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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법 '유명무실'…원·하청 안전관리 '공동책임제' 도입 시급
2015-05-26 10:00:00 2015-05-26 10:00:00
 
‘위험의 외주화’로 안전 사각지대에 있는 하청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5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장에 놓인 산재 희생자 영정 모습. 사진/뉴시스
 
‘위험의 외주화’가 산업 전반에 만연한 가운데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마저 유명무실해 근로자들의 안전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원청업체가 산업재해 책임을 하청에 떠넘기는 행태에는 무력하면서, 솜방망이 처벌과 느슨한 법망은 안전 사각지대를 넓힌다는 지적이다. 이에 산안법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폭탄 ‘돌리고’ 책임 ‘피하고’
 
대기업은 유해·위험 업무라는 ‘폭탄’을 하청업체에 돌린다.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다. 사고가 나면 법적 책임은 대부분 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하청업체가 진다.
 
하청은 원청의 장비·시설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하청의 안전관리 권한은 제한적인 데다, ‘단가 후려치기’ 탓에 안전 투자는 후순위로 밀린다. 작업 기간을 맞춰야 한다는 압박도 크다. 결국 부실한 관리와 무리한 작업이 사고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책임을 회피하는 원청과 무능력한 하청 사이에서 피해는 노동자 몫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원청이 하청업체를 투입해 경제적 이익을 얻으면서 위험을 전가하는 구조는 불공정하다”며 “작업장을 관리하는 원청과 고용주인 하청에 공동책임을 묻는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실장 역시 “원·하청이 안전관리를 협업하거나, 원청 안전관리자 직무에 하청 작업도 포함시키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작업중지권도 유명무실하다. 산안법 제26조는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하거나 대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해·위험 업무를 전담하며 산재에 노출된 하청노동자에게 절실한 권리다. 하지만 간접고용이라는 불안정한 신분이 발목을 잡는다.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작업을 멈추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조흠학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연구위원은 “작업중지권은 작업자 스스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행사하는 권리지만, 실제로 작업을 멈춘 사례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위험의 외주화’ 제동 걸어야
 
고용노동부는 지난 3월 유해·위험 업무 도급 인가 기한을 3년으로 정하는 산안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도급을 금지하는 방안도 논의됐지만, 재계의 거센 반발로 최종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박세민 민주노총 노동안전실장은 “하청노동자 산재가 잇따르는 현실을 무시한 결과”라며 “중대재해를 막으려면 위험의 외주화를 사전에 차단하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처벌도 미미한 수준이다. 산안법은 사업주가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서 사망사고가 나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그러나 원청은 처벌을 받지 않거나 벌금형에 처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 교수는 “원청 책임을 늘리고 안전을 확보하려면 산안법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최병호·이순민 기자 soonza0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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