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전자상가의 어제)영광
2015-05-21 11:00:00 2015-05-21 11:00:00
◇1990년대 용산 전자상가 전경. (사진=용산구청)
 
"용산 한 번 나와 봐." 
 
용산 전자상가에서 터줏대감으로 통하는 강평구(70) 나진상가 상우회장은 30년 전 친구의 이 한마디에 용산으로 달려갔다. 그의 눈에 비친 용산은 '기회의 땅'이었다. 온갖 전자제품과 이를 찾는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강 회장은 1987년부터 전자상가 도로변에서 가전제품을 팔기 시작했다. 무턱대고 벌이진 않았다. 상권을 파악해 보니 마진이 채 2%도 안 됐다. 돈이나 벌 수 있을지 걱정에 사업 시작을 주저했을 정도다. 냉장고를 50만원에 팔면 2~3만원이 남는 식이었다. 하지만 전자상가에 오는 손님이 워낙 많았다. 박리다매 전략은 통했고, 그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혼수를 장만하러 오는 손님들이 많았어요. 신혼부부들이 몰려와서 전화기부터 냉장고까지 25~30가지 가전제품을 한꺼번에 사갔죠. 마진을 조금씩만 남겨도 하루에 20~30만원씩 벌었던 것 같아요. 88 올림픽 때는 VTR이 동이 나 팔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용산 전자상가는 원래 농수산물이 거래되는 청과물시장이었다. 서울시가 지난 1987년 수도권 정비 계획을 세우고 가락동으로 농수산물 시장을 옮겨가면서 농수산물 상인들은 용산을 떠났다. 빈자리는 세운상가 상인들이 채웠다. 당시 세운상가에도 전자제품 전문 상가가 있었다. 같은 해 7월1일부터 나진, 선인, 원효 등의 상가들이 잇따라 들어섰다. 당시 보도를 보면 16개동 2770개 점포로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가전에 이어 PC, 휴대전화로 이어지는 한국 IT 산업의 발자국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전시장인 동시에 유통의 메카가 바로 용산이었다. 10여 년 전인 지난 2004년 기준 약 26만 평방미터(㎡) 규모 면적의 용산 전자상가에는 나진, 전자랜드, 선인, 원효, 서울전자유통, 용산관광터미널 등 상가 6곳이 영업할 정도로 성행했다. 점포수는 5200곳을 넘었고, 종사자 수도 2만명에 달했다. 전체 상가의 매출액은 한때 10조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용산 전자상가는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산까지 이뤄지는 공간이기도 했다. 다양한 조립PC 업체들이 용산에서 탄생했다. 현주컴퓨터가 대표적 사례다. 비록 현재는 문을 닫은 상태지만, 현주컴퓨터는 지난 1989년 11월 용산 전자상가에서 출발해 이듬해 국내 데스크톱 매출 전체 3위를 달성하는 등 용산이 낳은 스타 기업으로 우뚝 섰다.  
 
용산 전자상가의 화려한 날은 외환위기(IMF) 이후까지도 이어졌다. 직장에서 물러나 자영업을 시작하는 수요가 늘면서 전자제품이 대량으로 팔려나갔다. 전국에 PC방 창업 열풍을 일으킨 게임 스타크래프트도 한몫했다. 동시에 각종 소프트웨어(SW)가 유통되는 장이었다. 전자랜드 관계자는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차량이 하루 최대 4500대가 매장을 방문했고, 1500대 주차 가능한 주차장이 가득 찼다"며 "차들이 길에도 줄을 서서 경찰이 교통정리를 도와주던 때였다"고 회고했다.
 
화려했던 용산 전자상가는 2000년대 초반 이후 내리막길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용산 전자상가 인근에서 노점을 15년 운영 중이라는 한 상인은 "잘 나갈 때는 닭꼬치만 하루에 200개 이상 팔려나갈 정도여서, 직원도 2명 고용하면서 아이들을 키웠다"며 "이제는 손님이 거의 없어 혼자 일하고 있고, 닭꼬치도 안 판다"고 말했다.
 
김동훈 기자 donggoo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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