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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대통령에 의한, 대통령을 위한 '창조경제'
전시용·홍보용·치적용에 MB 녹색성장 되풀이 우려…기업들 '시늉만'
2015-06-02 16:00:00 2015-06-02 17:57:20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일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 강원대 보듬관에 있는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최문순 강원도지사, 김상헌 네이버 대표, 한종호 센터장 등과 출범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근혜표 창조경제의 성패를 좌우할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출범 초기부터 삐걱대고 있다. 창조경제가 박 대통령을 상징하는 유일한 경제정책 브랜드라는 점에서 치적을 보여주기 위한 정부의 조급함이 극에 달한 데다, 기업들은 정부의 직간접 압박에 시늉으로 일관하면서 결과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시작 단계부터 치밀한 준비 없이 성과주의에 매몰된 결과 전시용, 홍보용, 치적용으로 보이는 경고음이 이미 곳곳에서 들린다. 전임 MB정부의 ‘녹색성장’ 악몽이 재연될 것이란 우려마저 적질 않다.
 
◇박근혜 연일 “창조경제”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대한 박 대통령의 애정은 깊다. 전국 11곳 거점에서 진행된 센터 개소식에 일일이 참석해 챙겼을 정도다. 박 대통령은 앞서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창조경제를 통해 우리경제를 ‘역동적인 혁신경제’로 탈바꿈시키겠다”며 “창조경제를 전국, 전 산업으로 확산시켜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대통령 의지를 재확인한 정부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지역경제 혁신과 창조경제 활성화를 견인하는 전진기지'로 규정하고, 올 상반기까지 모두 17곳의 문을 열어 침체된 지역경제의 미래를 담보할 허브로 키우겠다는 방침이다. 임기의 반환점을 돈 만큼 이제는 국민 앞에 성과를 내놔야 한다는 강박감도 커졌다.
 
지역 거점마다 마련되는 센터는 창조경제의 주역이 될 중소·벤처기업을 육성·지원하기 위해 담당 대기업을 지정, 매칭시켰다. 각 센터를 전담하는 대기업은 자신의 주력분야와 지역특성을 고려해 특화사업을 추진한다. 삼성(대구·경북)과 SK(대전·세종)가 각각 두 곳의 센터에서 전자와 정보통신기술·ICT를 펼치는 가운데 현대차는 광주(자동차), LG는 충북(바이오·뷰티), 롯데는 부산(유통·영화), GS는 전남(건설·에너지), 현대중공업은 울산(조선·기계), 한화는 충남(태양광에너지·ICT), 한진은 인천(항공), 두산은 경남(기계산업), KT는 경기(IT서비스), CJ는 서울(문화), 효성은 전북(탄소섬유)을 전담한다. 이외에도 IT와 포털의 대표주자인 네이버와 다음카카오가 강원과 제주에서 IT서비스를 육성한다.
 
◇대기업에 떠넘겨진 창조경제
 
앞서 청와대는 지난해 9월 각 지역 거점을 책임질 대기업 명단을 발표했다. 당시 청와대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창조경제 확산의 구심점으로 조기 정착시키기 위해 생산·마케팅망과 기술·자금력을 갖춘 대기업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기업의 주력분야와 지역연고, 해당 지역의 산업수요 등을 감안하고, 전경련과 협의해 대기업과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연계했다"고 부연했으나, 일각에서는 이 같은 기업 선정 배경에 의구심을 내비쳤다.
 
의사 타진 단계부터 협의가 아닌 타의 성격이 짙었던 데다, 기업 입장에서는 대통령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참여를 결정지을 수밖에 없었다는 전언이다. 특히 총수 리스크나 경영권 승계 등에 직면한 기업의 경우 거부 자체가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SK의 경우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의 가석방을 기대해야만 하는 상황이고, 효성은 조석래 회장이 횡령·배임·탈세 등의 혐의로 기소돼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재계 20위권 밖인 효성이 10대 그룹과 함께 센터 멤버로 이름을 올리자, 이 같은 배경에 눈이 쏠렸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면서 이재용 체제로의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고, 현대차 역시 경영권 승계를 과제로 두고 있다.
 
이개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기업들이 대놓고 말을 못할 뿐, 정부에 등 떠밀려 마지못해 나선 것”이라며 “이런 식으로 하다간 정부가 바뀌면 기업들이 손을 놓을 게 뻔하다. 이제라도 정부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가장 먼저 대구센터를 찾은 것을 두고도 여러 말들이 나돌았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대구센터 확대 출범식을 시작으로 센터 개소식을 빠지지 않고 찾았다. 앞서 문을 연 대전센터(SK)는 대구센터 참석 뒤로 미뤄졌다. 이개호 의원은 “대구와 경북에서 삼성전자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동시에 다른 지자체와 대기업을 압박하기 위한 행보였다”고 해석했다.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대구·경북(TK)에서 재계 1위 삼성을 업고 제2의 새마을운동을 선언한다는 정치적 노림수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창조경제혁신센터 운영체계. (그래픽/뉴스토마토)
 
◇졸속추진에 중복사업에 혼선만
 
치밀한 사전 준비 없이 센터 개소 일정을 서두르면서 여기저기서 혼선도 빚어졌다. 대통령이 연일 창조경제를 주창하고 현장 방문이 이어지자, 미처 개소하지 못한 센터의 움직임도 다급해졌다. 이로 인해 대통령 방문용 센터를 급조한 뒤 다시 허무는 경우도 허다했다. 운영도 졸속이다. 심지어 문은 열었는데 직원 한 명 찾아볼 수 없는 곳도 있었다. 있다 해도 그 수준이 10명 안팎에 불과해 주어진 계획을 점검하기에도 턱없이 벅차다는 게 현장의 토로다.
 
한 지역 센터장은 "센터 관련 정부예산이 연간 300억원가량인데, 국책사업치고는 도로 하나 내는 것밖에 안 되는 수준"이라며 "예산이 없다보니 지자체에 10억원씩 내라고 하고, 대기업도 참여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지역 센터장은 “기업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방문하는 행사니까 멋지게 보이고 싶어 한다”며 문제는 대통령과 기업 총수가 다녀간 뒤라고 말했다. 더구나 기업들은 센터에 지원하는 예산을 투자용이 아닌 사회공헌활동(CSR)용으로 운용, 창조경제 정책과는 성격이 다른 돈을 쓰고 있다.
 
기존 사업과의 중복성도 논란거리다. 이 의원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와 특허청은 지난해 1월 미래창조과학부의 창조경제혁신센터 구축 관련, 중복 사업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산업부는 공문에서 기존 사업과 명확히 구분해 기능을 설정할 것을 권고하면서 창조센터가 기존 지역 관련 사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경우 지역별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고 지역창조경제 확산이라는 본연의 기능이 퇴색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특허청 역시 공문을 통해 RIPC(지역지식재산센터) 사업과의 중복 문제를 지적했다.
 
이 의원은 "대구의 스타기업육성협의회, 인천의 지역경제협의회, 충북의 지역산업총괄위원회 등 지역창조경제추진단과 유사한 16개 협의체가 이미 구성돼 있고, 산업부의 글로벌 전문기술 개발·글로벌기업가센터 기반 구축·중소중견기업 수출경쟁력 강화 사업, 미래부의 기술 확산 지원, 교육부의 학교기업 지원, 중기청의 1인 창조기업 마케팅 지원 등 47개 사업이 추진되고 있음에도 이들 사업과 유사한 또 하나의 사업을 추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청와대 눈치에 센터 기능 무용지물
 
운영도 문제투성이다. 언뜻 보면 민관협력을 토대로 복잡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단순한 상명하달식이다. 전국 센터의 운영 주체는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이다. 단장은 고형권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과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상근부회장이 맡았다. 추진단과 센터, 지방자치단체, 대기업, 입주기업 등이 협업하는 체계로 운영되며, 주무부처는 미래창조과학부다. 여기에 법무부, 중소기업청 외에도 각종 유관기관과 민간기관이 얽혀있으나, 결국 센터 운영과 관련한 최종 가이드라인은 청와대에서 나온다는 설명이다. 각 센터장들은 매일 추진단에 보고를 하게 돼 있으며, 청와대 미래수석실이 최종 보고 선이다.
 
그마저도 구체적 방침이 없어 현장에서는 우왕좌왕이다. 센터에 파견된 한 지방공무원은 "센터 운영 관련해 구체적 가이드라인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며 "어떤 일을 추진하더라도 눈치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센터장들은 "민간 재단 형태로 개소했으나 자율 권한이 거의 없고 정부 규제를 받고 있어 사무실 하나 고치려 해도 인·허가에만 2개월이 걸릴 때가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지자체나 지역 유관기관에서 벌이는 행사가 있으면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없어 센터의 역할을 하기보다 행사 관람객 호객을 지원하는 데 그친다"는 게 이들의 토로다. 일부 센터장들은 "기한과 예산을 한정해놓고 실적 압박을 하기보다 개별 센터가 사업을 통해 얻은 이익을 센터에 재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자율권을 부여해 민간 기업처럼 각자의 방법으로 생존하고, 책임지는 체계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장 애로에 대해 고형권 추진단장은 취재팀과 만나 "센터장들의 의견을 정기적으로 수렴해 윗선에 건의하고 있으나 실행에 이르려면 국회 동의 등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통령만 쫓는 창조경제
 
센터가 처음부터 이 같은 형태로 계획된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센터와 관련해 언급하면 그날 이후 새로운 계획이 나오는 식으로 모습을 바꿔왔다. 창조센터 역사는 현 정부와 궤를 같이 한다. 정부는 핵심 국정과제로 창조경제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국민 공감대 형성과 문화 조성에 나섰다. 첫 단추로 2013년 9월 '창조경제타운'이 문을 열었다. 창조경제를 실현하는 아이디어 플랫폼이다. 일반 시민과 기업 등 다양한 경제 주체가 참여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사업화에 도전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정부는 "국민은 창의성과 상상력을 발휘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기업과 출연연, 대학 전문가들은 자신이 가진 지식과 기술을 더해 사업화 성공 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공간으로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사업에는 2013년 19억원, 지난해에는 39억원이 투입됐다.
 
온라인에 머물던 창조경제는 오프라인으로 이동하게 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3년 12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창조경제박람회 축사에서 "창작과 교류·협업의 공간으로 오프라인 창조경제타운을 전국 곳곳에 조성해 나갈 것"이라고 확대를 지시했다. 이 말이 나온 직후 서울 KT광화문빌딩에 '드림엔터'(DreamEnter)가 둥지를 틀었다. 미래부는 "창조경제 생태계 활성화와 문화 확산을 위해 만들었다"며 "예비·초기 창업자를 포함해 다양한 창조경제 주체들이 자유롭게 교류·소통하고, 국민의 아이디어 발현 및 창업 활성화를 위해 구축된 개방형 협업 공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드림엔터 모델은 전국 곳곳에 창조센터를 개소하는 형태로 확대 개편됐다. 역시 대통령의 언급 이후다. 미래부는 지난해 1월 정부 과천청사에서 17개 시·도와 회의를 열고 '지역별 창조경제혁신센터 구축' 관련 논의에 착수했다. 회의는 그해 대통령 신년 구상 발표와 기자회견 관련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창조센터는 ▲창의적 지역 인재의 창업 도전 ▲중소·벤처기업의 성장과 글로벌 진출 등을 현장에서 지원하고 지역경제 혁신을 이끌어 가는 지역단위 창조경제 전진기지로 계획됐다.
 
김동훈·이충희 기자 donggoo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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