대규모농업기반시설치수능력확대 263억원 등을 합하면 개발 관련 예산의 비중은 더 불어난다.
가뭄 등 재해로 인해 피해를 입은 농가에 지원하는 농업재해보험, 농업인 안전재해보험 등 재해대책비는 5749억원으로 일부에 불과하다.
이처럼 가뭄 대책이 개발 사업 위주로 추진되는 데는 정부의 전시행정과 국회의원 및 지자체장들의 표심 챙기기 등이 복합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실제 올해 농식품부의 ▲대단위농업개발 ▲다목적농촌용수개발 등 개발 사업은 국회에서 정부의 요구안 보다 총 380억원 증액된 반면 재해대책비는 무려 1084억원이나 감액됐다.
전문가들은 농촌용수 개발 사업이 장기적 관점에서 마련·추진돼야 한다는 데 입을 모은다.
국내총생산이 늘수록 전체 수자원 이용량 중 농업용수의 비중이 낮아지는 점, 기후변화에 따른 재배작물의 변화 등 미래 변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플랜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농업용수를 쓰는 농가 의견부터 OECD 국가 대비 크게 낮은 농업용 물값 등에 대한 학계의 우려 등도 충분히 수렴·검토돼야 한다.
이와 관련 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농업용수에 대한 수요는 2020년까지 현재 보다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미래의 농업용수 비중을 고려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농업용수 확보 및 관리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27일 오전 충남 태안군 반곡저수지를 찾아 가뭄에 대비한 저수지 준설 공사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사진/농림축산식품부 제공
방글아 기자 geulah.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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