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광화문을 걸었다. 사람이 많았다. 교사, 학생, 수녀님, 스님, 유가족 등. 모두 ‘가만히 있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많은 경찰들이 그 걸음들을 둘러쌌다. 그걸 본 꼬마가 제 엄마 손 꼭 잡고 묻기를, “경찰 아저씨들 여기 다 있는데 오늘 우리 집에 도둑 들면 누가 지켜주는 거야?” 그 꼬마 생각에 경찰들의 ‘제자리’는 거기가 아니었던 거다.
2014년 4월 16일, 여객선 세월이 깊은 바다로 가라앉았다. 수백 명을 태우고 많은 짐을 실은 배의 선장(이준석)은 누구보다 빨리 탈출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남긴 채로. 배에 남은 사람들은 구조대를 기다렸다. 그 구조는 해경의 몫이었는데 해경은 아무도 ‘안’ 구했다. 가라앉는 배 곁에서 멀뚱히 떠 다녔을 뿐이다! 그때 해경의 제자리는 분명 배 안이었고 갇힌 사람을 밖으로 끌어내야 했다. 해경 정장(김경일)이 재판정에서 변명하길, “당황해서 퇴선(배에서 뛰어내림) 지시를 깜빡했다.”
1심 재판 결과 선장은 징역 36년, 정장은 4년이라고 한다. 뒤이어 ‘학생은 4억, 교사는 7억’의 보상을 받는다는 뉴스 헤드라인이 온갖 데를 도배하고 있다. 이제 그만 마침표를 찍자는 모양인데, 과연 그럴까? 오준호 작가가 『세월호를 기록하다』에 "지붕이 무너진 것은 마지막에 떨어진 눈송이 때문만은 아니다"라고 썼듯, 여전히 물음표가 숱하다. 배를 무리하게 증•개축한 청해진 해운, 그걸 내버려둔 한국선급과 그걸 가능케한 이명박 정부의 선령 규제 완화는? 한국선급의 규제를 무시해서 무리하게 화물을 실을 수 있었던 이유는? 등의 물음을 비롯해 그때 대통령을 비롯한 재난 대처 책임자들은 뭘하고 있었는지까지 말이다.
일상적으로 가는 식당에서 일개 종업원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이후는 어떠했던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식당 사장은 일단 사태를 파악한다. 종업원의 실수가 맞으면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짐은 물론이다. 해경 정장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청와대 지휘 선상 맨 아래 종업원격이었다. 그런데 정부 최고 책임자 대통령이 지는 책임은 식당 사장이 비할 바 못 될 만큼 무겁다. 그런데 왜, 이 참사의 이후는 ‘종업원’의 징역형과 돈 뿐인가.
식당일이 꼬이는 데가 사장을 필요로 하듯 나라의 사고가 난 곳이 바로 대통령의 제자리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그 참사의 존재조차 뒤늦게 알았다. 것도 모자라, 발생 일곱 시간을 넘긴 뒤에 뱉은 말은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는데 건져내기가 그렇게 힘이 듭니까?” 제자리는커녕 제정신을 못 차렸던 것이다.
아이들 그 누구도 자신의 제자리,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배 안에 갇힌 아이들을 지키려고 한 교사들도 교단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단원고등학교 일행 아닌 승객들도 마찬가지였다. 제 아이와 함께 있는 곳이 제자리인 부모는 그 자리를 잃고 오늘도 한뎃잠을 잔다. 광화문으로 몰려와 꼬마를 걱정케 했던 수많은 경찰을 비롯해, 모두 제자리를 찾을 날은 올까.
아직은 아닌가 보다. 2015년 4월 16일, 박근혜는 전방위 비리 의혹(이른바 성완종 게이트)에 휘청이는 이 나라 밖 남아메리카로 탈출한다. 제자리도, 제정신도 못 챙긴 세월호 선장처럼.
◇YTN영상 캡쳐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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